민족문제硏 다큐 '명예훼손'件 1심 무죄, "팩트없는 國父비난" 논란 여전...재판 공정성 문제도
  • ▲ ⓒ다큐 백년전쟁 포스터
    ▲ ⓒ다큐 백년전쟁 포스터

    이승만 전 대통령의 '성범죄' 연루 의혹을 묘사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다큐 '백년전쟁' 1심 공판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사실상 사법부가 '이승만 VS 반(反)이승만' 세력 싸움 속 반(反)이승만 세력의 손을 들어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재판장 김태업)는 29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백년전쟁' 김 모(50)감독과 최 모(50) 프로듀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은 27~28일 양일간, 사자명예훼손으로는 처음으로 국민참여재판 형식으로 진행됐다. 배심원 9명은 29일 새벽까지 이어진 평의 끝에 김 감독에게 8명이 무죄, 최 프로듀서에 대해선 7명이 무죄 의견을 냈다.

    1920년 6월 '이승만 행적' 둘러싼 공방

    이번 재판에서 가장 치열한 공방을 불러온 핵심 쟁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1920년 6월 행적'이다.

    백년전쟁 영상에서 당시 이 전 대통령이 24세나 어린 여대생과 '맨법(Mann Act)' 위반 혐의로 체포돼 기소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부분이 법적으로 문제가 됐다. 맨법은 1900년대 초반 성매매 등을 목적으로 배우자가 아닌 여성과 주(州) 경계를 넘으면 처벌하도록 규정한 미국 법률이다.

    검찰은 "이승만 대통령이 1920년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체포돼 기소됐고 재판 받았다는 사실을 그 어디서도 확인하지 못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정 사실처럼 '머그샷(범인 식별)' 패러디까지 영상에 넣은 피고들은 허위사실로 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공소사실을 밝혔다.

    반면, 변호인단은 '다큐멘터리 제작 방식'을 강조하며 "기본적인 사료를 가지고 그에 합리적인 추론을 하는 것도 영화 기법이 들어간 다큐의 영역"이라며 "이승만 전 대통령의 맨법 위반 여부는 학계에서도 논쟁중인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다큐 뜻 모르나?" vs "다큐도 추론 가능해"

    백년전쟁은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총 6부작의 다큐멘터리다. 다큐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마치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위해 독립운동을 한 악질 친일파, 또는 24살이나 어린 여성과 성범죄(불륜)에 연루된 파렴치한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외에도 'A급 민족반역자', '하와이깡패' 등의 표현을 실었다.

    이날 법정 공방은 '다큐'가 얼마만큼의 팩트를 기반으로, 얼마만큼의 공정성을 띠고 있는가로 시작됐다. '맨법 위반' 논란이 기소의 이유였던 만큼, 1920년 6월 이승만 대통령이 실제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붙잡혀 조사를 받고 기소됐는지 등 △기소 사실 유무 △팩트를 기반으로 한 추론 범위 △허위사실 사전 인지 여부 등이 쟁점이었다.

    원고·피고 양측 증인으로 채택된 강성률 영화평론가는 변호 측 신문에서 "다큐가 객관적일 수 만은 없다. 결국은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포장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기본 팩트를 바탕으로 풍자나 추론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피고(민족문제연구소)측에 힘을 실어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는 과거 백년전쟁 리뷰에서 "다큐가 다투고 있는 팩트와 해석이 정확한 것인가를 잘 따져야한다"는 취지의 글을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해당 사실을 지적하며 ''맨법 위반'에서 어디가 해석이고 팩트인지 알려달라'고 요구하자 강 평론가는 "그 부분은 깊이 고민 안해봐서 당장 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강 평론가의 증언에 힘입어 "당시 이승만이 맨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한 사료를 기반으로 했으며, 그를 해석하는 것은 다큐 형식의 차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다큐이지만 그 과정에서 제작자 추론이나 해석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래는 피고 측 증인으로 채택된 김민철 경희대 역사교양학과 교수의 증언 중 일부다.

    "이승만의 여성관계는 많은 논란이 돼왔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외국에 혼자 있었으니 (중략) 근데 사생활은 문제가 아니고 독립운동가 미주 대표인물로 그려진 이승만이 교민들이 낸 성금을 가지고 적절하지 못한 행위들을 많이 한 게 문제. 그래서 학자들은 '아 실제 조사를 받았구나' 생각하는 거다. 우리는 '이승만이 조사를 받았다'는 일부 사료를 들고 추론하는 거지 법률적으로는 알 수 없다."

  •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추론 뒷받침할만한 팩트는?

    그러나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한 오영섭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교수는 "역사적 사실을 백프로 단정지을 순 없지만 현재까진 그런 자료가 없다"고 못박았다. 추론은 할 수 있는 근간이 되어야 할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변호인단과 피고측이 주장한 '사료'는 대체 뭘까.

    바로 로버트 장이라는 인물이 서술한 '하와이의 한인들(The Koreans in Hawaii)'라는 소책자다. 여기에는 1920년 6월 20일 이 전 대통령이 맨법 위반으로 기소(charge)돼 기각(dismiss)됐다고 써있다. 또 그해 6월 21일 예정이던 샌프란시스코 국민 환영회가 취소됐다는 내용을 담은 '신한민보'(1920.7.15)자료다. 변호인단은 이 두가지 자료를 두고 "성범죄에 연루돼 검찰에 기소됐고 그로 인해 국민 환영회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영상에서 추론한 것"이라고 변호했다.

    오영섭 교수는 "화보집에 실렸던 맨법 위반 주장 글은 가십성 글이었기에 학자들이 신뢰하지 않는다. 학자의 양심을 걸고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한 백년전쟁은 역사사료 가치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외에 현재까지 이승만 박사가 맨법을 위반해 처벌을 받았다는 자료 자체가 없을 뿐더러, 미국에서 저명인사였던 이 박사 행동에는 제약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맨법 위반은 황당한 주장"이라고 했다.

    특히 오 교수는 "당시 이승만 세력은 안창호의 국민회 세력과 격렬히 대치하면서 반대 진영으로부터 극렬한 공격에 시달렸다는 사실도 인지해야 한다. 정세를 이해하지 않고 일부 반대세력이 주장한 내용을 기정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검찰 역시 오 교수의 증언을 바탕으로 "수사기록 · 공소장 · 판결문 · 미국 이민국 공문 · 이승만 일기 · 1920년 7월 15일자 신한민보 등 많은 자료를 분석했으나 그 어디서도 이승만 박사가 기소됐다는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피고 측 증인 김민철 교수는 반문을 제기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맨법 위반으로 조사받은 최소한의 기본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자료를 철저히 검증한다. 그리고 실제 이승만과 여성의 염문은 많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1995년부터 갑자기 친일행위자들을 미화하는 기념사업이 쏟아져나왔다. 이승만을 두고는 파시스트보다 더한 인물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있는데, 그 양측 정서가 법적으로까지 다퉈야할 사안인지는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맨법 위반 관련 학계 논문이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그는 "논문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무엇이 정설인지 확립된 입장 역시 존재하지 않으며 피고들이 일부 사료를 근거로 해석해서 판단해 만들었다고 본다"고 기존 답변을 반복했다.

  • ▲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백년전쟁'은 많은 부분에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연세대 류석춘 교수가 지적한 '백년전쟁'의 역사왜곡 사례들
    ▲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백년전쟁'은 많은 부분에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연세대 류석춘 교수가 지적한 '백년전쟁'의 역사왜곡 사례들

    "허위사실 사전에 알았다" vs "허위사실 아냐"

    오후 7시경부터 검찰의 피고인 신문이 시작됐다. 검찰은 최 모 PD가 백년전쟁 시사회를 앞둔 2012년 11월 중순 학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근거로 "시사회 사흘 전까지 주위에 '원사료가 필요하다'는 이메일을 수차례 보냈다. 이는 본인들도 사실관계가 확인이 되지 않은 영상이라는 점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검찰의 질문에도 피고인 2명은 모든 답변을 일체 거부, 시종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 과정에서 재판장은 "신문을 거부하는 것도 피고의 권리이므로, 태도만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배심원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변호인단은 "명백하게 허위사실이라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증거가 없다고 허위사실이냐"며 "이 부분은 반쪽의 진실"이라고 규정했다. 또 "나찌, 홀로코스트 등 어둠의 역사는 어디에나 있었다"며 마치 '이승만 시대가 나찌에 버금가는 어둠의 역사였다'는 뉘앙스를 풍겨 방청석을 술렁이게 했다.

    변호인단은 이번 사건이 당초 검찰 형사1부에서 공안1부로 재배당 된 점을 두고 '정치적'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이게 과연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일인가. 공소시효를 열흘 앞두고 기소한 것은 청와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는 말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실제 검찰이 백년전쟁 제작진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시점은 2017년 11월. 박근혜 정권에서 문재인 정권으로 교체된 후다.

    피고인 최후진술에서 김 감독은 "현재까지 다큐에서는 친일파는 친일파만, 독립운동은 독립운동가만 다룬다. 독립운동가 및 친일파들을 한 공간에 넣으면 힘 있는 다큐가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검찰이 주장했듯 악의를 가지고 허위 사실인 걸 알면서 만들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최PD 역시 "나는 이승만 대통령을 존경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허위라고 확인된 사실을 담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객관적 공문서가 없다고 허위라고 하는데, 검찰 눈에는 이민국 공문서밖에 안보이는 것이냐"고 했다.



  • ▲ 이승만 건국대통령.ⓒ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이승만 건국대통령.ⓒ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이번 사건 진짜 본질은...

    헌법재판소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사후적으로 제약하는 경우를 '자유민주 기본 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변호인단은 "이 동영상 하나로 대한민국이 안 무너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3년 5월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 유족 이인수 박사는 고소 경위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다툼을 좋아하지 않지만 고소를 안하면 기정사실화되버리니 어쩔 수 없다. 반(反)이승만 시대를 여러분(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주도해 대한민국 건국 정통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일삼은 이런 작업은 결국 국가 정체성과 연관된 문제다. 이승만 박사가 일본 천황에게 한국에서 일본 군대를 철수시켜라는 서한을 보내고, Republic of Korea라는 단어를 처음 썼다는 사실 여기 있는 여러분들 다 아시는가. 백년전쟁 영상은 이승만 박사 개인을 넘은 국가 차원의 문제라고 본다"

    이인수 박사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 지난 몇년간 우파 학계에서는 '백년전쟁'이 단순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이는 사실상 좌우가 벌이는 '역사대결'이며 건국 정통성과 직결된다는 분석이다. 국정교과서 논쟁으로도 이어지는 이 문제는 '사자명예훼손'이라는 법리를 내세운, 학계의 이념전쟁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012년 11월 서울아트시네마 시사회를 통해 알려진 '백년전쟁'은 공개 직후부터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우파진영 언론·학계에서 격렬한 반발을 일으켰고 좌우 학계는 이른바 '맞짱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좌파진영은 '백년전쟁'이 이승만을 비판적 관점에서 다뤘다고 주장하지만 우파진영은 다르게 해석한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축이 돼 만든 동영상의 목표를 두고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과 한강의 기적 박정희 신화를 까내리는 목적이며 끝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역사관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소리 높이고 있다.

    법정에 선 검찰 역시 해당 사실을 언급했다. 동영상에서 장점, 단점을 균형있게 담지 않고 편향적인 시각으로 편집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변호인단은 "주장하고 싶은 바를 담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이기도 하다"고 되받았다.

    "판사님이 변호인같다" 재판 공정성 논란

    이날 법정에선 재판부를 향한 검찰과 방청객들의 노골적인 불만도 터져나왔다. 검찰은 피고측 증인을 신문하다 재판부로부터 종종 제재를 당하자 "왜 주신문은 되고, 반대신문은 안되냐. 해당 증인은 전문가라서 전문가적 견해를 확실하게 확인해야 하는게 맞다"고 주장했다.

    검찰-재판부, 혹은 검찰측 증인-재판부가 간혹 실랑이를 벌이면서 방청석에서는 야유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검찰측 한 증인이 판사를 향해 "여기는 재판장님이 변호인같다"고 되물을 때는 방청석에서 박수와 환호가 나와 법정 관리자들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재판 중간 휴식시간에 방청객들은 재판이 불공정하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다소 감성적인 피고인들 최후 진술이 이후 배심원 평의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처음부터 예견된 결과", "배심원 구성 기준이 이상하다. 2030세대밖에 없다" 등의 주장이다.

    검찰은 "피고들은 최소한의 소명자료도 없이 '의심된다'는 자료만으로 영상을 제작했으며, 이것이 허위사실임을 인지했음에도 대선을 앞둔 특정한 시기에 대중에 공개했다"며 피고인 2명에게 각각 벌금 500만원을 구형했으나, 피고인들은 배심원 판결을 바탕으로 무죄를 받았다.

    한편 백년전쟁 행정소송은 아직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2013년 방통위는 백년전쟁을 방영한 시민방송 RTV에 대해 "방송심의규정상 객관성, 공정성을 위반했다며 관계자 및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시민방송은 방통위 상대로 소송 냈지만 1,2심 모두 패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