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硏 다큐 '백년전쟁' 1심서 무죄... 원고측 "배심원단 선정부터 공정성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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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불륜설' 등을 담은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제작해 이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재판에 넘겨진 제작자들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김태업 재판장)는 29일 새벽 사자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백년전쟁 김 모(50) 감독과 최 모(50) 프로듀서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을 열고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배심원단이 3시간 넘게 치열한 의견 교환을 했다. 판결 결과를 바탕으로 이같이 선고한다"고 했다.

    이들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은 27~28일 이틀간 진행됐고, 배심원 평의가 길어져 29일 새벽에서야 결과가 나왔다. 9명으로 구성된 배심원은 김 감독에 대해 1명이 유죄, 8명이 무죄 평결을 내렸다. 최 모 프로듀서에 대해서는 2명이 유죄, 7명이 무죄 평결을 내렸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백년전쟁'

    백년전쟁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제작한 본편 4부, 번외편 2부로 구성한 동영상이다. 그해 11월 유투브에 공개되면서부터 논란에 휘말렸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악질 친일파', 'A급 민족반역자', '하와이 깡패' 등에 빗대 부정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날 재판의 핵심 쟁점은 이 전 대통령이 '맨법(Mann Act)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는지 여부였다. 백년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20년 6월에서 20대 여성 노디 김과 '맨법' 위반으로 체포돼 기소를 당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맨법은 1900년대 초반 성매매 등을 목적으로 배우자가 아닌 여성과 주(州) 경계를 넘으면 처벌하도록 규정한 미국 법률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유족은 2013년 5월 백년전쟁 제작진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 전 대통령 양자 이인수 박사는 당시 고소장을 접수하며 "허위사실과 날조된 자료를 바탕으로 이 전 대통령의 인격을 살인했다. 건국 대통령에 대한 인격살인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짓밟는 행위"라고 했다.

    이후 4년 6개월 가까이 수사를 이어온 검찰은 지난해 11월 백년전쟁 제작진을 재판에 넘겼다. 이 전 대통령이 맨법 위반으로 체포돼 기소됐다는 부분이 허위사실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동영상 내 다른 표현들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영역이 아니다"며 기소하지 않았다.

  • ▲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다큐 '백년전쟁' 포스터 화면 캡처
    ▲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다큐 '백년전쟁' 포스터 화면 캡처
    허위사실 알면서도 배포해 vs 합리적 추론 가능해

    백년전쟁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맨법 위반 혐의로 기소를 당했다며 '기소 결정'이란 자막이 포함돼 있다. 범인 식별 사진인 '머그샷' 합성사진도 있다. 이 전 대통령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듯한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이다. 게다가 백년전쟁은 '맨법 위반으로 인한 기소' 때문에 1920년 6월 21일 하와이 국민 환영회가 취소됐다고 주장한다.

    이날 재판의 쟁점은 △과연 이승만 대통령이 당시 맨법을 위반해 재판을 받았던 것이 사실인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다면 제작진이 이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그렇다면 다큐에서 '추론'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등이었다.

    검찰은 "맨법 위반설이 담겼던 '하와이와 한국인들'이라는 책을 보면 주석도 달려있지 않은 책자다. 또한 이민국 공문서를 들여다본 결과,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맨법 위반으로 수사를 받은 기록 자체 혹은 재판받은 사실도 없으며, 하와이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또 해당 사실이 허위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디 김의 이민국 진술서, 같은 해 7월 신한민보 보도, 이승만 전 대통령의 당시 동선과 이동 시간 등을 자료로 제시했다. 또 백년전쟁 제작자들이 마지막까지 '원사료'를 찾기 위해 학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근거로 "이들은 팩트가 없다는 사실이 알고 있었음에도 동영상 배포를 강행했다"며 제작자들에 대해 각각 500만원 벌금을 구형했다.

    그러나 변호인 측은 "로버트 장의 저서 '하와이의 한인들'에는 1920년 이 전 대통령이 맨법 위반으로 기소(charge)돼 기각(dismiss)됐다고 나온다. 이를 근거로 이 전 대통령이 맨법을 위반해 기소됐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사실관계를 확인했고 허위사실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빈 공간 사이 합리적인 추론은 다큐에서 얼마든 가능하다"고 맞섰다.

    우파 시민단체는 선고 결과를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무일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본부장은 "변호인(민족문제연구소) 측에서 증인으로 채택한 교수가 대한민국이 두 세력이라고 노골적으로 얘기하지 않더냐. 그리고 4명의 변호인과 피고인 측이 똘똘 뭉쳐서 변호하는데 도저히 검찰이 감당해낼 수가 없겠더라"고 씁쓸해했다. 

    문 본부장은 이날 배심원단과 관련한 문제도 제기했다. 9명의 배심원들이 모두 3~40대로 추정되는 청년층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노장년층을 고루 섞어야 제대로 판결이 되지. 젊은 사람들이 솔직히 우리 역사를 얼마나 알겠나"고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 "향후 항소관련 부분은 이인수 박사 등을 중심으로 논의가 될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한편 백년전쟁 행정소송은 아직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2013년 방통위는 백년전쟁을 방영한 시민방송 RTV에 대해 "방송심의규정상 객관성, 공정성을 위반했다며 관계자 및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시민방송은 방통위 상대로 소송 냈지만 1,2심 모두 패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