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과목 쏠림' 이유로 2외국어 '절대평가' 전환... 70%대 응시 '로또 아랍어' 시대 끝날듯
  • ▲ 교육부는 지난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제2외국어·한문 영역'을 절대평가로 치르겠다고 밝혔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기륭
    ▲ 교육부는 지난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제2외국어·한문 영역'을 절대평가로 치르겠다고 밝혔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기륭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부터 '제2외국어·한문 영역'이 절대평가로 전환된다는 소식에 아랍어 학계가 술렁이고 있다.

    아랍어가 절대평가로 치러질 경우, 현재 70% 이상인 응시율이 1% 내외로 급감할 수 있다는 입시업계 분석도 나왔다. 교수들 사이에서도 "교육적 측면을 감안하면 진작 전환했어야 할 문제" "절대평가 전환은 언어 특성을 무시한 결정" 등 의견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교육부는 17일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제2외국어·한문 영역'을 절대평가로 치르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해당 영역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근거로 '과목 쏠림 문제'를 언급했는데, 이는 사실상 '아랍어'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아랍어로 몰리는 수험생들

    '수능 아랍어'는 지난해 제2외국어·한문 영역 전체 응시자 7만630명 중 5만1882명(73.5%)이 선택했다. 2위 일본어(5874명·8.3%)에 비해 무려 8.8배나 높은 수치다.

    아랍어를 가르치는 고등학교는 전국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다. 전체 31개 외고 중엔 울산외고가 유일하며 전국 2300여 개 일반고 및 자율고로 범위를 넓혀도 저동고·동산고 등 6곳(0.2%)에 불과하다. 반면 '수능 아랍어' 응시자 수가 압도적 1위를 달리는 기형적 형태는 수년간 지속되고 있다.

    2005학년도 수능에서 아랍어 응시자는 전체 12만3193명 중 531명(0.4%)이었다. 그해 아랍어 만점자 2명이 표준점수 100점을 받았고, 1등급 기준(4%) 충족은 원점수 20점이면 충분했다. 낮은 원점수로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수험생 사이에서 파다하게 번지기 시작했다. '수능 아랍어'는 매년 응시자가 폭증했고 급기야 '로또'라는 꼬리표까지 붙게 됐다.

    가장 최근 치러진 2018년 수능 아랍어 1등급 원점수는 42점으로 타 언어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2등급 기준은 원점수 21점으로 타 언어와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2위 격인 베트남어와 한문의 2등급 기준이 38점이었고 나머지 언어는 40점대 초반으로 형성됐다.
  • ▲ 2022년부터 제2외국어·한문 영역에 속한 9개 언어는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된다. ⓒ교육부
    ▲ 2022년부터 제2외국어·한문 영역에 속한 9개 언어는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된다. ⓒ교육부
    아랍어 응시율 73%→1% '고공낙하' 현실화될까

    역설적으로, 전국 0.2% 고교에서 가르치는 아랍어를 전체 70% 이상의 수험생이 선택하는 기현상은 아랍어를 진정 배우고 싶은 학생이 많아서가 아니다. 타 언어보다 낮은 점수로 높은 등급과 표준점수를 받기에 효과적인 과목이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대 입시의 경우, 제2외국어가 필수이며 2등급까지 감점이 없다는 점 때문에 아랍어를 선택하는 게 '유리한 전략'이라는 말도 나오는 실정이다. 지난 2012년 중앙대는 제2외국어·한문 영역을 사탐 1과목으로 인정했으나 유독 '아랍어'만 제외한 사건도 있었다.

    2018 수능 아랍어 전체 응시자 원점수 평균은 14.32점으로 9개 언어 중 가장 낮았고, 원점수 40점 이상 비율도 4.76%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랍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수험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은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2022 수능부터 절대평가가 시행되면 일본어 응시율이 40%로 오르고, 러시아어·베트남어·아랍어는 1% 내외 정도로 응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교수들 "허수 낮추고 평가 기준 높여야" vs "언어 진입장벽·특성 고려해야"

    대학에서 아랍어를 가르치는 교수들도 제2외국어 영역 절대평가 전환에 따른 시각이 엇갈렸다.

    수험생들이 '찍기' 위해 아랍어에 기형적으로 몰리는 현상을 방치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부적절하니, 절대평가로 전환해 허수를 최소화하고 난도를 올려 향후 수험생들이 실용 아랍어를 구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김종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수능 아랍어 응시자가 많다고 해서 수능 이후 아랍어를 계속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며 "많은 수험생들이 요행을 위해 아랍어를 선택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현행 수능 아랍어는 교육적 효과나 평가 가치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절대평가 전환으로 지난해 응시자 5만명 중 1%인 500명만 아랍어를 선택하게 돼도, 출제 수준을 높여 소수의 수험생들이라도 아랍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부연했다.

    반면, 교육부의 제2외국어·한문 영역 절대평가 전환이 아랍어의 언어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아랍어는 글씨를 오른쪽에서 왼쪽(한글과 반대 방향)으로 쓰는 데다, 알파벳을 암기해도 각 알파벳이 자리하는 위치(앞·뒤·가운데)에 따라 형태가 변하는 특성이 있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A교수는 "언어마다 특색이 있는데, 여러 요인에 대한 고려 없이 평가 기준을 일률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아랍어는 세계적으로 문법 의존도가 가장 높아 배우기 어려운 만큼,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선택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A교수는 "제2외국어를 가르치는 취지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게 목적이지 않느냐"며 "아랍어 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도 (특성에 맞는) 형평성을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