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더리 보이콧’ 포함된 美의 이란제재, 이란산 석유와 북한제 무기의 물물교환 가능성
  • ▲ 지난 4일 싱가포르에서 ARF가 끝날 때쯤 성 김 駐필리핀 미국대사로부터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의 친서를 받는 리용호 北외무상.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4일 싱가포르에서 ARF가 끝날 때쯤 성 김 駐필리핀 미국대사로부터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의 친서를 받는 리용호 北외무상.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6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막을 내렸다. 포럼 의장 성명에 CVID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촉구하는 내용은 담겼다. 포럼이 폐막하던 날 리용호 北외무상은 이란으로 날아갔다. 미국이 對이란 제재를 시행하기 전날 이란에 간 이유는 뭘까.

    이란 관영통신 IRNA “리용호 北외무상 곧 온다”

    이란관영통신 IRNA는 지난 3일(현지시간) “리용호 北외무상이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ARF에 참석한 뒤 이란에 올 것”이라고 北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해 보도했다. IRNA는 리용호 北외무상이 올해 들어 중국,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스웨덴을 찾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IRNA는 또한 “지난해 5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재선돼 취임식을 가질 때 북한은 2명의 고위급 대표단을 보낸 바 있다”고 덧붙였다.

    IRNA나 北조선중앙통신은 리용호 北외무상이 왜 이란에 갔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란의 다른 국영매체인 ‘파르스 뉴스통신’은 “리용호 北외무상은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 만날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만 회담의 주제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파키스탄 ‘아랍뉴스’는 리용호 北외무상이 이란을 갑작스럽게 방문하는 것, 이란과 북한 관영매체가 방문 목적 등을 함구하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아랍뉴스’ 측은 “과거 英美의 북한전문매체 ‘NK뉴스’ 보도에 따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들은 과거 북한과 이란 간의 협력 관계에 우려를 표했다”면서 “2017년 보고서에서 유엔 안보리 전문가들은 북한 무기밀매업자들이 이란 테헤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과 북한과 이란의 미사일 디자인이 흡사한 데 주목했다”고 지적했다.
  • ▲ 올초 이란을 찾은 김영남 北최고인민회의 상임의장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이란 대통령궁 공개사진.
    ▲ 올초 이란을 찾은 김영남 北최고인민회의 상임의장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이란 대통령궁 공개사진.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비핵화’를 약속한 뒤 미군유해 환송,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서해 미사일 시험발사장 해체 등의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이란은 미국이 ‘이란 핵합의(JCPOA)’ 체제에서 탈퇴한 뒤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에도 대국민 연설을 통해 반미 투쟁을 촉구했다. 미국에 대해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북한과 이란이 갑자기 만나는 이유는 뭘까. 크게 두 가지로 추론할 수 있다.

    리용호, 이란에 대미협상술 자문해줄까

    이란은 신정일치 국가다. 세속정치를 이슬람 정치 지도자인 ‘아야톨라’가 지배한다. 현재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다. 수니파와 시아파를 떠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진영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기술과 경제 발전에 대한 욕구도 적지 않다. 시아파는 아니지만 현대적 성전 개념을 쌓았다고 평가받는 ‘사이드 쿠틉’ 또한 서방 문명은 부정하면서도 서방처럼 기술발전을 통한 경제 발전을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지난 6월 말부터 실업률 상승과 인플레이션 증가를 이유로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 곳곳에서 하메네이와 로하니 퇴출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는 점도 이란 지도부를 다급하게 만든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신정일치 체제마저도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란 지도부에게 북한 김정은 정권의 외교술은 신기했을 것이다.

    1년 전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과 ‘핵전쟁’까지 운운하며 극한 대립을 하던 김정은이 불과 몇 달 사이에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 미국·한국과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는 모습은 이란 지도부에게는 아마 ‘외교의 달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대로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서도 압박을 받지 않는 기술은 정말 배우고 싶었을 것이다. 리용호 北외무상은 노동당 외교위원장인 리수용 前외무상 만큼이나 노련한 외교관으로 평가받는다. 이란 지도부는 이런 리용호 北외무상에게 ‘자문’을 구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 이란 당국이 관영TV를 통해 공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장면. ⓒ이란 관영매체 유튜브 화면캡쳐.
    ▲ 이란 당국이 관영TV를 통해 공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장면. ⓒ이란 관영매체 유튜브 화면캡쳐.
    대미 압박의 동병상련 속 물물교환 추진?

    두 번째 가능성은 세계 평화에는 좋지 않은 내용이다. 앞서 말한 파키스탄 ‘아랍 뉴스’가 지적한 것처럼 북한과 이란이 과거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 커넥션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8월 7일 자정부터 1차, 11월 4일부터 2차 對이란 제재를 시행한다. 처음은 이란 통화로의 거래 금지, 이란과의 귀금속·광물·지하자원 거래 금지, 각종 기계제품 및 부품 거래 금지 등으로 시작한다. 2차 제재 때부터는 이란산 석유와 천연가스, 석유제품 거래를 완전히 금지한.

    미국의 對이란 제재에는 ‘세컨더리 보이콧(유관 3자 제재)’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달러’를 사용하는 나라나 기업, 개인들은 이란과의 무역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달러 경제권’에서 약간이라도 자유로운 나라가 중국과 북한, 러시아 등이다. 이 가운데 중국은 이란산 석유 등의 수입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러시아는 자국 석유자원 수출 문제로 이란산 석유에 개입하기 쉽지 않다. 차라리 지금처럼 시리아와 예멘 내전에 개입함으로써 이란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그 댓가로 석유나 관련 제품을 받는 게 이익이다.

    북한의 경우는 다르다. 미국과 대화 분위기는 이어가고 있지만 대북제재는 계속되고 있다. 남북경제협력을 통해 경제적 난관을 타개하려 했지만 미국이 한국에게 “대북제재에 예외란 없다”고 경고하면서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 그나마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체제 유지를 돕고 있지만 충분한 수준은 아니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압박에 맞서려면 자원, 특히 석유가 필요하다. 석유는 에너지원인 동시에 국제시장에서 환금성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달러나 유로, 엔으로 바꾸기에도 용이하다. 북한은 이란으로부터 석유를 공급받는 대신 탄도미사일을 비롯해 각종 무기를 수출할 수 있다. 이란이 원한다면 북한군 병력을 보낼 수도 있다. 실제 시리아 내전에서 알 아사드 정권이 북한군 병력을 제공받았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이란이라고 다를 바 없다.

    리용호 北외무상이 이란 외무장관을 왜 만나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눌 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북한과 이란 모두 미국에게 압박을 받고 있고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다는 점, 사실상 신정일치 체제이며 독재체제라는 점 등은 양국의 접촉 목적이 세계 평화와는 관계가 없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