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악명의 원인, 조직과 임무 아닌 ‘사람’이 문제…文정부 ‘교각살우’ 범하나
  • ▲ 소위 '기무사 계엄 문건'이 나온 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 소위 '기무사 계엄 문건'이 나온 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기무사 폐지"를 운운했다. ⓒ연합뉴스TV 관련보도 화면캡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촛불 시민들을 대상으로 기무사가 위수령과 계엄령을 모의한 행위는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위협한 행위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며 기무사령부를 맹비난한 데 이어 10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 현지에서 “기무사령부 계엄 문건을 독립수사단에게 맡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정의당 등에서는 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기무사령부 해체, 2017년 이미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내에서는 ‘계엄 대비 문건’과 ‘세월호 유가족 TF’ 구성을 문제로 삼아 기무사의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권은 이런 내부 목소리에 따라 기무사를 “폐지 수준까지 축소”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권 내부 등의 목소리에 따라 기무사를 폐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단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나온 기무사 개혁 방안을 살펴보자. 2017년 9월 국방부는 “10월 1일자로 기무사 1처를 완전히 해체한다”고 밝혔다. 기무사 1처는 군내 고위 공무원 사찰 조직이었다. 국방부 직할부대, 각 군 본부 직할부대, 독립부대 등에서 근무하는 장성급 인사들의 동향과 업무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당시 국방부는 기무사 1처가 기존에 맡았던 업무는 법률에 근거한 신원 조사로 대체하기로 하고 “국민의 눈높이와 시대적 상황 변화에 발맞춰 비정상적인 관행과 불필요한 활동을 근절하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기무사에 대한 고강도 개혁을 지속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즉 임명된 이후에는 별도의 동향 파악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국방부는 또한 같은 달 국방부 청사에 있던 100기무부대를 합동참모본부를 담당하는 200기무부대와 통폐합한다고 밝혔다.

    한동안 잠잠하던 ‘기무사 개혁’은 2018년 7월부터 다시 불거졌다. 지난 8일 국방부는 “기무사 개혁위원회에서 기무사 본부뿐만 아니라 60단위 부대를 포함한 전 부대에 대한 조직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기무사가 광역 지자체 별로 설치해 놓은 600, 601, 613 등 소위 ‘60단위 기무부대’를 모두 없애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60단위 기무부대’는 서울, 인천, 부산, 대전, 광주, 창원, 청주, 의정부, 제주 등 11곳에 주둔하고 있으며 ‘공식적’으로는 해당 광역 지자체에 주둔 중인 각급 부대의 기무부대를 관리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국방부는 “기무사 개혁위원회는 60단위 기무부대가 일선 군부대의 기무부대와 업무 영역이 중복된다고 지적했으며 이를 근거로 폐지를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기무사 폐지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60단위 기무부대는 군사정권 시절 군과 정보기관의 ‘불순한 모의’ 또는 동향을 감시하려는 목적으로 상급 감시조직으로서 만들어진 조직으로 현 시대에는 맞지 않는 조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무사에서는 “60단위 기무부대는 일선 기무부대를 지휘감독하는 것 외에도 주요 광역지자체와 ‘통합방위업무’를 협의하고 있고 각 지역에 주둔 중인 군부대 지휘관 등 주요 관계자들에 대한 임명 전 신원조회, 탈북자 합동심문 등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 ▲ 2015년 5월 공안기관에 적발된 탄창 불법수출 증거품. 보통의 20~30발 들이 탄창 외에도 50~100발을 넣을 수 있는 드럼 탄창도 있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5년 5월 공안기관에 적발된 탄창 불법수출 증거품. 보통의 20~30발 들이 탄창 외에도 50~100발을 넣을 수 있는 드럼 탄창도 있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런 가운데 기무사가 탄핵촉구시위와 태극기 집회를 전후로 계엄을 검토했고 ‘세월호’ 침몰 사건 당시 유가족과 학생들의 동향을 파악했다는 문건이 나온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빌미로 기무사 폐지를 주장하고 정의당 등이 바람을 넣으면서 기무사는 ‘개혁을 빙자한 축소’가 아니라 ‘폐지에 가까운 축소’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녹화사업’부터 ‘중국 간첩 사건’까지…기무사에 얽힌 추한 모습들

    기무사의 ‘악명’은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중앙정보부보다 더욱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되면서 보안사령부(現기무사)의 악명은 매우 커졌다. 1982년부터 운동권 출신들이 입대했을 때 끌려간다는 녹화사업부대, 1990년 윤석양 이병의 폭로로 알려진 민간인 사찰(청명계획) 사건 등이 유명하다.

    기무사의 악명은 이명박 정부 이후 다시 불거졌다. 주로 反이명박 성향의 사람들이 주장하고 나섰다. 2008년 기무사령관과 대통령 독대 부활, 2009년 민노총 사찰 의혹, 2011년 조선대 정외과 교수 이메일 해킹 의혹 등은 기무사의 과거 악명을 떠올리게 했다.

    이후 한동안 조용하던 ‘기무사 사건’은 2017년 5월 이후 본격적으로 언론을 탔다. 같은 해 9월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 기무사가 여론조작 활동을 펼쳤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2018년 2월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 기무사가 여론조작을 넘어 선거개입까지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같은 해 4월에는 기무사가 재보궐 선거에까지 개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 달 뒤에는 기무사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쳐 관제동원집회, 댓글작성을 통한 여론몰이 등을 통해 민간 정치에 개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같은 해 7월에는 기무사가 2016년 11월 민중 총궐기와 태극기 집회가 한창일 당시 ‘계엄령’과 병력 동원까지 기획했고, 세월호 침몰 사건 당시 실종 학생 유가족을 비롯한 ‘민간인들’을 감시하기 위한 TF를 구성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또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압력을 가해 친정부 보수단체 수십 곳에 69억 원을 지원하게 만들었다는 ‘화이트 리스트’ 보도도 뒤따랐다.

    이상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 언론들이 집중 보도하고 있는 기무사의 추한 면모다. 반면 기무사의 진짜 문제는 그리 조명하지 않고 있다. 기무사 소령의 중국 간첩 사건과 전현직 기무사 장교가 레바논 테러조직에 군수품을 수출한 사건, 방산비리로 유명한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과의 커넥션 의혹 등이 그렇다.
  • ▲ 경기 과천시에 있는 국군기무사령부 청사. ⓒ기무사 홈페이지 캡쳐.
    ▲ 경기 과천시에 있는 국군기무사령부 청사. ⓒ기무사 홈페이지 캡쳐.
    2007년 동명부대에 배속돼 레바논에 파병됐던 기무사 이 모 대위는 현지인과 인맥을 쌓는다. 그는 2011년 소령으로 전역한 뒤 동생과 함께 무역업체를 차렸다. 이 씨는 레바논에서 알게 된 사람을 통해 현지 바이어를 찾았다. 레바논 바이어가 요청한 품목은 군용 탄창. 이 씨는 군수품 제조업자에게 제조를 부탁했고 이렇게 만든 탄창을 레바논으로 밀수출했다. 이는 레바논 테러단체 헤즈볼라에 흘러들었다고 한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는 북한군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씨는 이후 기무사 후배 양 모 소령까지 끌어들였다. 양 소령은 레바논 바이어에게 공장을 견학시켜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이 레바논 테러조직에 팔아넘긴 탄창은 4만 6,600여 개에 달했다. 이들의 군수품 수출은 2015년 5월 사법당국에 적발되면서 끝났다.

    2015년 7월에도 기무사 장교가 관련이 된 사건이 있었다. 중국에 유학을 갔던 기무사 소령이 中공산당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인물의 부탁을 받고 군사기밀을 넘긴 것이다. 기무사 A소령은 중국 유학 시절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불량배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돈까지 빼앗겼다. 이때 홀연히 나타난 중국인 B씨가 불량배들에게 사과를 하게 만들고 돈까지 되돌려 받아서 줬다. A소령은 이후 B씨와 급속히 가까워졌고, 중국 생활 도중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주는 B씨에게 크게 의존하게 됐다. 알고 보니 B씨는 中정보기관 요원으로 의심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A소령은 B씨가 요구한 군사기밀들을 구해 건넸다.

    2015년 초에는 방산비리 혐의로 주목받은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과 전·현직 기무사령관들의 관계가 주목 받았다. 일광공영에 군사기밀을 건넨 기무사 군무원들이 5월과 6월에 구속됐고, 기무사 군무원의 부인이 관계 회사에 취업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규태 회장이 소유한 엔터테인먼트 회사 대표에 前기무사령관이 앉아 있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계속 드러났다. 2018년 4월 법원은 이규태 회장에 대해 방산비리 혐의는 무죄, 업무상 횡령 및 세금포탈 혐의는 유죄를 선고했다.

    기무사 악명의 원인 ‘조직과 임무’ 아니라 ‘사람’

    앞서 말한 기무사와 관련한 문제들을 보면 조직 전체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무사의 전신인 방첩대와 보안사부터 지금까지 이 부대의 문제는 조직과 임무가 아니라 ‘사람’, 근본적으로 청와대가 이 부대를 ‘안보기관’이 아니라 ‘권력기관’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나타난 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무사의 임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군에 침투한 간첩과 민간 분야에서 군 내부를 정탐하려는 간첩 색출 및 검거, 두 번째는 군 내부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을 색출해 검거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처럼 대규모의 군 방첩기관을 보유한 나라는 없다”면서 마치 기무사의 존재 자체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듯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 주요 국가는 군 내부 방첩 기관을 별도로 두고 있다. 군 방첩 기관은 또한 체제 전복을 시도하거나 일부 불순세력의 쿠데타를 막는 임무도 함께 맡고 있다.

    기무사는 국정원이나 경찰과 달리 대통령령으로 설치한 기구다. 때문에 대통령이 명령하면 한 번에 사라질 수 있는 조직이다. 청와대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정치권 일각의 요구만 듣고 기무사를 없애버린다면 향후 군 내부의 위험한 움직임이나 군을 정탐하려는 적성국 간첩 세력을 막아내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 때는 후회해도 이미 늦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