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시기 유엔군 참전과 기억] 6.25 68주년 기념 한국정치외교사·한국전쟁학회 학술회의
  • ▲ 지난해 7월 2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에서 열린 '6.25 전쟁 정전협정 64주년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6.25 참전용사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뉴시스 DB
    ▲ 지난해 7월 2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에서 열린 '6.25 전쟁 정전협정 64주년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6.25 참전용사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뉴시스 DB
    "자유를 위해 나 자신을 헌신한 일은 정말 값진 일이었습니다. 내가 몸 바쳐 싸운 대한민국이 지금 독립과 민주주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6.25 전쟁에 참전한 노병(老兵)이 감격의 눈물을 흘렀다. 그의 말 속에는 참전용사의 자부심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의 이름은 윌리엄 오(92세). 영국이 국적인 그는 유엔군 소속 영국군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현재 그는 앞을 보지 못한다. 1951년 임진강 전투에서 수류탄 파편에 각막을 다친 뒤, 3년 간 포로생활로 고초를 겪다 그는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지금으로부터 68년 전, 유엔군 참전 용사들은 한반도에서 사선(死線)을 넘나들며 북한군과 싸웠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참전 경험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에게 있어 한국의 발전은 자부심이다. 지금도 시달리는 전쟁후유증을 극복하게 만드는 자부심의 근원이다.

    유엔군은 자유와 한국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그들의 희생을 어떻게 기억할까? 21일 오후 1시 20분 전쟁기념관 뮤지엄 웨딩홀 4층 난실에서 6.25전쟁 68주년을 맞아, 전쟁 초기 유엔군의 형성과정 및 그들의 희생을 재조명하는 학술세미나가 개최됐다.

    전문가들은 유엔군을 '유엔 창설 후 처음으로 집단안보체제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로 정의했다. 유엔군은 '유엔군 수용센터'를 통해 통합을 지향했고, 그 결과 전장에서 승리하는 군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유엔군 중에서도 미군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영국군, 독일군 등 참전 사례를 바탕으로 그들의 활동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6.25 전쟁 시기 유엔군 참전과 기억'을 주제로 열린 이번 학술회의는 한국정치외교사학회(회장 김명섭 연세대 교수)와 한국전쟁학회(회장 조성훈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위원)가 공동주최했다. 김명섭 연세대 교수, 박종왕 유엔평화기념관장, 손경호 국방대 교수, 김은혜 육군 6사단 대위, 나종남 육사 교수, 신종태 조선대 교수, 조성훈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 양영조 군사편찬연구소 부장, 최장옥 전남대 교수, 윤지원 평택대 교수,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등 학계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참석했으며, 사회는 1·2부로 나누어 신복룡, 김계동 건국대 교수가 맡았다.
  • ▲ 신복룡 건국대 교수 사회로 진행된 제1부는 <유엔군 형성과 조직화>를 대주제로, 손경호 국방대 교수와 김은혜 육군 6사단 대위가 발표했다.ⓒ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신복룡 건국대 교수 사회로 진행된 제1부는 <유엔군 형성과 조직화>를 대주제로, 손경호 국방대 교수와 김은혜 육군 6사단 대위가 발표했다.ⓒ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제1부 첫 번째 발제에서 손경호 국방대 교수는 '유엔 참전군의 초기 통합과정 분석'을 발표했다. 손 교수는 6.25 전쟁에 참전했던 유엔군을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군대로 조명하고자 했다. 

    지금까지 유엔군은 미국의 주도 아래 취해진 보조적인 행동으로 이해되고 연구됐다. 손 교수는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유엔군을 독자적인 군대로 인식하고 바라보는 접근법을 채택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집단안전보장체제를 구현하고자 유엔군 건설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하지만 당시 소련의 방해로 계획은 좌초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식과 수준을 고민했다. 

    미국은 현실적인 집단 안전보장에 의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통합을 중요한 방편으로 생각했다. 손 교수는 미국이 추구한 유엔군 통합 특징으로 ▲지휘체계의 단일화 추구 ▲회원국들의 노력을 통합하며 고도로 통합된 유엔군을 건설 등을 손꼽았다.

    두 번째 발제자 김은혜 육군 대위는 '유엔군 수용센터의 운영과 성과' 논문에서 유엔군 수용 센터 설립의 배경, 운용과 성과를 분석했다. 

    김 대위는 1950년 10월 20일 대구에서 처음 운영된 '유엔군 수용센터'에서 11개국의 부대가 기본적인 장비사용법과 기초 전투기술을 익히는 과정을 거쳤고, 이를 통해 유엔군의 전투준비상태의 편차는 상당히 개선됐다고 밝혔다. 

    '유엔군 수용센터'는 전쟁 준비가 미비했던 참전국 부대들에게 미국 무기를 제공하고, 미국식 전술통신에 익숙해지도록 훈련시켰다. 김 대위는 '유엔군 수용센터'가 단일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지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강조했다.
  • ▲ 김계동 건국대 교수 사회로 진행된 제2부는 <유엔군의 희생과 기억>을 대주제로, 나종남 육사 교수, 신종태 조선대 교수, 조성훈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했다.ⓒ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김계동 건국대 교수 사회로 진행된 제2부는 <유엔군의 희생과 기억>을 대주제로, 나종남 육사 교수, 신종태 조선대 교수, 조성훈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했다.ⓒ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제2부 첫 번째 발제자인 육사 나종남 교수는 '6.25 전쟁 中 미국과 한국의 전쟁 영웅 선정 기준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들고 나왔다. 

    나 교수는 한국군 무공훈장 제도의 정착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태극무공훈장을 수여과정을 검토했다. 그는 6.25 전쟁 중 미국이 수여한 명예훈장 135개의 현황과 대한민국이 수여한 태극무공훈장 79개의 현황을 비교 분석했다. 이를 통해 그는 한국군의 초기 무공훈장 제도가 미국과 일본의 훈장제도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유사하게 운영됐다고 밝혔다.

    두 번째 발제자인 조선대 신종태 교수는 '유엔군 기념공원(UNMCK) 영국군 안장자와 영국의 전사자 기억' 논문에서 전투사적 차원에서의 영국군 분석과 영국참전용사를 다뤘다. 

    신 교수는 국군의 6.25전쟁 참전과정과 주요 전투 사례, 전사자들에 대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영 관계의 세 가지 발전 방안을 제시했다. 발전방안으로 그는 ▲영국 참전용사 후손들과의 지속적인 친선교류 강화 ▲부산 유엔군 기념공원의 국제평화 상징화 사업에 대한 체계적 추진 ▲영국 전역에 산재된 전쟁기념관 내 6.25전쟁 전시물 실태파악과 자료 재검증 등을 강조했다.

    세 번째 발제자인 조성훈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서독 적십자병원의 활동 성과와 기억'을 발표했다. 조 위원은 독일의료지원단이 1954년 5월부터 5년간 부산에서 30만 명 이상을 진료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6.25전쟁 참전 의료지원국에 포함될 수 있는지를 비롯해 그들의 활동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했다. 

    서독정부의 적십자병원 파견은 유엔군사령부의 전반적인 계획과 연계돼 있었다. 정전 협정 후에도 민간인을 상대로 진료한 서독 적십자병원이 유엔 의료지원 5개국처럼 유엔 임무의 일환으로 진료활동을 수행했다.

    조 위원에 따르면 평가의 쟁점은 '기간'이다. 하지만 미국 등 참전국가에서 연금과 관련해 6.25 전쟁 기간 산정 시 1956년 4월까지를 적용한 예를 들어, 그는 독일의료지원단 활동을 유엔군 지원활동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