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노스 위성사진 분석…올브라이트 소장, 로퍼 연구원, 서균렬 교수, 안진수 前연구원도 같은 지적
  • ▲ 美38노스는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이후 일대를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일부 건물이 아직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5월 28일 에어버스가 촬영한 사진. ⓒ美38노스 관련보고서 화면캡쳐.
    ▲ 美38노스는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이후 일대를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일부 건물이 아직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5월 28일 에어버스가 촬영한 사진. ⓒ美38노스 관련보고서 화면캡쳐.
    북한은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폭파·폐쇄하면서 그들의 비핵화 의지를 자랑했다. 당시 한국 핵전문가들은 “100% 폐쇄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근 해당 지역을 촬영한 위성사진이 나온 뒤에는 美전문가들도 거의 같은 의견을 내놓고 있다.

    ◆ 美38노스 “풍계리 핵실험장에 건물은 왜 남겨놨을까”

    美스팀슨 센터 산하 ‘38노스’는 5월 31일(현지시간) “파괴된 풍계리 핵실험장: 좋은 시작이었지만 불가역성에서 새로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美‘38노스’는 “북한 당국이 당시 외신 기자들을 불러 풍계리 핵실험장의 갱도와 많은 건물을 폭파하는 장면을 공개했지만 풍계리 핵실험장의 복원이 불가능한지 여부는 여전히 중요한 의문으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美‘38노스’는 북한 당국이 외신 기자들에게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직전 일대 지하 시설의 배치와 구조를 설명하려 보여준 대형 지도에 주목했다.

    외신들이 보도한 영상을 보면 북한 당국의 지도는 6번의 핵실험이 이뤄질 동안 외부 전문가들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풍계리 핵실험장 지하 갱도 6곳의 배치도와 정확한 지리정보 등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美‘38노스’는 “지도는 또한 우리가 그동안 주목했던 남쪽 지역에 2번 갱도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보여줬다”고 밝혔다.

    美‘38노스’는 인공위성이 5월 25일 이후 풍계리 핵실험장 일대를 촬영한 사진을 토대로 세 가지 의문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풍계리 핵실험장의 갱도가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 폐쇄 됐는가, 둘째는 북쪽과 서쪽 갱도 바깥에 쌓여 있는 버럭(갱도 굴착 때 파낸 흙)의 양이 차이가 있는 점, 셋째는 핵실험장 지휘소와 주변 건물의 경우에는 거의 파괴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북한 당국은 외신 취재진들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다양한 깊이의 갱도에 폭발물을 설치했으며, 영상에서 첫 폭발과 두 번째 폭발 사이에 15초 간격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美‘38노스’는 “그러나 갱도 폭파 때 내부 붕괴가 어느 정도까지 퍼졌는지 불명확하고, 북한이 핵전문가가 현장을 찾아 확인하는 절차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 ▲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폭파 당시 북한이 공개한 지도를 바탕으로 美38노스가 만든 갱도 위치도. ⓒ美38노스-구글 어스.
    ▲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폭파 당시 북한이 공개한 지도를 바탕으로 美38노스가 만든 갱도 위치도. ⓒ美38노스-구글 어스.

    ◆ 북한이 공개한 갱도 크기와 파낸 흙의 용적 달라

    갱도에서 파낸 버럭의 양이 북한 당국이 보여준 지도로 추정한 갱도의 크기와 일치하지 않는 점도 의문이라고 한다. 인공위성 사진에 관측된 버럭의 양이 북한 당국의 지도에 나타난 갱도 크기보다 더 많았다는 지적이었다. 지도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만약 정확한 지도라면 북한이 고의적으로 갱도의 길이를 축소해 표현했다는 뜻이다.

    美‘38노스’는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의 다른 시설은 모두 파괴했음에도 본부와 관제센터, 지원부서의 많은 건물은 그대로 남겨 놓은 점도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왜 외신 기자들에게 관제 센터 등 핵실험의 핵심 시설은 보여주지 않고 이곳과 지원시설은 왜 그대로 뒀냐는 지적이었다. 최근 위성사진을 보면 북쪽, 서쪽, 남쪽 갱도와 가까운 중앙행정구역 내에 2개 지원시설 건물, 경비병력 막사, 검문소 건물이 남아 있고, 관제센터와 2층짜리 사령부 건물, 지원시설도 그대로 있다고 한다.

    美‘38노스’는 이 같은 점을 지적하며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를 파괴한 것은 비핵화를 향한 좋은 시작임이 확실하지만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북한이 핵실험장을 다시 복구하는 비상 계획을 세워놓은 게 아닌지 의심했다. 즉 미국이 원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고 보기에는 의문점이 많다는 뜻이었다.

    ‘중앙일보’는 美‘38노스’가 위성사진을 분석하기 전인 5월 26일 한국 핵전문가들의 비슷한 지적을 전했다. 북한이 갱도 입구만 폭파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이었다.

    당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한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영상에서 기껏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폭음과 폭발 때 나는 불빛 정도인데 폭음 소리가 맑지 않고 영상도 끊어져 확인이 힘들고, 폭발 때 불꽃도 낮이어서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핵전문가가 현장에 가지 않고 영상만 봐서는 갱도 폭발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붕괴된 갱도를 복구하는 것은 새로 갱도를 파는 것보다 쉽다”면서 “북한이 각 갱도마다 500여 명 정도만 동원하면 한 달이면 다시 핵실험을 사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진수 前원자력통제기술원(KIMAC) 책임 연구원은 “6차 핵실험의 위력이 TNT 6만 톤을 넘었는데 2번 갱도가 이 정도를 버텼다”면서 “북한이 이 정도 규모의 TNT를 썼을 리가 없다”고 지적하며 핵실험장 갱도 내부를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을 지적했다.
  • ▲ 지난 24일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폭파 당시 모습. 비핵화 작업을 했던 美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폐쇄가 아니라고 봤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24일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폭파 당시 모습. 비핵화 작업을 했던 美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폐쇄가 아니라고 봤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미 핵전문가들 “붕괴된 갱도 복구 쉽다. 저 정도면 금방 복구”

    미국의 핵전문가들도 국내 전문가들과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5월 31일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 셰릴 로퍼 前로스 알라모스 연구원의 의견을 전했다.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사찰에 참가했던 올브라이트 ISIS 소장은 “폭발 사진은 공개됐지만 북한이 주장하는 것처럼 갱도가 완전히 붕괴됐음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신 취재진들이 핵실험 갱도 내부로 연결되는 배선 장치를 목격하기도 했다고 하나 폭파 장면을 멀리 떨어져 지켜본 한계가 있었던 점을 지적하며 “북한의 주장대로 완전히 폐쇄된 것이 아닐 경우 핵실험용 갱도는 몇 주 내에 다시 가동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셰릴 로퍼 前로스 알라모스 연구원은 “북한의 이번 폐기로는 갱도 수십 미터 정도가 무너지는 데 그쳤을 것”이라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주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제가 취재진들이 촬영한 영상을 살펴봤는데 갱도 폭파에 사용한 장치는 매우 조악해 보였고, 폭발도 최소한의 수준에 불과해 보였다”면서 “그 정도 폭발은 초속 10여 미터 정도에 불과한 것이라 해당 갱도는 다시 뚫으며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로퍼 前연구원은 또한 자신이 카자흐스탄 세미팔라틴스크의 데겔렌 산 핵실험장 해체 작업에 참여했을 당시 위험한 수준은 아니지만 방사능 유출이 발생한 적이 있다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당시 외신 취재진들이 방사능 측정기를 갖고 가지 못했던 점이 아쉬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 핵전문가들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영구 폐쇄했다는 북한 측의 주장에 여전히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앞두고 의혹을 해소하려면 국제기구나 美정부의 핵전문가들을 현장으로 보내 검증받는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