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완의 박제로 천재를 꿈꾼 시인 이상이 무대 위에서 비상한다.

    지난 24일 개막한 '스모크'는 이상의 연작 시 '오감도(烏瞰圖) 제15호'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창작 뮤지컬이다.

    모든 걸 포기하고 세상을 떠나려는 '초(超)', 순수하고 바다를 꿈을 꾸는 '해(海)', 그들에게 납치된 여인 '홍(紅)' 세 사람이 아무도 찾지 않는 폐업한 한 카페에 머무르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 이면에는 세상과 발이 맞지 않았던 절름발이 이상의 삶과 예술, 고뇌와 함께 식민지 사회의 암울한 시대상을 '초·해·홍' 세 명의 주인공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추정화 연출은 3일 오후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진행된 프레스콜에서 "현란한 언어 유희를 아는 이상 시인이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지구 최고의 래퍼가 됐을 것"이라며 "한 마디로 하자면 '용사'라고 부르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그의 삶은 그렇지 못했을지라도 글을 보면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오감도' 시에서 '13인의 아해(아이)가 도로로 질주하오'라는 구절을 읽었을 때 제 가슴이 뛰었다. 한계점의 숫자라고 할 수 있는 12를 뛰어넘어 무한대로 질주하는 모습이 용사 같았다"고 말했다.
  • 뮤지컬 '스모크'는 작품의 핵심 소재인 시 '오감도' 외에도 '건축무한육면각체', '회한의 장'을 리봇해 소설 '날개', '종생기' 등 한국 현대문학사상 가장 개성 있는 발상과 표현을 선보인 이상의 대표작을 대사와 노래 가사에 절묘하게 담아냈다.

    2016년 12월 트라이아웃 공연을 선보인 후 지난해 정식 공연을 올렸다. 올해는 수정 과정을 통해 대부분의 곡들이 편곡됐으며, 무대도 상당 부분 달라졌다. 트라이아웃에 있었지만 초연에서 사라진 홍의 넘버 '생(生)'을 추가했으며, 무대는 하나의 현대미술 작품을 연상케 하는 하프돔 구조가 돋보인다.

    추 연출은 "트라이아웃 때부터 항상 시각적인 거울의 형상화를 고민했다. 당시 밑바닥이 큰 거울이라 그 안에서 세상을 표현했는데 아무도 몰랐다. 초연 때는 데칼코마니를 떠올렸다. 재연에서는 조명감독과 무대디자이너가 바뀌면서 무대 전체를 거울로 세워보자고 했다. 극 중간에 현란한 거울이 등장하는데, 그 부분이 발전적인 변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초연을 꾸리고 한 관객이 '왜 홍의 캐릭터를 그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했냐'는 얘기를 들었다. 그게 늘 숙제였다. 홍의 절박함을 초연에서는 살리지 못했는데, 재연에서는 홍의 넘버를 보완해 캐릭터가 구체화되고 강해졌다. 음악적인 완성도 면에서도 깊어졌다"고 덧붙였다.
  • 뮤지컬 '스모크'는 3인극으로 배우들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재연은 김재범·김경수·김종구·임병근(초 역), 박한근·윤소호·황찬성·강은일(해 역), 김소향·정연·유주혜(홍 역)가 출연한다.

    지난해 일본에서 뮤지컬 데뷔를 마친 2PM 멤버 황찬성은 "일본에서는 뮤지컬 '알타보이즈', '인터뷰'를 공연했는데, 모두 한국에서 연습했다. 준비하는 과정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타보이즈' 연출이 추정화 연출가였고, 그때부터 연을 맺었다"고 전했다,

    뮤지컬 데뷔작으로 '스모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대본을 재미있게 봤다. 처음 볼 때 그 자리에서 3번 읽었다. 첫 번째는 이해가 안되지만 마음이 동했다. 2번째는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고, 3번째는 감정을 느꼈다. 특이하고 좋은 작품"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또, 황찬성은 "연습을 하면서 '이것도 연기냐'며 이상 시인처럼 신랄한 비판을 받을 수 있겠다는 걱정을 했다. 너무 떨 정도로는 아니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있었다"며 "저만의 해를 보여주기 보다는 제가 느낄 수 있는 감정선을 찾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뮤지컬 '스모크'는 7월 15일까지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