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명 가량의 홍콩 응원단, 중국서 철도로 평양行…양각도 호텔 묵으며 대접받아
  • [지난 3월 27일 평양에서 AFC아시아컵 B조 예선 홍콩-북한 예선 최종전이 열렸다. 홍콩 축구팬 40여 명이 이 시합을 관람하기 위해 단체 투어 형식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필자는 평양을 방문한 익명을 요구한 축구팬 한명과, 다른 축구팬에게 여행기를 입수하여 게재한 홍콩언론 ‘香港01‘의 협조를 얻어 여행기를 재구성하여 아래에 소개한다.]

    작년 홍콩 대표팀과 북한과의 아시아컵 예선전 평양 시합이 올해 3월 27일로 확정됐을 때부터 우리는 평양 방문을 계획했다. 수소문하니 다른 응원단체에서도 가겠다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 할 수 있었다.

    약 40명 정도로 원정응원단을 꾸려서 여행사를 통해 북한 체류 3박 포함 총 5박 6일로 북한 방문 일정을 세웠다.

    3월 25일 홍콩국제공항에 축구팬 일행들이 모였다. 주변에서 안전을 걱정했지만, 은둔의 나라에 간다는 신비감이 더했다. 거의 서로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지만 특수한 여행인 탓에 금방 친해졌다. 여정은 셴양까지 중국남방항공 편을 이용한 후 국제열차로 단둥-신의주를 거쳐 평양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짜여졌다.

    26일 자정 무렵 셴양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4224호 평양행 국제열차에 탑승했다. 5시간 걸려 정오 쯤 단둥에 도착한 후 기차는 압록강을 건너 5분 만에 신의주에 도달했고, 이윽고 휴대폰 전파가 끊겼다. 그런데, 여기서 두 시간이나 걸리는, 여태 경험 못한 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군인들이 기차에 올라타더니 승객들의 여권과 비자를 일일이 확인하고, 가방 속의 과자와 화장품까지도 내용물을 따졌다. 심지어 휴대폰의 시간별 통화내역도 일일이 다 기록했다. 휴대폰을 다루는 손놀림이 기종을 불문하고 수리 센터 기사 이상의 수준으로 능수능란한 것이 놀라왔다. 검문검색이 끝날 무렵 농담을 잘 하는 우리 여행단의 리더가 군인들에게 수고했다고 박수를 유도했고, 군인들은 웃으면서 화답하며 기차에서 내렸다. 그러는 사이에 두 명의 미녀들이 기차에 올라타서 도시락을 나눠줬고, 리더와 축구팬 몇명이 ‘예쁘다’면서 그들을 따라 기차에서 내려서 악수를 청했다.

    평양으로 향하는 국제열차는 너무 느리게 달린데다 더워서 아주 혼이 났다. 신의주에서 230킬로미터의 거리를 가는데 6시간이나 걸렸다. 평양에 오후 6시쯤 도착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안내원 3명의 인솔 하에 관광버스로 양각도 국제호텔로 간 후 여장을 풀었다. 양각도 국제호텔은 고려호텔과 더불어 평양의 최상급 호텔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호텔 무선인터넷 요금을 시간당 미화 200불(용량 50MB)을 받았다.
  • 다음날(27일)은 홍콩축구팀에게 있어서 중요한 날이었다. 북한과의 시합에서 이겨야 B조 예선통과가 확정된다. 특별한 장소에서 열리는 만큼 긴장감도 감돌았지만, 그간 너무 특이한 얘기를 들어와서인지 실제로 특별한 느낌은 덜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김일성경기장이 있는 개선역으로 향했다. 경기장에 다가가니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꼬치구이에 꽂힌 고기처럼 늘어서서 경기장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경기장 주변의 경계는 홍콩보다 느슨했고, 놀라운 것은 암표상이 보였다는 것이다.

    사전에 응원용 나팔 사용을 금지한다는 주의를 받은 것 이외에 별다른 제약도 없었다. 대신 경기장에서 파는 응원도구를 사서 쓸 수 있었고, 홍콩과는 달리 물병을 들고 들어갈 수 있었다. 또한 놀랍게도 이전 중국 원정 응원에서 제지당한 응원 현수막을 들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을 대하는 것에 비해 그들의 우리에 대한 태도는 입국 때부터 마치 동물원의 동물 다루는 듯 했다. 경기장 안에서는 우리만의 구역이 따로 있어 북한 관중들과 완전하게 격리되었고, 화장실마저 따로 써야 했다. 현장에서 파는 도시락은 중국 화폐로 사야 했다.

    홍콩에서는 항상 응원하기 좋은 맨 아래 자리를 잡았지만, 김일성 경기장에서는 중간 정도의 자리를 배정받았다. 그 이유는 경기 시작 후 알게 됐다. 우리 주변을 무섭게도 군인들이 겹겹이 에워쌌고 그 군인들을 다시 수천 명의 북한 관중들이 ‘포위’했다. 게다가 우리는 숫자가 너무 적어서 이러면 눈에 띄나 했다. 한마디로 우리를 군인과 북한 관중들로 포위하기 위해 이런 자리에 배정한 것이었다. 이날 김일성 경기장은 수용 인원의 8할인 3만 2천명의 관중이 입장했다고 나중에 들었다.  

    시합 전 선수들의 워밍업 때 우리는 선수들이 놀라지 않도록 정숙해 줄 것을 요구받았고, 워밍업 도중 북한 선수들이 우리에게 고맙다고 박수를 쳐 줬다.
  • 이 경기는 북한에서 생중계됐다. 홍콩 선수들이 소개받을 때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고, 포위된 응원환경에도 불구하고 응원은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주변의 분위기 때문인지, 홍콩에서 문제가 된 국가연주에 대해 야유를 퍼붓는 홍콩인은 없었다.

    우리를 계속 따라다닌 미녀 안내원들은 이런 우리들이 왠지 신경 쓰이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북한과 관련한 단어와 모욕적인 구호를 쓰지 말도록 주의하면서도, 우리들과 경기 도중 간간히 얘기를 나눴다. 우리가 응원을 시작하자 경기장 관중의 약 반 정도가 각 섹션별 리더들의 유도에 따라 응원을 시작했고, 특히 우리를 둘러싼 수천 명의 관중들이 계속 고함을 지르는 것이 마치 계획된 행동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우리와 멀리 떨어진 북한 관중들은 지쳤는지 응원을 열심히 하지 않았고, 다른 나라 시합에서도 그렇듯 경기 종료 전에 경기장을 떠난 사람들도 보였다. 반면 우리를 포위한 관중들은 끝까지 떠나지 않았다.

    시합은 애석하게도 0:2로 홍콩이 패배했고, 아시아컵 B조 3위로 예선탈락이 확정됐다. 우리는 수가 적어 응원의 함성이 홍콩 선수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선수들은 이 특이한 나라에 어렵게 응원하러 온 우리의 정성을 모르지는 않았다.

    우리는 안내원들에게 경기 종료 후 그라운드에 들어 갈 수 있도록 처음부터 계속 요구했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허락을 했고,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이 신기한 북한여행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경기장을 떠날 때, 홍콩 선수단의 버스가 옆에서 같이 떠났는데, 버스에 탄 알렉스 아칸데 선수(나이지리아 출신)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칸데의 표정에서 북한에서의 느낌이 서로 비슷한 것을 이심전심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날 패배로 홍콩 선수들의 3년에 걸친 아시아컵의 준비와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무사히 온 것에 감사하면서 그날 저녁을 호텔에서 북한식 오리구이와 술로 회포를 풀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갑자기 미녀 안내원들이 우리에게 와서는 놀랍게도 “당신들의 응원모습을 보고 그 애국심에 감동했다. 당신들은 멋진 미남응원단”이라며 감격스러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몇몇 북한학생들과 같이 계속 우리를 안내했는데, 세상에 이런 독특한 응원이 있는 줄 몰랐다며, 그 응원방식이 자기들에게는 충격적이자 신선했다고 말했다.(필자 注 홍콩인들은 축구응원에서 ‘대~한민국’을 모방한 ‘We~ Are Hong Kong’을 외친다.)
  • 그 다음날(28일)은 판문점 관광을 갔다. 본 여행기는 축구에 관한 주제이기 때문에 판문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단 판문점에서는 남쪽의 휴대폰 전파를 사용하여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고 들어 페이스북 접속을 시도했지만, 실제로는 남북 어느 쪽의 전파도 잡히지 않았다.(필자 注 판문점에서는 남북한이 서로 방해 전파를 방출하는 관계로 양쪽 휴대폰이 통하지 않는다.)  

    다음날(29일) 평양에 들어온 경로대로 신의주-단둥-셴양을 거쳐 30일 홍콩으로 돌아왔다. 단둥에 들어온 직후 인터넷이 다시 통하기 시작했고, 왠지 모를 해방감에 ‘인터넷이 통한다’ 고 페이스북에 소감을 바로 올렸다. 홍콩에 와서야 비로소 지옥의 도시에서 행복한 내 나라로 돌아온 것을 실감했다.

    그렇지만 북한의 거리에서 받은 느낌을 솔직히 말하자면, 북한의 수도 평양의 도로는 넓었고 신기한 모양의 고층 빌딩이 많이 보였다.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니 버스를 타고 휴대폰을 만지고, 시장을 보고 책을 읽는 등 홍콩과 별다를 바 없었고, 치안은 유럽마냥 안전해 보였다.

    식사는 포식을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들을 위해 최상의 요리를 내놓은 듯 했다. 이번 여행만으로 북한의 진정한 모습을 봤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평생 기억에 남기에는 충분한 여행이었다. 이런 의미 있는 응원여행이 언젠가 또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