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검토 필요한 사안…정치공학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부적절" 전문가들 성토
  • ▲ 지난 22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4월 내 선거연령 하향 및 6·13 지방선거 청소년 참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여학생 3명에 대한 삭발식을 단행했다. ⓒ연합뉴스
    ▲ 지난 22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4월 내 선거연령 하향 및 6·13 지방선거 청소년 참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여학생 3명에 대한 삭발식을 단행했다. ⓒ연합뉴스

    최근 국회 앞에서 10대 여학생들이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며 삭발식을 단행한 것을 두고,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 학생들의 표를 얻기 위해 아이들을 앞세워 청소년 참정권 문제를 정치쟁점화 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이하 촛불청소년연대)는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4월 내 선거연령 하향과 6·13 지방선거 청소년 참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삭발식을 진행했다.

    이날 삭발식을 결심한 김모(16)양은 "1980년 국회에서 시작된 만 18세 이하 선거연령 하향 논의가 지금까지 제자리 걸음하고 있으며, 미성숙이라는 낙인은 청소년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는 가장 악랄한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김양과 함께 삭발식에 나선 권모(15)양과 김모(15)양 역시 "청소년도 시민이기에, 시민이라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 "(청소년) 참정권이 없다는 것은 정치뿐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3명의 여학생이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며 눈물의 삭발식을 진행할 때, 촛불청소년연대 관계자 혹은 친구로 보이는 학생들도 현수막 뒤에서 '청소년이 투표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비장한 표정으로 '선거연령 하향'을 외쳤다.

    이에 대해 교육계 일각에서는 "찬반을 떠나 '촛불청소년연대'라는 단체의 면면을 봤을 때, 과연 이 단체가 청소년의 전반적이고 객관적인 의사를 반영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촛불청소년연대는 청소년 참정권 보장과 학생인권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 9월 출범한 단체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김수정 민변 아동인권위원장, 조창익 전교조 위원장 등 상임대표 7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촛불청소년연대는 지난 2일 기준 370여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특히 이 연대체에는 각 지역 전교조, 민노총 지부가 다수 차지하고 있어 '특정 이념'에 기울어진 단체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더구나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홍천골프장대책위 같은 청소년 참정권과 크게 연관이 없는 단체들도 뒤섞여 있다.

    교육계 인사 A씨는 "이 단체가 청소년의 객관적이고 전반적인 의사를 반영하는지 의문이고, 참여 단체나 인사들이 한쪽 성향에 치우친 사람들로 이뤄져 특정 이념을 대변하는 세력을 등에 업고 사실상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22일 국회 앞 삭발식에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외에도 바른미래당, 정의당 원내대표들이 참석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날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현장에서 학생들과 같은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우 원내대표는 "어린 학생들이 삭발식까지 하는데 국회가 선거연령을 하향하지 못하고 있어 부끄럽다"고 했고,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청소년 참정권은 주권의 문제"라며 "4월까지 갈 것도 없이 3월 내에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도 "마산 의거도 고등학생이 주도했고, 우리는 학생들이 만든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것"이라면서 "자유한국당은 (청소년 참정권을) 왜 반대하나. 차라리 국회와 대한민국을 떠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학생들을 앞세운 일련의 삭발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을 두고 교육 전문가들은 "선거연령 하향에 대한 충분한 논의 과정 없이 정치공학적으로만 접근하려는 것은 위험하다"며 한목소리로 우려의 뜻을 표했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정치권에서 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다. 그러나 선거연령 하향에 대해 당장 필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하향 약속이 아니라, 도입했을 때 어떤 문제나 부작용이 있는지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선거연령 하향은 기본적으로 찬성반대, 보수진보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접근할 사안이 결코 아니며 교총의 입장도 그러하다"면서 "교육공학적으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선거연령 하향 논의를 한다면 교총은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청소년에 선거권을 확대한다는 것은 그간 성인사회에서만 적용됐던 사안이 학교, 교실과 연계된 새로운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라며 "충분한 논의를 통해 향후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보완 방안이 마련된다면 수용할 수 있지만, 선거를 2개월여 앞둔 정치인들이 앞다퉈 청소년 참정권을 보장해주겠다고 나서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했다.

    조형곤 21세기미래교육연합 대표는 "청소년 참정권이 매 선거철마다 나온 이야기라는 걸 안다면 우리 정치권이 성숙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정치권은 4년 뒤를 보지 않는다. 진정 나라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당장 6월 지방선거 이전이 아니라) 다음, 혹은 다다음 선거에 대비해 사안을 검토하고 논의하자고 하겠지만, 선거 때만 들썩인다. 이게 바로 여야(與野) 후진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연령을 낮춤으로써 촉발되는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선 안 된다. 오로지 교육적 측면으로 바라봐야지, 정치적이나 선거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조 대표는 "헌법에서는 교육현장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이 깊숙히 개입돼 있다"며 정작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연령 하향이 아니라 "정치이념에 물든 교사들의 영향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의 문제"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어 "전교조의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정치 참여를 허용했을 때 이미 다수 학교에 포진하고 있는 전교조 교사들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따라서 만18세, 19세가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이 특정 정치사상을 가지고 움직이는 교사들의 영향을 받느냐 안 받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