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습으로서의 탄핵, 자연으로서의 正義

탄핵 동조한 정치인들이 진심으로 잘못 인정할 때, 우파 통합의 길 열릴 것

지영해 칼럼 | 최종편집 2018.03.10 13:54:50

▲ 99주년 3.1절을 기념해 서울 도심에서 열린 범국민대회 무대에 설치된 대형 태극기와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 ⓒ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권력에 눈이 어두워, 온갖 거짓과 감언이설로 무지한 사람들을 부추기고, 죄도 없는 대통령을 끌어내? 에이 천벌을 받을 것들.” 

오직 집에 칩거하며 지상파 3사와 종편 TV만을 통해서 세상소식을 들어왔던 한 90세 노파가  지난 가을 TV뉴스를 보다가 불쑥  던진 말이다.  

박근혜 탄핵결정 후 약 반 년 후다. 

인간에게는 소위 자연적 정의감이라는 것이 있다. 

공적 영역에서 상식에 반하는 불의를 경험하고 그래서 인간이 갖는 생래적인 도덕적 정서에 상처를 받았을 때 일어나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물론 문화와 시대에 따라, 또 그 사회나 공동체가 전통적으로 어떤 가치를 가지며, 또 그 가치를 어떻게 교육과 학습을 통해 보전해 왔느냐에 따라 그 자연적 정의의 내용이나 그 표출하는 허용도의 폭이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다. 

하지만, 인간의 상식과 합리성을 허무는 침해와 공격이 일어날 때는 인간은 보편적으로 같은 반응을 보인다. 

가장 줄기차게 유지되고 있는 자연적 정의가 소위 보복법 (lex talionis)이다. 

살인을 당한 측은 동일한 방식으로 상대방의 피를 볼 때까지 그 영혼이 안식을 취하지 못한다. 

최근 한국사회에 불고 있는 미투 운동도 마찬가지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존엄한 신체의 자유가 무시당하고 침해당했을 때, 그것이 공개적으로 폭로되어 인지되고 용서받기 전까지는 그 피해자의 영혼이 쉬지 못한다. 

문화와 전통과 가치가 어떻게 다르건 또 어떻게 변하건, 자연적 정의가 침해를 당했을 때는 그 기억과 함게 그 분노와 고통은 영원토록 간다. 

그래서 보복법은 인류역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요약되는 이 수천 년의 역사를 갖은 법은 그 야만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실정법의 밑에서 아직도 살아서 숨쉬며, 그 법체계에 안정성을 제공한다. 합의나 동의, 선출, 기타 의식적으로 창출되는 모든 규칙과 인습적 정의도 결국 인간에게 생래적으로 주어진 자연적 정의감을 파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유지되는 것이다.

박근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의아해 하는 것이 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이 그렇게 줄기차게 태극기를 들고 길거리로 나와 탄핵을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계속 이러고 있는 것일까? 

지금 국가적으로 얼마나 더 시급한 문제들이 있는데 이러고 있는 것일까?

머리가 모자란 사람들이 아닌가?

이러한 질문을 하는 사람은 다음의 동일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도대체 언제 시절 성추행인데 이걸 지금 들고 나온다는 것인가? 

한 공인이 부정의하게 취급되었다는 이 상처받은 감정은 헌재의 탄핵결정이라는 형식적 정의도, 우파 대단결이라는 정치적 필요도, 공인으로서 당사자의 정무수행능력에 대한 평가여부도, 아니 모든 합리적 계산과 요구와 필요를 넘어서는 깊은 내면적 상처의 표출이다. 

탄핵을 주도하고  잠시 좌파적 정치질서를 세운 사람들, 그리고 우파의 통합을 외치며 태극기 집회자들을 질타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상처로부터 나오는 분노의 힘이다. 

인간의 본성안에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로 존재하는 자연적 정의는 그것이 허물어져 상처를 내었을 때,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한 그것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과 행동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제도적 합의나, 금전으로서의 매수나, 언론이나 교육을 통한 세뇌나, 폭력을 통한 보복의 위협이나, 그 어느 것도 잠재울 수 없다. 

성추행의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용서를 비는 가해자의 진정어린 사과다. 

탄핵에 동조했던 우파정치인들로부터 진정한 잘못의 인정이 없이는 보수는 영원히 통합되지 못할 것이다.

부정의했던 탄핵의 과정과 헌재의 판결에 대한 진정어린 잘못의 인정이 없으면, 서울의 길거리는 태극기 시위로 영원히 잠잘 날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일순간의 정치적 편의성을 넘어서는 자연적 도덕의 질서 문제다. 

2500년전 그리스 철학자들은 정의가 자연이냐 인습이냐, 생래적이냐 자의적이냐, 본성이냐 선택이냐를 물었다. 

끊임없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오는 사람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미투(Me too)의 기억들, 2018년 봄 대한민국은 전자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자연적 정의를 인간의 의식으로 이길 방법은 없다.



지 영해 

영국 옥스포드대학교 동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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