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외신 통해 성추행 의혹 전면 부인.."작품 활동 계속할 것"최영미 "국민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 스스로 날려 보내 딱해"
  • "However, to my foreign friends, to whom facts and contexts are not readily available, I must affirm that I have done nothing which might bring shame on my wife or myself."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시인 고은(사진·85)이 영국 출판사 블러드액스(Bloodaxe Books)에 보낸 서신을 통해 "지금껏 자기 자신과 아내에게 부끄러울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며 자신에게 제기된 '성추문'을 전면 부인하는 입장을 밝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고은은 과거 자신의 작품을 번역, 해외 문단에 소개해온 블러드액스의 편집자(닐 애스틀리)에게 "최근 여러 의혹들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자신의)행동이 야기한 의도하지 않은 고통에 대해선 이미 유감을 표했다"고 밝히면서도, "특정인이 제기한 상습적인 성추행 의혹에 대해선 단호히 부인한다"는 성명서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I regret that my name has been brought up in the recent allegations. I have already expressed regret for any unintended pain that my behaviour may have caused. However, I flatly deny charges of habitual misconduct that some individuals have brought up against me."

    이 성명에서 고은은 "한국에서는 진실이 밝혀지고 모든 논란이 해소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번 논란에 대해 제대로 된 사실을 접하기 힘든 나의 외국 친구들에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부끄러울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고 내가 한 사람으로서, 또한 시인으로서 명예를 지키며 글을 계속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However, to my foreign friends, to whom facts and contexts are not readily available, I must affirm that I have done nothing which might bring shame on my wife or myself. All I can say at the moment is that I believe that my writing will continue, with my honour as a person and a poet maintained."


    이와 관련, 블러드액스의 편집자 닐 애스틀리(Neil Astley)는 "지난달 종양 치료를 위해 입원한 고은은 현재 회복 단계에 있으나, 수술 뿐 아니라 최근 제기된 각종 성추문 의혹으로 심신이 많이 쇠약해진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 언론에 소개된 고은에 대한 추문들은 여전히 한 사람의 주장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입증되지 않은 다른 논평(발언)들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조심스런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성스캔들 이후 고은의 시는 한국 교과서에서 사라졌고, 한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작가 중 한 명으로서 그가 누려왔던 다양한 특권을 포기하라는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면서 "그가 이렇게 추락하게 된 것은 서구의 작가들이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높았던 고은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에 대한 반발 차원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에서 사라지고 있는 고은의 문학 작품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의 개인적 위법 행위를 용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해외 언론을 통해 자신에게 제기된 성추행 의혹을 부인하는 고은의 성명이 나오자, 최초로 고은의 행적을 폭로했던 시인 최영미(57)가 이를 재반박하는 입장을 밝혔다.

    최영미는 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고은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를 날려 보낸 것 같다"며 "진심으로 사과하고 국민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었는데 딱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영미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일일이 응하지 못함을 양해 바란다면서 "(자신이)동아일보에 전한 글과 말은 모두 사실이고, 나중에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조사하는 공식기구가 출범하면 나가서 상세히 밝히겠다"는 입장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앞서 최영미는 지난달 27일 동아일보에 보낸 '미투 고백문'에서 오래 전 자신이 목격했던 고은의 부적절한 행동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이 글에 따르면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의 어느날 저녁, 종로 탑골공원 모 술집 안에서 의자 위에 누워 있던 고은이 갑자기 바지 지퍼를 내리더니 자신의 손으로 아랫도리를 주무르고, 이를 지켜보는 다른 이들(여성 시인들)에게 "여기 좀 만져달라"는 요구까지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은 시인 최영미가 동아일보에 보내온 육필 원고 전문.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내가 목격한 괴물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널리 공개하지 않으려 했는데, 반성은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

    내가 앞으로 서술할 사건이 일어난 때는 내가 등단한 뒤,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의 어느날 저녁이었다. 장소는 당시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술집이었다. 홀의 테이블에 선후배 문인들과 어울려 앉아 술과 안주를 먹고 있는데 원로시인 En이 술집에 들어왔다.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그는 의자들이 서너개 이어진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천정을 보고 누운 그는 바지의 지퍼를 열고 자신의 손으로 아랫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에 충격을 받은 나는 시선을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황홀에 찬 그의 주름진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 흥분한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한참 자위를 즐기던 그는 우리들을 향해 명령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야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

    ‘니들’ 중에는 나와 또 다른 젊은 여성시인 한명도 있었다. 주위의 문인 중 아무도 괴물 선생의 일탈행동을 제어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재미난 광경을 보듯 히죽 웃고….술꾼들이 몰려드는 깊은 밤이 아니었기에 빈자리가 보였으나, 그래도 우리 일행 외에 예닐곱 명은 더 있었다.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더니 술집여자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아유 선생님두-”

    이십 년도 더 된 옛날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처치하기 곤란한 민망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나도 한때 꿈 많은 문학소녀였는데, 내게 문단과 문학인에 대한 불신과 배반감을 심어준 원로시인은 그 뒤 승승장구 온갖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주무르는 게 그의 예술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돌출적 존재”인 그 뛰어난(?) 시인을 위해, 그보다 덜 뛰어난 여성들의 인격과 존엄이 무시되어도 좋은지.


    [사진 제공 =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