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저녁 한미정상회담… 협상테이블서 치열한 수싸움 전망
  •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 저녁(한국시각)부터 첫 한미정상회담을 갖는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 저녁(한국시각)부터 첫 한미정상회담을 갖는다. ⓒ뉴시스 사진DB

    환영만찬으로 대면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통해 본격적인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는다.

    북한과 통상 문제가 회담의 주 의제로 예고된 가운데 '협상의 귀재'로 널리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간의 치열한 수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첫 본격 회담인 한미정상회담이 30일 저녁(한국시각)에 백악관에서 열린다.

    지금까지의 미국 순방 분위기에 따라 정상회담의 성과를 낙관하는 예측이 적지 않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방향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지는 않다"며 "만찬이 정상회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공식실무 방문으로서는 이례적인 부부동반 환영만찬과 그 과정에서의 각종 파격적인 예우로 분위기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정상회담이 우리 쪽에 유리한 결과가 나온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각종 예우는 '파격적인 청구서'를 들이밀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내걸고 당선돼 한미 간의 무역 역조를 바로잡아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 보수정부 9년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며 당선돼 정책전환을 미국에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숙제를 가진 문재인 대통령은 각각 어떤 전략으로 회담에 임하게 될까.

    트럼프 대통령은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알려진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사드 배치와 관련한 사항을 보고받아 격노하고, 마이크 폼페오 CIA국장으로부터 북한의 동향과 관련해 일일보고를 받는 등 외교·안보 분야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백악관 측은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브리핑에서 "사드는 주요 의제가 아니다"라며 "다만 한미 간의 무역 불균형은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심으로는 통상 분야에 무게중심을 싣고 있다는 관측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쉽사리 양보하기 어려운 처지라는 것을 간파해, 대북정책과 농업 개방 등에서 이해를 해주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는 대신 무역 역조가 심각한 자동차와 철강 분야에서 댓가를 받아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전에 열린 환영만찬에서 "무역 및 다른 복잡한 문제에 대해 토론하면 늦은 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데 이어, 만찬 직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도 "새로운 무역 협정에 대해 토론했다"고 마치 한미FTA 재협상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모습을 취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에 도착한 이래 일거수일투족과 메시지를 면밀히 파악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환영만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장진호 전투기념비에서 한 연설을 봤다"며 "매우 훌륭하고 감동적인 연설"이라고 덕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장진호 전투기념비 헌화를 시작으로 미국 순방 내내 '한미동맹의 가치'에 대해서 강조하며, 백악관 방명록에도 '한미동맹, 위대한 여정'이라고 작성하는 등 일관된 컨셉을 보였기 때문에 "동맹 사이에 이렇게 한 쪽만 막대한 흑자를 올리는 조약이 어디 있느냐"고 역으로 찌르고 들어갈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공성계(空城計)를 구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출국하는 전용기 기내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통상 문제와 관련한 질문을 받자, 한미FTA는 호혜평등의 조약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FTA가 개선되고 발전될 필요가 있다면 협의할 문제이고,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우리에게 불리한 의제인 통상·한미FTA 문제에 관해 짐짓 담대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 문제를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하면 대화의 가능성은 열어놓으면서도, 서비스 분야에서 보고 있는 적자와 농업 분야에서의 피해를 거론하며 일방적인 '조정'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오전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서밋 기조연설에서 "오랜 친구들이 우정을 나누는 식탁에는 와인이 잘 어울린다"며 "요즘 한국의 식탁에서는 미국산 와인이 인기"라고 말했다.

    환영만찬장에도 캘리포니아산 와인 두 병이 곁들여졌다는 것을 언급하며, 이러한 분야에서 우리도 대미 무역 적자를 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킬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공성계를 성공적으로 구사하려면 유연하면서도 담대해야 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대북 정책과 관련해 반드시 미국에 우리의 입장을 설득하고 관철하겠다는 포지션에 놓여 있다는 게 불리한 점으로 지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내간담회에서 대북 정책과 관련해 '단계적 접근법'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북한이 핵동결을 하면 한미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지, 기왕 만든 핵무기를 폐기하면 또 뭘 해줄 수 있을 것인지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고도 했다.

    청와대 참모들도 이러한 대목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보안이 유지돼야 할 중대한 협상전략으로 간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반면, 한미FTA에 있어서 "언제든지 협의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대북 문제는 지나치게 진지하고, 통상 문제에는 지나치게 '쿨'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협상의 기술'이라는 저서를 쓸 정도로 협상에 정통한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과 '상대에게 내줄 수 있는 이익'을 너무나 쉽게 분별할 수 있게끔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다.

    결국 한미정상회담에서 펼쳐질 양 정상 간의 수싸움은 트럼프 대통령의 진정한 공격 포인트가 어디에 있는지, 또 이를 방어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나 유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반드시 대북 정책에 있어서 '단계적 접근법'을 지지 받겠다는 결심, 북한이 핵을 '동결'하면 한미는 무조건 대화에 나서야 하고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입장을 약속받겠다는 자세로 협상을 고집하면, 이 댓가로 통상 분야에서 많은 것을 양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