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무산 아주 아쉬웠다" 트럼프의 '주한미군 분담금 공격'에 SOS
  • ▲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DC에서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을 만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DC에서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을 만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면담 일정 조율 실패로 방한이 무산돼 '홀대설'을 야기했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의 만남을 따로 챙겼다.

    상원지도부 간담회에서 만났지만, 공화당의 대선후보를 지내는 등 영향력이 큰 정치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정상회담을 마친 뒤 별도로 시간을 낸 것이다. '사람 팔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미 의회 내의 친한파 정치인을 따로 챙긴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오전 4시(한국시각)부터 미국의 영빈관 격인 블레어하우스로 찾아온 매케인 의원과 40분간 회동했다.

    매케인 의원은 지난 5월말 방한하려 했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 일정을 조율하지 못해 방한 자체가 무산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열렸던 상원지도부 간담회에서 매케인 의원을 만났지만 다시 한 차례 별도 회동을 가진 것은 '홀대설'을 확실히 근절하겠다는 의지의 소산으로 여겨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매케인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지난 5월,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 방한이 무산돼 아주 아쉬웠다"며 "어제(30일) 상원지도부 간담회 때 중심 역할을 해주고,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간담회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있어서 하지 못한 말도 있었을텐데 허심탄회하게 말해달라"며 "다음에 언제든지 한국에 오면 연락달라"고 따뜻이 환대했다.

    이에 매케인 의원도 "어제 상·하원 지도부와 함께 만난 것은 아주 좋은 면담이 됐다"며 "모든 언론과 보고서에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가 아주 성공적이라고 좋은 평가만 나오고 있다"고 화답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미 의회 내의 대표적인 친한파(親韓派)로 분류되는 매케인 의원을 상대로 방금 끝마치고 나왔던 정상회담에서 제기됐던 여러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매케인 의원과의 면담 직전에 있었던 한미 양국 정상의 공동언론발표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습적으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공정한 부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침 매케인 의원이 면담 도중 평택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협력에 사의를 표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반색하며 이 이야기를 꺼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택 미군기지는 세계에서 제일 넓은 450만 평 규모의 최첨단 기지로 조성되고 있는데, 관련 비용 중 100억 달러를 한국이 부담하고 있다"며 "한국 내의 다른 미군기지도 모두 부지를 부상으로 제공 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다른 우방국들보다 GDP 대비 높은 국방예산을 지출하고 있고 미국의 무기를 많이 수입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 분담금 관련 문제지기를 잘 이해시켜달라고 당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운용 비용과 관련해 불쑥 '흔들기'에 나섰을 때, 매케인 의원은 때마침 방미했던 홍석현 대통령특사를 만나 "사드 운용 비용은 미국이 낸다"고 일축한 적이 있었는데, 별도의 만남을 통해 다시 한 번 SOS를 친 셈이다.

    매케인 의원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미국에는 나처럼 한국을 도와줄 정치인들이 많다"며 "그러한 (미군 관련 많은 분담을 이미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민들에게 계속 상기시키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 ▲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DC에서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DC에서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친한파이지만 대중국·대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강경 매파로 분류되는 매케인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이날 면담에서 북한과 일본 관계에 대해서도 자문했다.

    매케인 의원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지난 3대에 걸친 미국 행정부의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며 "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보다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일 관계에 있어서도 "한국민의 자존심에 타격을 입힌 가슴 아픈 사안이 있어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이런 민감한 문제 해결에 대통령의 행운을 빈다"고, 내달초 독일 함부르크 G20정상회의 중에 열릴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의 해결을 기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3박 5일의 바쁜 워싱턴DC 일정 중에 별도로 시간을 쪼개 '홀대설'이 일었던 매케인 의원을 따로 만난 것은 아주 높이 평가된다.

    정치인의 앞날은 어찌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매케인 의원은 미국 정치권의 거물이고, 2007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대선후보를 지냈던 인물이다. 경위야 어찌됐던 물의를 빚었던 '홀대설'을 수습하지 않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난 1966년 9월 방한했던 리처드 닉슨을 만나지 않았다가 나라가 망할 뻔한 외교 참사를 겪은 바 있다.

    당시 닉슨은 부통령까지 지냈다가 1960년 대선에서 존 F 케네디에게 패한데 이어, 1962년 대권주자 출신의 자존심을 굽히고 출마했던 고향 캘리포니아주지사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그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를 '한물간 퇴물 정치인'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1966년 9월 닉슨이 방한해 면담 요청을 했을 때, 이동원 전 외무장관이 "사람 팔자는 알 수 없고, 닉슨은 차기 대선후보로 다시 나설 가능성도 있다"며 "아직 거물인데 마침 불우하니 이 때 후대하면 결코 우리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회동을 권했으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사람 이미 끝난 사람인데 구태여……"라고 혀를 차며 만나지 않았다.

    친한파를 자처하던 닉슨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홀대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조적으로 일본과 필리핀에서는 닉슨을 환대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단견은 불과 2년 만에 파국으로 돌아왔다.

    1968년 미국 대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닉슨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닉슨은 당선되자마자 우리나라와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할 뜻을 내비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제서야 최규하 외무장관과 이동원 전 장관을 불러 "그 때 잘해줄 껄"이라고 개탄했다.

    2년 전과는 입장이 완전히 뒤집혀 어떻게든 닉슨을 만나야 할 처지가 된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9년 8월, 닉슨의 여름휴가 때 그가 휴가를 보내고 있던 고향 샌프란시스코까지 찾아가 호텔에서 겨우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귀국한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동원 전 장관을 만나 "비통함의 연속이었다"며 "최소한 호텔 로비에서는 닉슨이 맞아주리라 기대했으나, 닉슨은 방문이 열릴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분하게 여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2년 전에 한국에 왔을 때 아무리 섭섭하게 대했기로소니 너무한 거 아니냐"고 불평했지만, 이동원 전 장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박대통령의 경솔한 실수 하나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것"이라고 냉정히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