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10월 31일까지 공연
  • ▲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左)과 고선웅 연출(右)
    ▲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左)과 고선웅 연출(右)
    함세덕의 '산허구리'가 10월 7일부터 31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된다. 이는 이근삼의 '국물 있사옵니다', '김영수의 '혈맥'의 뒤를 잇는 국립극단의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이다.

    국립극단이 2014년부터 선보인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은 근현대 희곡을 통해 근대를 조명해 동시대 한국인의 정체성을 묻고, 확인하고, 규명하고자 준비한 기획 시리즈이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6일 오후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진행된 '산허구리' 전막 시연 이후 간담회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며 해답을 찾아가는 작업이 국립극단이 해야 할 일이다"고 말했다.

    '산허구리'는 작가 함세덕(1915-1950)이 1936년 '조선문학'을 통해 21살의 나이에 발표한 첫 작품으로, 아일랜드 작가 존 밀링턴 싱의 '바다로 가는 기사들'에서 영향을 받아 사실적인 희곡을 썼다. 그는 일제강점기 서해안의 어촌 마을에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민족의 궁핍한 현실과 당시 사회의 모순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김윤철 예술감독은 "함세덕 작가는 짧은 기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펼친, 우리 연극사에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지만 현대사의 혹독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살아 충분히 조명 받지 못했다. '서정적 리얼리즘'과 '어촌문학'이라는 큰 의미를 품고 있는 '산허구리'를 통해 그의 초기 작품을 재조명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작은 바다마을의 초가집을 배경으로 하는 '산허구리'는 생계를 위해 바다로 나간 둘째 아들 복조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노어부 가족의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가듯 촘촘하게 그린다. 

    무대 위 손질되지 않은 초가집은 노어부가 상어에 한 쪽 다리를 잃고, 첫째 아들과 사위를 잃으며 맞이한 세월을 형상화해 한 가정에 닥친 비극을 극대화 시켰다. 특히, 공연 말미 노어부의 아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복조와의 재회를 연극적으로 표현한 장면은 현실에서 도망가지 않고 참담한 삶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에 방점을 찍는다.

  • ▲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左)과 고선웅 연출(右)
    자신만의 스타일로 '각색의 귀재'라 불리는 고선웅 연출은 이번 '산허구리'를 통해 원작 그대로를 오롯이 전달하는 사실주의 연극에 대학 졸업 이후 처음으로 도전했다. 그는 "사실주의 극이 TV 드라마와 구분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프로덕션의 지원이 있지 않는 한 영세한 극단에서 사실주의를 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어 "하나씩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다.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조개를 진짜로 준비하고, 배우들도 캐릭터의 비슷한 연배로 캐스팅해야 하기 때문에 엄두를 내기 어렵다"며 "이번에 국립극단과 작업을 하면서 '옛날 분들 정말 심란하게 살았네'라는 생각이 들어 많이 울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고 연출은 원작을 절대 고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마지막 장면을 추가했다. 그가 새롭게 만들어낸 장면은 거친 바다 한 가운데로 나가고 있는 종선의 뱃머리에 복조가 당당히 서있는 듯한 사실감을 선사하며 절로 감탄을 내뱉게 만든다.

    "중간에 바꾼 부분은 거의 없고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다. 원작에선 윤첨지가 '사람 삼키더니 물결이 얼음판 같어졌지. 자네 한 잔 쭉 들이키고 수염 닦는 듯이. 어서 초상 준비나 하게. 상엿집에 휑하니 다녀올 테니'라고 말하며 막을 내린다. 그렇게 끝나니까 정리가 안 되고 심난하더라. 복조라는 인물이 아무리 생각해도 실성한 어머니 눈에 보여야 할 것 같아서 무대에 등장시켰다."

    1930~40년대의 많은 작품들이 일제의 탄압정책으로 인해 당시의 가난을 보여주는데 그쳤지만 함세덕의 '산허구리'는 달랐다. 참담한 현실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 그 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이 비극을 이겨내고자 하는 굳센 마음을 강조한다.

    "왜 우리는 밤낮 울고 불고 살아야 한다든? (중략) 왜 그런지를 난 생각해볼 테야. 긴긴 밤 개에서 조개 잡으며, 긴긴 낮 신작로 오가는 길에 생각해볼 테야." 고선웅 연출이 '산허구리'를 연출하게 된 동기 중 하나는 극중 석이의 이 대사 때문이었다. 

    "석이가 그렇게 말한 것이 일제시대 궁핍한 삶을 살아야 하는 깨달음이라고 봤다.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지, 구체적인 행동이나 실천에 대한 언급은 없다. 생각을 한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관객들이 그런 점을 같이 고민하고 더 행복하고 좋은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

  • ▲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左)과 고선웅 연출(右)
    [사진=국립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