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세력 복귀 조짐에 潘 8·9 이후 반등, 孫도 유의미… 安의 반격은?
  • ▲ 지난달 18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엄수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식 모습.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호남이 낳은 위대한 정치 지도자였지만, 호남에서 90%대 몰표가 나오는 정치 문화를 조성해 이후 호남의 발전을 늦추고 본의 아니게 낙후를 유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지난달 18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엄수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식 모습.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호남이 낳은 위대한 정치 지도자였지만, 호남에서 90%대 몰표가 나오는 정치 문화를 조성해 이후 호남의 발전을 늦추고 본의 아니게 낙후를 유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호남의 선택이 대선을 앞두고 주목받고 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근 30년 만에 처음 나타나는 현상이다.

    호남은 그간 현 야권 정당과 야권 후보에게 총선과 대선을 가리지 않고 몰표를 던져왔다. 항상 90%대 몰표가 던져지는 바람에, 호남은 선거판에서 변수(變數) 아닌 상수(常數)에 불과했다. 호남의 선거인 수에 예상되는 투표율과 야권 후보의 90%대 득표를 가정한 수치를 곱한 수가 표차가 되는 것으로 가정하고 타 권역의 승부를 다투어왔던 것이다.

    이러다보니 선거 기간에도 호남에는 형식적인 유세만 오갈 뿐이었다. 지역 발전을 위한 진지한 고민 끝에 도출된 공약이나 청사진, 비전은 제시되지도 않았다.

    전라북도의 숙원 사업이라 불리는 새만금 사업은 1987년 대선에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공약으로 던졌는데, 30년째 추진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87년 대선에서야 16년 만에 대통령 선거가 재개된터라 호남을 위한 대형 공약이 던져졌었지만, 이후 오로지 특정 정당의 특정 후보만을 위한 90%대 몰표가 거듭되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는데, 누가 호남을 위해 머리를 짜내고 고심을 거듭하겠는가.

    이 때문에 호남은 낙후된 상태에 머무르게 됐다. 그나마 경기라도 호황이면 버티겠는데, 모든 권역이 다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상황은 호남에는 직격탄이 떨어진 셈이었다. 전남 목포를 지역구로 하는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러한 상황을 "부산·울산·거제·통영이 감기만 들어도 목포는 폐렴 3기에 들어서게 된다"고 표현했다.

    국민의당 천정배 전 대표가 "이제는 자구구국(自求求國)"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당연하다. 친노·친문패권주의자들의 허울좋은 말장난에 놀아나는 것은 뒷일이고, 일단은 호남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삶의 터전을 복원하는 자구가 우선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다행히도 친노친문패권주의자들의 사기와 기만에 당할대로 당해온 호남 유권자들이 4·13 총선을 계기로 깨어나면서, 호남에는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호남의 위대한 선택'이라 불리는 4·13 총선을 통해 호남에 뿌리깊게 기생하던 친노친문패권세력을 일소하는데 성공했다. 지역구 28석 중 국민의당이 23석을 가져갔지만 더민주가 3석, 새누리당에도 2석을 할애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30여 년 동안 (호남을) 독점해왔던 정당이 광주·전남에서는 새누리당과 똑같이 1석, 호남 전체로는 3석으로 새누리당이 2석"이라며 "(호남에서) 완전한 정치의 정립이 이뤄졌고 전국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정치의 평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높이 평가한 것이 무리가 아니다.

  • ▲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 중 호남권 응답자만 6월 이후로 나타낸 추세. 이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해 기타 그밖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래픽=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 중 호남권 응답자만 6월 이후로 나타낸 추세. 이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해 기타 그밖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래픽=뉴데일리 정도원 기자

    호남 유권자들이 변화를 일으키자, 정치인들의 호남에 대한 구애 경쟁이 뒤따른다. 잡월드가 전남 순천에 유치되고, 30년 가까이 지지부진했던 새만금 남북 간선 2축 도로의 예산이 확보됐다. 광주공항과 무등산 정상부 군기지의 이전 추진도 순조롭다.

    그저 친노·친문패권을 척결했을 뿐인데 숙원이었던 SOC 사업들이 막힌 곳이 뻥 뚫리듯 일거에 급물살을 타는 모습을 보면서 호남 유권자들이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정치적 독립'을 이루면서 마땅히 찾아야 할 몫을 찾게 됐을 뿐이다.

    일례로 새만금 남북 간선 2축 도로라는 것은 '30년 숙원'이라고 하니 무슨 리니어 초전도 고속철도라도 놓는 듯한 느낌이지만, 실상은 '그냥 도로'일 뿐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이었다면 벌써 관철이 됐을 일이다. 새만금에 간선 도로를 놓자고 안간힘을 쓰는 사이, 서울에서는 ㎞당 1300억 원에 달하는 지하철 공사가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호남의 발전을 가로막던 장애물 친노·친문패권을 치우고나니 이제 비로소 호남 정치가 객석에서 무대 위로 올라오는 느낌이다. 그러나 '호남 정치의 복원'이라 평가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이를 반증하듯 호남의 민심이 차기 대선에서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호남권의 설문 결과만 따로 떼어놓고 봐도, 타 권역보다 유독 '널뛰기'가 심하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지난 5월 제주에서 열린 관훈토론에서 차기 대권 도전을 시사한 뒤 다음달인 6월부터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 본격 포함됐다. 처음 포함된 6월 조사에서는 1위였다. 그 뒤를 호남의 맹주 정당이 된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바짝 쫓는 양상이었다.

    그런데 이후 반기문 총장을 여권 성향 후보로 분류하는 보도와 분석이 잇따르면서, 7월 조사에서 반기문 총장은 크게 주저앉으면서 3위로 처졌다. 이 때 반기문 총장은 9%의 지지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호남에서 반기문 총장의 '미니멈 지점'을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무렵 호남을 놓고 사투를 벌이던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의 희비가 엇갈렸다. 8월부터 문재인 전 대표는 줄곧 상승 곡선을 그렸다.

    반면 안철수 전 대표의 호남 지지율은 9월부터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는데, 타 권역에서는 안철수 전 대표의 지지율이 '박선숙~김수민 리베이트 의혹'이 터진 6월부터 꺾인 점을 감안하면 2개월을 더 버틴 것이다.

    친노친문패권에 대한 반감, 이른바 반문(反文) 정서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다. 고려나 조선시대도 아닌데 '리베이트 의혹'이 호남에만 2개월 늦게 퍼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 국민의당 박주선 국회부의장과 안철수·천정배 전 대표 등 지도부가 지난달 18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엄수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6주기 추도식에서 헌화 분향한 뒤 묵념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 박주선 국회부의장과 안철수·천정배 전 대표 등 지도부가 지난달 18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엄수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6주기 추도식에서 헌화 분향한 뒤 묵념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리베이트 의혹'은 접했지만 그렇다고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할 수 없고, 호남조차 안철수 전 대표를 버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호남 지지층이 2개월을 더 붙들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안철수 전 대표의 지지율이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등 중도 영역 선점과 외연 확대에 역행하는 국민의당의 행보에 수권 후보로서의 기대감을 접는 움직임이 9월부터 본격적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야권의 수권 후보로서의 면모를 가장 높이 평가하는 그룹, 이른바 '정권교체 열망' 그룹은 일부 문재인 전 대표에게로 흡수됐다. 나머지는 차마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기문 총장의 지지율이 8월 들어 반등한 것은 8·9 전당대회에서 호남 출신인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선출된 것에 일정 부분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로 보수 성향의 집권여당 대표가 호남에서 나오자 여권 성향 분류에도 불구하고 일부가 다시 반기문 총장에게로 움직인 것이다.

    이후 반기문 총장의 지지율은 10%대 중반에서 횡보하고 있다. 반기문 총장을 여권 성향의 대권 주자로 분류할 때,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공언한대로 20%대 지지율에 진입이 가능할지 여부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호남 출향민들의 여론이 '호남 민심'과 상호 작용을 하는 추석 연휴 이후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호남에서의 반문 정서가 여전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또다른 징표로는 손학규 전 대표의 지지율이 있다. 손학규 전 대표는 다른 권역과는 달리 호남에서 상당히 유의미한 지지율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확고한 수권 후보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비박~비문 후보를 찾는 호남의 표심은 여전히 손학규 전 대표를 의미 있는 대안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와 관련해 권역별 세부 내역 기타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호남 민심은 광주광역시에서 전남과 전북 순으로 번져나간 뒤, 수도권에는 마지막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대이동'이 벌어지는 추석 명절은 이러한 흐름에 가속 페달을 밟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추석 명절 연휴 이후 호남권 민심의 향배에 촉각이 쏠리는 까닭이지만, 역대 대선이 목전으로 다가올 때와는 달리 호남 민심은 안개 속에서 아리송한 형상을 띄는 모습을 상당 기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