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걸 명예회장은 지난 4월 사임…재단 이사들, 면면 살펴보니 ‘한숨’
  • ▲ 지난 8월 18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여시재 출범 기자간담회'에서 설명하는 이헌재 前경제부총리. ⓒYTN 관련보도 화면캡쳐
    ▲ 지난 8월 18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여시재 출범 기자간담회'에서 설명하는 이헌재 前경제부총리. ⓒYTN 관련보도 화면캡쳐


    지난 8월 18일 재단법인 ‘여시재(與時齋)’가 공식출범했다. ‘여시재(與時齋)’란 “시대와 함께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재단법인의 출범을 취재한 언론들은 ‘여시재(與時齋)’의 출범과 관련해 “이헌재 前경제 부총리, 김도연 포항공대(포스텍) 총장 등 각계 명사들이 참여하는 재단법인으로, 국가 차원의 미래 비전을 모색하는 연구단체”라는, 재단 출연자 측의 주장을 그대로 전했다.

    국내 언론들에 따르면 ‘여시재(與時齋)’는 서양의 물질문병과 동양의 정신문명을 융합한 ‘신문명’을 목표로 내걸었다.

    또 여시재는 “신문명 사회를 달성해야 시민이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철학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구,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미래 문명을 추구하면서, 동북아와 새로운 세계 질서, 통일한국, 도시 시대 등 3가지 분야에서 정책 솔루션 개발, 인재 양성, 지식 플랫폼 운영 등의 사업을 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 재단의 목표가 동북아와 통일한국, 그리고 세계의 미래 질서를 고민할 싱크탱크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은 주로 범야권, 특히 ‘친노’ 인사들이다.

    ‘여시재’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은 지난 4월 21일 재단법인 이사에서 사임했고 이헌재 前경제부총리가 독점적인 지위의 이사장이 됐다.

    이사로 이름을 올린 사람은 정창영 前연세대 총장, 홍석현 중앙일보 미디어그룹 회장, 김도연 포스텍 총장, 안대희 前대법관, 김현종 前유엔 대사, 박병엽 前팬택 부회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다.

    언론을 통해 ‘여시재’의 감사를 맡은 것으로 돼 있는 이재술 딜로이트 안진 회계법인 회장은 등기부 등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등기부 등본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 가운데 ‘상근 부원장’을 맡기로 한 사람도 있다.

    강원도 지사로 재직 중 ‘박연차 게이트’ 문제로 기소돼 대법원의 판결 후 자리를 잃은 이광재 前지사다. 故노무현 前대통령이 국회에 입문할 때부터 보좌관을 지내다 집권 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까지 지낸 盧대통령의 오른 팔이다. 

  • ▲ 재단법인 여시재의 상근 부원장을 맡게 된 이광재 前강원지사(왼쪽)가 이헌재 前경제부총리의 설명을 들으며 웃고 있다. ⓒYTN 관련보도 화면캡쳐
    ▲ 재단법인 여시재의 상근 부원장을 맡게 된 이광재 前강원지사(왼쪽)가 이헌재 前경제부총리의 설명을 들으며 웃고 있다. ⓒYTN 관련보도 화면캡쳐


    재단 이사장인 이헌재 前경제부총리는 1997년 11월 외환위기 이후 DJ정권이 들어선 뒤 ‘금융개혁위원회’ 위원을 맡았고, 1998년 ‘금융감독원’ 창설을 주도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금감원을 비롯해 국내 금융계 고위직 인사를 쥐락펴락해왔다고 비판을 받는 ‘이헌재 사단’의 장본인이다.

    지난 4월 20대 총선에서 ‘마포 터줏대감’인 강승규 前의원을 밀어내고 출마해 결국 낙선한 안대희 前대법관은 여당 소속이지만 문제가 있는 야당 인사들 못지않게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오른 인물이다. 특히 동서 관계인 이영수 KMDC 회장 탓에 여러 차례 곤욕을 치렀다.

    이영수 회장의 기업 KMDC는 해외자원개발 특혜 논란뿐만 아니라 2013년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가 낙마할 때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기업이다. 안대희 前대법관은 이영수 회장 관련 논란과 전관예우 특혜 등의 이유로 인해 2014년 5월 28일 총리 인선 엿새 만에 자진해서 물러났다. 

    김현종 前유엔 대사는 盧정권 시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한미FTA를 주도했다. 故노무현 前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당시 46살에 장관급에 발탁됐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공직을 떠났다가 2012년 3월 문재인 당시 노무현 재단 이사장의 ‘대선 캠프’에 합류했다. 김현종 前대사는 이광재 前지사와 함께 여시재의 실무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병엽 前팬택 부회장은 자수성가 기업인으로도 유명하지만, 親盧인사들과의 인맥이 두터운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2011년 12월 31일자 ‘조선비즈’에 실린 박병엽 前팬택 부회장의 인터뷰 가운데 일부다.

    “노무현 정권 당시 측근들이랑 친했다 하던데?

    - (인상을 찡그리며)아, 그게 참…. 사실은 15,6년 전부터 만났어요. 안 某, 이 某 이런 분들을 개인적으로 알게 돼서 가끔 소주 한 잔에 삼겹살 이런 식으로 만났죠.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들어섰는데 보니 이 분들이 권력 중심이 됐더라구요. 내가 호남 출신인데다 정권 요직에 앉은 분들과 친분이 있다 해서 확대해석 된 거에요. ‘야인’ 시절에 서로 만나 친분 쌓은 게 전부입니다. 덕을 봤다면 워크아웃에 안 갔겠지.”


    ‘여시재’의 또 다른 등기 이사인 홍석현 중앙일보 미디어 그룹 회장은 노무현 정부 때 주미대사를 역임했다.

    2004년 12월 17일 盧정권은 美정부의 ‘아그레망’도 없이, 갑자기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주미대사로 내정했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외교가에서는 아연실색했다고 한다. 상대국 정부의 동의도 없는, 일방적인 대사 내정 및 발표라는 것은 외교적 결례 수준이 아니라 ‘비문명국’ 수준이었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미디어오늘’은 당시 ‘중앙일보’가 자사 회장의 ‘주미대사 내정’을 정부 발표보다 일찍 지면에 보도한 것은 물론 정부 관계자를 인용 “홍석현 회장의 유엔 (사무총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라며 ‘홍석현 회장 유엔 사무총장 도전’을 보도한 점도 비판했다.

    ‘미디어오늘’은 홍석현 회장과 중앙일보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홍석현, 울면서 청와대를 떠나다”라는 특집 기사로 그의 ‘권력지향적인 모습’을 비판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홍석현 회장은 1983년 3월 ‘세계은행’에서 이코노미스트로 3년 동안 근무를 마치고 귀국, 강경식 당시 재무부장관의 비서관이 됐다.

    이때는 전두환 정권이었다. 강경식 당시 재무부 장관은 1983년 10월 청와대 비서실장이 됐다. 그의 비서관이었던 홍석현 회장 또한 청와대로 들어가게 됐다. 강경식 비서실장은 홍석현을 ‘청와대 비서실장 특별보좌관’이라는 자리에 앉혔다고 한다.

    강경식 비서실장을 따라 청와대에 들어간 홍석현 당시 보좌관은 유례가 없는 특별대우를 정부에 요구했다고 한다. 행정고시를 통과한 자기 고교·대학 동기들보다 한두 등급 높은 자리를 요구한 것이다. 홍석현 특별보좌관의 ‘특별승급’은 당시 공무원들의 진급 및 인사를 관리하던 총무처에서도 논란이 됐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의 ‘특별승급’ 관련 결재서류가 대통령의 책상 위에 올라갔을 때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때 전두환 前대통령은 “재벌 X들은 왜 다들 이 모양이냐”는 호통과 함께 홍석현 보좌관과 그를 천거한 강경식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해임했다고 한다.

    홍석현 회장은 盧정권이 끝난 뒤에도 문재인 의원 등 친노 인사들과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신문의 대명사 불리던 ‘조중동’ 중에서 중앙일보가 수년전부터 이탈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홍석현 회장의 인맥과도 관련 있다는 분석도 있다.

    중앙일보사의 자회사인 종편채널 'jTBC'는 손석희 사장이나 김제동씨 같은 야권 인맥들을 중용하고 있다.

  • ▲ 2013년 10월 30일 '미디어오늘'의 특별취재 기사. 홍석현 중앙일보 미디어그룹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미디어오늘 관련보도 화면캡쳐
    ▲ 2013년 10월 30일 '미디어오늘'의 특별취재 기사. 홍석현 중앙일보 미디어그룹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미디어오늘 관련보도 화면캡쳐

    2015년 6월 3일자 ‘미디어오늘’에는 “홍석현의 야망, ‘제3의 개국’ 외친 배경은”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같은 해 5월 28일 경희대 특별 강연회에서 홍석현 회장이 한 말 가운데 ‘정치적 야심’을 분석한 기사였다.

    당시 강연 제목은 ‘새로운 한중일 시대와 대한민국의 꿈’. 한국 정치권의 후진성에 대해 비판하고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홍석현 회장의 강연 내용을 전한 ‘미디어오늘’은 이렇게 평가했다.

    “…이 정도 깊이의 발언이면 단순한 신문사 사주의 발언으로 보긴 어렵다. 그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올해는 중앙일보 창간 50주년이다. 홍정도 중앙일보 공동 대표이사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도 순조롭게 이뤄졌다. 더 이상 홍 회장이 중앙일보에 남아 있을 이유도 없다.

    이 맥락에서 보면 지난 경희대 강연은 상징적이다. 홍 회장이 다시 정치적인 역할을 찾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2014년 공안기관과 사법당국의 ‘카카오톡’ 감청협조를 거절하면서 국민들의 주목을 받았다. 김범수 의장은 삼성맨이자 네이버 출신이다.

    김범수 의장은 2000년 삼성SDS 동기인 이해진 씨의 NHN과 ‘한게임’을 합병시킨 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네이버의 모회사 ‘NHN’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007년 8월 네이버를 떠난 김범수 의장은 3년 동안의 휴식 끝에 ‘카카오’을 만들어 다시 복귀했다. 2014년에는 포털 사이트 ‘다음’을 인수, 우회상장에 성공했다.

    김범수 의장이 NHN 대표이사를 맡았던 시절, 포털 ‘네이버’는 뉴스 서비스의 공정성과 형평성 논란으로 언론 전반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아고라’로 대표되는 다음의 편향성까지 편입시킨 ‘다음카카오’ 또한 뉴스 서비스의 정치적 편향성 의혹을 사고 있다.


  • ▲ 재단법인 '여시재'의 등기부 등본. 재단법인은 공익법인이므로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누구나 등기부를 열람할 수 있다. ⓒ대법원 인터넷 등기소 열람화면 캡쳐
    ▲ 재단법인 '여시재'의 등기부 등본. 재단법인은 공익법인이므로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누구나 등기부를 열람할 수 있다. ⓒ대법원 인터넷 등기소 열람화면 캡쳐


    지난 2월 ‘여시재’에 이런 인물들이 이사로 등재돼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뒤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은 이사직을 사임했다. 당시 한샘 그룹과 한샘 드뷰 재단은 “우리와 직접 관련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여시재’는 오는 9월부터 국내 주요 씽크탱크와 함께 협력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10월에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전문가 또는 연구기관을 초청해 ‘동북아 국제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한국형 브루킹스를 만들고 싶다”며 50억 원을 들여 만든 재단법인 ‘여시재’가 한국의 미래생존전략을 만들어 낼지, 아니면 한국형 ‘패션좌파’ 양성소가 될지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