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원 ⓒ뉴데일리 정재훈 사진기자
    ▲ 주원 ⓒ뉴데일리 정재훈 사진기자

     

    “나에게서 이런 모습이 나오는구나! 싶었죠.”


    20대의 끝자락, 주원은 자신도 몰랐던 모습에 눈을 떴다. 28일 개봉한 영화 ‘그놈이다’에서 여동생 은지(류혜영)를 죽어서까지 지키는 듬직한 오빠 ‘장우’를 연기하면서 주원은 새삼 그 큰 골든리트리버 같은 기럭지를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윤준형 감독에게 먼저 제안하며 장우 캐릭터를 위해 일부러 8kg이나 증량했단다. 그런 장우는 얼음 공장, 세탁일 등의 막일을 하며 유일한 가족이자 단 하나뿐인 여동생을 지켜줘야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여동생이 비참하게 살해되면서 장우는 처절하고도 외로운 사투를 벌인다. 힘겨웠던 매 순간의 덕택일까. 주원은 최근 본지와의 만남에서 어느덧 완숙미가 느껴지는 눈빛을 띠고 있었다.


    “이정도로 공포스러운 느낌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시사회 이후 많은 분들이 무섭다는 반응을 보이시더라고요, 귀신이 등장해서 그런 것 같은데 저는 오히려 그 느낌이 좋았어요. 시은(이유영)이가 빙의를 한다거나 귀신을 본다거나 무당이 굿을 하는 것들이 외화에서는 다루지 못할 우리 고유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장치 같았거든요. 감독님께서 원하던 토속적인 느낌으로 잘 표현이 된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일부러 얼굴이 익숙치 않은 조연 배우들을 캐스팅했고, 그런 데서 다큐적인 느낌도 잘 나타났던 것 같아요.”


    사실 ‘그놈이다’에서 대중들 눈에 익은 배우는 주원과 유해진 단 둘 뿐이다. 포스터에도 두 사람을 전면으로 내세웠지만 사실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 모두가 고루 역할을 해낸다. 부둣가 마을 주민들이 저마다의 미스터리한 사연과 함께 장우 여동생의 살해 사건과 연관된 인물로 그려지면서 관객들에게는 그들 모두가 용의자로 여겨진다. 하지만 장우는 단 한 명을 표적으로 삼는다.

     

  • ▲ 주원 ⓒ뉴데일리 정재훈 사진기자
    ▲ 주원 ⓒ뉴데일리 정재훈 사진기자


    “초반부터 동생이 죽으니까 영화 내내 감정이 벅찼어요. 이미 힘들겠다 예상하고 촬영을 하긴 했지만 연인도 아닌 가족인 동생이 살해를 당하니까 그 감정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벅차더라고요. 그래도 촬영장 분위기가 의외로 차분하면서도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어느 정도 편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세트 촬영은 단 3일밖에 없었고 그 외에는 모두 로케이션 촬영이었는데 분위기가 음습했죠. 하지만 감정 몰입하는 데에는 훨씬 도움이 되더라고요.”


    “유치장에서 민약국(유해진)을 만나기 전까진 장우가 동생의 죽음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유치장에서 범인과 직접적으로 만나면서 감정이 폭발한 거죠. 이 신이 찍을 때 가장 힘들었어요. 상상이 잘 안돼서. 일단은 고삐를 풀자는 마음으로 촬영했어요. 당장 죽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기했고, 나중에 보니 내가 처음 보는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평생 그렇게 울어본 적도 없고 진짜 수갑이 풀릴 정도로, 철창이 부서질 정도로 격하게 촬영했어요. 괴롭기도 했지만 ‘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구나’를 느꼈던 장면이었죠. 끝나고 스태프 분들이 박수를 쳐줬는데 감정이 주체가 안돼서 계속 울었어요.”


    ‘나에게서 이런 모습이 나오는구나! 내가 더 할 수 있겠구나’를 알게 됐다는 주원. ‘그놈이다’에서의 연기를 통해 막힌 무언가가 뻥 뚫린 느낌이었다고. ‘제빵왕 김탁구’의 제빵사, ‘오작교 형제들’에서 형사, ‘굿 닥터’ ‘용팔이’를 통한 두 번의 의사, ‘내일도 칸타빌레’에서는 지휘자 등 대체로 안정적인 환경에 있는 캐릭터를 연기해온 주원은 ‘그놈이다’ 장우를 거치며 거칠고 위태로운 인물을 시도하고 있다. 어쩌면 힘들고 혼란스럽고 두려울 수 있는 연기 변신이지만 그는 변화를 추구하며 앞으로 그려질 자신도 모르는 모습에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배우가 새로운 캐릭터를 추구하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사도’에서 송강호 선배님을 봐도 걸음걸이나 목소리 등 많은 변화를 선보이시고,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이 ‘아메리칸 싸이코’에서 싸이코 짓을 하는데 ‘나의 배트맨이 저렇게 변했구나’라며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죠.(웃음) ‘인터스텔라’ 쿠퍼(매튜 맥커너히)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마약을 하는 것도 놀랐어요. 그걸 보며 ‘저게 배우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죠. 예고 다닐 때부터 뮤지컬 할 때까지 다양한 배역을 맡았지만, 막상 드라마와 영화를 하다 보니 정해지는 이미지에 대한 나름의 불만 같은 게 있었나 봐요. 20대 때는 주로 멜로를 많이 그렸다면 30대 때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그 과정에서 ‘그놈이다’와 ‘용팔이’를 하게 됐고요. 변화를 줌으로써 관객들도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서른까지 단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주원은 이 때 까지 청년의 풋풋함에서 벗어나 거칠고 남성적이며 섹시하고 여유 있는 역할에 욕심을 품고 있었다. ‘남자는 30살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냐며 30대의 야망을 표현하고 싶다는 그는 나이 대에 어울리는 걸 착실히 해 나아가려 한다. 40대, 50대가 되면 중년만이 가질 법한 섹시함, 따뜻함이 있는 배우가 되길 원했다. 나이에 맞게 변화를 추구하며 먼 훗날엔 보기만 해도 좋고, 믿음이 가고, 행복함이 느껴지는 배우가 되리라 희망한다.

     

  • ▲ 주원 ⓒ뉴데일리 정재훈 사진기자
    ▲ 주원 ⓒ뉴데일리 정재훈 사진기자


    “요즘도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변하지 말아야지’ 하는 건, 일상생활 속에서 순수한 제 모습이에요. 나름 스트레스 안 받고 이 일을 즐기면서 하는 건 제가 아이 같은 면이 많아서예요. 원래는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은 성격인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에서 평소에 아이 같은 마인드가 없으면 멘탈이 무너질 것 같더라고요. 그런 걸 잃지 않으려 해요. 사실 알고 보면 아이들이 제일 용감한 것 같지 않나요?(웃음)”


    키 185cm에 29세인 남자에게서 귀여움을 느끼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런데 주원은 그만의 순수함과 애교 섞인 몸짓으로 유진, 최강희, 문채원, 김태희에게 여느 청년들과는 좀 다른 측면의 반전 연하남의 매력을 어필해왔다. ‘오빠’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이 의외로 ‘나답게’ 나왔다는 그의 말에 ‘그놈이다’를 회상한 취재기자는 주원의 거칠고 섹시한 30대가 꽤나 쉽게 그려졌다. 어쩌면 대한민국 수많은 누나들이 주원의 귀여운 이면에서 야성적인 잠재력이 깨어나는 순간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드라마에 비해 영화 쪽에서 만족할 만한 흥행을 거둔 적이 없어서 ‘그놈이다’의 평가나 흥행 면으로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이 잘 받아줄까?’라는 생각으로 언론시사회 때는 유난히 떨기도 했고, 제 연기를 보느라 남들 놀랄 때 전혀 놀라지도 않았어요.(웃음) 이젠 즐겨야죠.”

  • ▲ 주원 ⓒ뉴데일리 정재훈 사진기자
    ▲ 주원 ⓒ뉴데일리 정재훈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