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정수 논란… 올바른 정치 혁신의 방향은 ③]

비례대표에 고사 위기 처한 농어촌 지역대표성

"비례 줄이고 지역구 늘려야… 자치구·시·군 경계 예외 인정도 필요""농촌 지역대표성 사라지면 법치국가 근간인 준법의식 흔들린다"

정도원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5.09.05 14:45:24

8월 31일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의 활동 시한이 만료된 데 이어, 9월 2~3일에는 정개특위의 여야 양당 간사가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의결 데드라인으로 설정한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진행된다. 대외적으로는 남북 문제와 주변 4강 관계가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방중을 계기로 긴박한 흐름을 탄 가운데, 국회에서는 내년 4월 13일에 치러질 총선 룰 관련 논의로 막판 진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은 8월 28일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정개특위 여당 간사인 정문헌 의원에게 "지역구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이는 방향으로 협상에 임하라"며 이례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내렸다. 반면 문재인 대표는 "국민의 뜻은 비례대표를 줄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비례대표 의원 수의 축소 여부를 놓고 여야 양당의 대표가 직접적으로 칼날을 맞댄 것이다.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비례대표 의원 정수 문제의 올바른 해결 방안은 무엇이며, 진정한 정치 혁신의 길은 어떠한 방향일까. 〈뉴데일리〉는 5회 연속 기획 연재를 통해 국내외 비례대표제의 운용 현황을 살펴보고, 올바른 정치 개혁과 혁신의 방향을 모색해 본다.

[비례대표 정수 논란… 올바른 정치 혁신의 방향은]

① 문재인의 '국민'은 누구?… 여론은 "비례대표 줄여라"
② 문재인·안철수의 정치혁신론은 '오발탄'
③ 비례대표에 고사 위기 처한 농어촌 지역대표성
④ 해외 사례는… "선진 민주국가는 비례대표 없어"
⑤ 올바른 정치 혁신의 방향은 비례대표 축소


▲ 새정치민주연합 전북도당위원장으로서 비례대표를 줄여 지역구 의석 수를 늘리자는 발표문을 낸 유성엽 의원.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지난달 28일 새정치민주연합 강창일 제주도당위원장·유성엽 전북도당위원장·황주홍 전남도당위원장은 3개 도당위원장의 공동 명의로 '비례대표를 줄여 지역구를 늘려야 한다'고 발표했다.

비례대표를 줄이자는 것은 당권을 장악한 문재인 대표의 지론에 배치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같은 발표문을 내게 된 것은, 더 이상 대의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대표 개인의 지론이 마치 당론처럼 굳어지는 것을 두고볼 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발표문에서 "지역구를 줄여서라도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오해"라며 "충분한 당내 의견 수렴 과정도 없이 우리 당이 그 같은 주장을 내놓고 있는 것에 우려를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은 1일 국토위 소회의실에서 20여 명의 의원들과 만남을 가진 직후 "새누리당도 강원도당·충남도당·충북도당·경남도당·경북도당 등 5개 도당위원장의 공동 명의로 성명을 낼 것"이라며, 여야를 넘어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엇이 의원들로 하여금 여야 간의 장벽마저 허물게 했을까. 그 배경에는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대의대표의 지역대표성이 심대히 위협받고 있음에도, 요지부동으로 국회 한켠을 차지한 채 버티고 있는 비례대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이윤석 의원은 1일 농어촌 지방주권지키기 의원 모임에 참석해 국회의원 선거구 인구 상하한 편차를 2대1 이내로 하도록 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탁상 판결의 전형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헌재도 당초 "선거구 획정에 인구만 고려해서는 안 돼"

우리나라 국회는 단원제(單院制)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은 인구대표성과 지역대표성을 동시에 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1995년 국회의원 선거구 간의 인구 상하한 편차가 4대1을 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당시의 결정에는 일응 타당한 지점이 있었다. 전남 장흥에 비해 부산 해운대·기장의 인구가 6.05배에 이르러 장흥군민과 해운대구민 사이의 1표의 가치가 심각하게 차이 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인구 상하한 편차에 대한 어떠한 기준조차 없었기 때문에 일종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기도 했다.

1995년 12월 27일 결정 당시 헌법재판관들도 조심스런 태도를 취했다. 당시 다수 의견은 "양원제(兩院制)를 채택해 어느 하나를 지역대표성을 가진 의원으로 구성한 나라들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국회의원이 현실적으로 지역대표성도 겸하고 있다"며 "단순히 인구비례만 고려하여 선거구를 획정하는 경우에는 도·농간의 격차가 더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재화·조승형·정경식·고중석 헌법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국회의원 선거구는) 투표가치의 평등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인 단원제 채택으로 인한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 및 인구의 도시집중으로 인한 도시와 농어촌간의 극심한 인구편차 등 3개의 요소를 합리적으로 참작해야 한다"고 했으며, 김진우 헌법재판관은 "(우리 국회가)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고, 도농 사이에는 인구밀도와 개발의 차이, 각 지역이 국가에 원하는 시책에 현저한 차이가 있는 점 등을 선거구 획정에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신중한 태도는 2001년 결정에서 인구 상하한 편차를 3대1로 줄일 때, 그리고 지난해 7월 30일 다시 이를 2대1로 낮출 때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새정치연합 이윤석 의원이 1일 농어촌 지방주권지키기 의원 모임에서 "헌재 판결은 탁상 판결의 전형"이라며 "인구 편차도 줄여야 하지만 지역대표성을 고려했어야 했다"고 비판한 것도 수긍할 만한 지점이 있다.

이윤석 의원이 이날 모임에서 예시로 든 것과 같이 전라남도 신안군의 면적은 서울특별시 전체보다 넓은데도, 서울에 국회의원 48명이 활동하는 것과는 달리 신안군에 배정된 의석은 0.5석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서울특별시 전체보다 면적이 넓은 농어촌·지방 선거구가 44개 선거구에 이르고, 그 중 강원도 태백·영월·평창·정선과 철원·화천·양구·인제는 서울시 면적의 약 7배, 경상북도 영양·영덕·봉화·울진은 6배에 달하는 형편이다.


▲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1일 농어촌 지방주권지키기 의원 모임에 참석한 자리에서 광역시는 인구 상한 28만에 가깝게, 도는 인구 하한 14만에 가깝게 선거구를 획정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자면 자치구·시·군의 경계를 허물 수 없다는 공직선거법 조항의 예외 적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한국판 게리맨더링… 농촌 지역구들이 전부 도너츠 모양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지역대표성이 신음하고 있는 동안, 우리나라 지방 선거구의 모습은 기형적인 형태로 탈바꿈하고 있다.

본래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라는 용어는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 엘브리지 게리(Elbridge Gerry)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만들다보니, 흡사 선거구의 모습이 불의 정령 샐러맨더(Salamander)처럼 돼버렸다는 데서 유래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지방 선거구의 모습은 샐러맨더가 아니라 하나같이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도너츠와 같은 형태다. 농어촌은 불가피하게 인접 대도시와 생활권을 공유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공직선거법이 자치구·시·군을 분할해 선거구를 만드는 것을 금지하다보니 중앙에 위치한 대도시만 남겨놓고 정작 그 대도시를 둘러싼 채 서로 간에는 전혀 생활·문화적 공유가 없는 군(郡)들끼리 묶이는 해괴한 형태로 수렴하고 있는 것이다.

전북 김제·완주 선거구는 김제시와 완주군이 묶인 선거구인데, 정작 김제시와 완주군은 두 곳 다 인접한 전주와 생활권을 공유하고 있다. 두 도시 모두 전주로 나가는 버스 노선은 많은데, 정작 김제와 완주를 잇는 버스 노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제와 완주 사이를 이동하려면 반드시 전주시내로 들어가 전주대경륜장 앞에서 환승해야 할 정도다.

완주군에서 사는 정모 씨는 "매일 출퇴근을 전주로 한다"며 "김제는 지나다녀본 적만 있지, 한 번 찾아가 본 적도 없다"고 밝혔다.

경북 문경·예천 선거구도 같은 케이스다. 예천군은 안동 내지 영주와 생활권을 공유하고 있지만, 안동과 영주가 각각 독립선거구이다보니 엉뚱하게 문경과 묶이게 됐다. 예천군 감천면에 거주하고 있는 정모 씨도 "서울 갔다 내려올 때 기차역도 (영주시) 풍기역이 가깝고 안동에도 자주 가지만, 문경에는 가볼 일이 없고 아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인구 변천에 따라 매 4년마다 재획정되다시피 하고 있지만, 자치구·시·군의 경계는 1995년 지방자치제의 전면 실시 이후로 손댈 수 없게 됐다. 이제는 자치구·시·군의 경계를 허물 수 없다는 공직선거법의 조항이 오히려 변화된 생활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족쇄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이윤석 의원은 1일 모임에서 "자의적인 널뛰기는 안 되지만 농촌 지역구를 살리기 위해 예외적으로는 자치구·시·군의 분할이 필요하다"고 했고,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도 "인구 편차가 하한 14만~상한 28만 명이라고 하면, 특별시·광역시는 28만으로 하고 도(道) 지역은 14만으로 해서, 경북의 경우 인구 270만 명이기 때문에 14만 명으로 나눠서 몇 개 지역구가 나올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자치구·시·군의 경계를 허물지 않고서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 농어촌 지방 지역구 의원들이 1일 정기국회 개원식이 끝난 직후 국회본청 5층 국토위 소회의실에 모여 의견을 나누고 있다.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은 회의가 끝난 뒤 비례대표 의석 수를 줄여 지역구 의석 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사진DB

◆비례대표 줄이지 않고서는 농촌 지역대표성 살릴 묘책 없다

문제는 지역대표성을 살리기 위한 궁여지책과 해법을 총동원해봐도 비례대표 의석이 요지부동인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농어촌 지역구 의원은 "내 지역구 하나 살리자는 생각들로 모였으면, 의원 정수를 늘리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오히려 간단한 상황"이라며 "국익 차원에서 주장하는 것이고, 의원 정수는 늘려서는 안 된다는 국민 여론에 따르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보니 (해법 마련이) 어렵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1일 농어촌 지방주권지키기 의원 모임에서도 의원들은 절대 다수가 의원 정수 유지에 무게를 실었다.

새누리당 박덕흠 의원은 "지금 수도권이나 다른 지역의 국민들도 (우리의 주장에) 공감해가고 있는데, 300석보다 의원을 더 늘린다고 하면 그러한 공감마저 없어져버릴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으며, 새정치연합 유성엽 의원도 "제도나 기준을 바꿔서 (농어촌의 지역대표성을) 방어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지, 의석 수를 늘리겠다고 하고 기준을 그대로 두면 도시는 (의석 수가) 더 늘어나고 농촌은 유지하는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본질적인 해법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농어촌 지역은 서울시 전체의 몇 배가 되는 면적이 하나의 선거구로 묶이고도 또 통폐합 대상에 오르는 등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비례대표를 줄여야 한다는 것은 농어촌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터져나온 요구로 봐야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역구를 당장 270석으로 늘려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을 9대1로만 조정해도 인구 상하한이 12만~24만 명이 돼서 많은 농어촌 지역구를 살릴 수 있다"며 "만약 국회의원 300석 전체를 지역구로 한다면, 이른바 십만선량(十萬選良)도 가능하다"고 추산했다.


▲ 김종철 법무법인 새서울 대표변호사는 지난달 11일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주최한 공청회에 출석해, 농촌 지역대표성을 살리지 않으면 법치국가의 근간인 국민들의 준법의식이 흔들릴 수 있다며, 지역구 의석 수를 270석으로 늘려 인구 하한 12만~상한 24만 명으로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지역대표성 살리지 않으면 법치국가 근간인 준법의식 흔들릴 수도"

제헌국회 때는 본래 비례대표라는 제도가 없었으며, 북한 지역 수복 후 총선 실시를 위해 유보해 둔 100석을 제외한 200석 전체를 대한민국 전역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선출했다. 이후 의원내각제와 양원제(참의원~민의원)로 운영된 제2공화국 하에서도 비례대표라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국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뽑은 대의대표가 아니다보니, 해방 직후 민주주의가 실시되는 상황에서 직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었던 셈이다.

제3공화국에 들어서 비례대표라는 것이 '전국구'라는 명칭 하에 처음 생겼으나, 그 실태는 공천헌금과 밀실공천 등으로 얼룩졌다. 국민들은 단 한 순간도 비례대표 의원들을 자신의 대의대표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제4공화국에 접어들면서 전국구 의원이 '유신정우회'라는 명칭 하에 대통령이 전부 임명하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민심의 동요가 없었던 점에서 반증된다. 국민들은 '당 지도부가 밀실에서 공천해서 배지를 달거나 대통령이 임명을 하거나, 우리가 뽑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대신 국민들은 지역구 의원을 올바르게 선출하는 데 집중해 왔다. 지역구 의원이야말로 나의 대의대표이고, 내가 뽑은 지역구 의원이 국회에 입성해 나와 우리 지역을 대표한다고 생각한 게 우리나라 국민들의 헌정 의식이고, 제헌국회 이래로 내려오는 불문화된 관습헌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비례대표 의석 수의 온존에 연연한 나머지 농어촌 지역구의 급격한 통폐합과 붕괴, 이에 따른 지역대표성의 상실을 방치하다보면, 법치국가의 근간인 국민들의 준법 의식의 근거조차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종철 법무법인 새서울 대표변호사는 지난달 11일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주최한 공청회에서 참석한 자리에서 "(지역대표성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고) 사표를 없애는 문제나 표의 등가성 원칙만을 고려하자면 대한민국 전체를 하나의 선거구로 만들어서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나누면 사표는 없어지겠지만, 그렇게 구성된 국회를 국민들이 자신들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이라고 생각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국민들이 준법 의식을 갖는 것은 정당하게 구성된 국회에서 만들어진 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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