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유아인·이준익, 세 남자가 만나게 된 속사정?"시나리오를 택하는 건 배우들의 몫..이 영화는 송강호-유아인의 영화"
  • 솔직히 유아인을 아들로 썼다면, 부자지간 외모가 좀 닮은 구석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역시 박경림이었다. 평소 입담에선 결코 뒤지지 않는 세 남자를 앉은 자리에서 한 방에 무너뜨렸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CGV압구정에서 열린 영화 '사도(思悼)' 제작보고회의 사회를 맡은 박경림은 다소 무거운 주제를 안고 출발한 이 영화를 특유의 발랄한 어법으로 풀어헤치며 관객과 취재진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했다.

    심각한 주제의식을 던지기로 유명한 이준익 감독과 배우 유아인이 이날 제작보고회의 주인공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칫 '학술 토론장'이 될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박경림은 절묘한 타이밍에 웃음을 자아내는 입담으로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이끄는 신기(神技)를 선보였다.

    어느새 박경림의 화법에 중독된 관객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해도 피식 웃음을 터뜨릴 정도였다.

    영화의 특성을 살려 좌석을 '용상(龍床)'으로 꾸민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송강호에게 "만족하십니까?"라는 질문을 건네는가하면, "송강호씨는 상대 배우가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공기를 불어 넣어주는 것 같다"는 이준익 감독의 칭찬에 "박진영씨가 되게 좋아하겠다"는 재치있는 말로 응수,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행사 초반 살짝 긴장한 모습을 비쳤던 유아인도 안방마님의 푸근한 넉살에 선배들과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로 여유를 되찾았다. 현재 절찬리 상영 중인 영화 '베테랑'을 이준익 감독이 언급하자 "여기에서 타 영화 발언은 삼가해달라"고 받아친 말은 두고두고 회자가 될 정도.



  • 이날 이준익 감독은 "유아인이 '베테랑' 제작발표회 때에도 송강호에게 했던 말과 비슷한 칭찬을 선배 배우에게 건넸었다"는 디스를 날리며 만만치 않은 입담을 과시했다.

    유아인이 출연한 영화 '베테랑'은 행사 말미에 또 한 번 등장해 웃음을 유발했다.

    유아인이 "뒤주에 갇히는 연기가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히자, 박경림이 "유아인씨는 한 영화(사도)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다른 영화(베테랑)에서 스트레스를 푼 것 같다"고 화답해 배우들을 포복절도케 한 것.

    최근 각종 영화 제작발표회의 '단골 사회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박경림은 자신이 왜 '최고 MC'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했다.

    유머러스한 화술로 행사 분위기를 띄우는 것은 물론, 철저한 사전 조사로 작품의 '키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어내 취해진의 이해를 돕는 가이드의 역할까지 톡톡히 해냈다.

    "한 집에서 살지만 죽는 날까지 이해할 수 없는 부자지간의 특성을 영조와 사도가 잘 표현해 낸 것 같다"는 유아인의 말에 "영조는 사도가 왕이 돼 주길 바랐고, 사도는 영조가 자신의 아버지가 되어 주길 바랐던 것은 아닌가 싶다"고 화답한 박경림의 해석은 이날 제작보고회의 백미였다.



  • 2년 만에 관객과 마주한 송강호와 '대세' 유아인이 한 영화에 출연했다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사도세자라는 식상한(?) 주제를 사극의 대가 이준익 감독이 다뤘다는 점도 영화팬들의 이목을 끌기엔 충분한 요소였다.

    이준익 감독은 "가장 비극적인 역사 속 이야기를 아름답게 표현해내고 싶었다"며 "'이 사건이 언제나 비극으로 남아 있는 게 과연 올바른 것인가'하는 의문에서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비극에 도달하는 것은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이어야합니다.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아들을 죽음으로 이끈 아버지의 마음, 심리 감정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랑하지만 실망도 하고 그런 실망이 미움이나 증오로 자라나기도 하죠. 애정이 넘칠 때 사단이 나는 겁니다.


    이 감독은 "한없이 대립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상처와 고통이 누군가에겐 큰 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다"며 비극적인 사도세자의 죽음에서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에 주안점을 뒀음을 밝혔다.

    다음은 박경림과 '사도'의 두 주인공, 그리고 연출자인 이준익 감독이 나눈 일문일답 전문.

  • ▲이준익 = 이렇게 많이들 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주변에서 (저희 영화에 대해)기대가 많다고 해서, 오늘 기대를 좀 줄여 보려고 합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송강호 = 송강호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유아인 = 영화 '사도'에서 사도세자를 연기한 유아인입니다.

    △박경림 = 놀라운 건 이 세 분이 '사도'를 통해서 첫 호흡을 맞추셨다는 점인데요. (그 순간 앉은 자리를 두리번 거리며 살펴보는 송강호를 주목) 만족하십니까? 저희가 (영화 컨셉트에 맞게) 왕의 의자를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참 잘 어울리네요.

    먼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준익 감독님께서 이 분들을 어떻게 캐스팅 하게 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준익 = 송강호라는 배우를 캐스팅 한 것은 정말 행운이고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그동안 시나리오를 계속 써왔는데 송강호씨가 십여년간 너무 바빠 차마 건네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흔쾌히 아주 빠른 시일 내 하겠다고 응답해주셨습니다. 캐스팅 된 순간부터 이 순간까지, 현장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송강호라는 배우가 과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구나하는 감동을 느끼게 했습니다. 같이 본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유아인씨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이건 유아인이야'하고 찍어놨었어요. 알다시피 최근 '조태오'라고….

    ▲유아인 = 타 영화(베테랑) 발언은 삼가해 주십시오. (웃음)

    ▲이준익 = 영화를 보면 이십대 배우 중에 이런 연기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저희 '사도'에서도 이런 연기를…. 이건 영화로 확인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참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박경림 = 솔직히 유아인을 아들로 썼다면, 부자지간이 좀 외모를 닮은 구석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객석 폭소)

    ▲이준익 = 엄마를 닮으면 아빠와 달라도 돼요. 영조 역을 맡은 송강호씨는 영화에서 40대 초반부터 80대까지 연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특수 분장을 했죠. 영조 어진(御眞)를 보면 많이 유사합니다. 사도는 역사 속에 있는 인물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는 조금 뚱뚱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유아인씨의 눈빛을 보면 실제와 정말 똑같습니다.

    ▲송강호 = 우선 감독님이 과찬을 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인연은 없었지만 이준익 감독님과의 공동 작업을 기다려왔습니다. 이준익 감독만이 갖고 있는 감성이랄까. 따뜻한 시선. 이런 것들이 영화 '사도'를 통해 꽃 피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나리오도 좋았지만 이런 감성이 어떻게 녹아들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해서 기분좋게, 행복하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유아인 =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사도세자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었다는 너무나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죠. 이같은 비극은 이전에도 많은 작품에서 그려졌던 소재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차별성을 갖고 그려지느냐가 아주 중요한데요. 시나리오를 보는 내내 아주 신선하고 재미있었고 감탄하면서 봤어요. 사도의 이야기에서 차별성을 느꼈습니다.

    △박경림 = 그동안 많은 작품에서 훌륭한 선배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춰오셨는데요. 이번에 함께 연기를 한 송강호씨와는 어땠나요?

    ▲유아인 =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죠. 제가 감히 파트너로서 선배님과 마주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도 했고요. 송강호 선배님과는 서로 죽고 못 사는, 죽이지 못해 못 사는 연기를 했는데요. 제가 연기를 잘 할 수 있도록 긴장감을 만들어 주시고,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여태껏 만난 배우 분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사도'니까….

    ▲이준익 = '베테랑' 제작발표회 때에도 이런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박경림 = 실제로 송강호씨는 연기 경험이 없는 후배와 작업을 해도 잠재력을 200% 끌어내는 능력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 ▲이준익 = 송강호씨는 상대 배우가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공기를 불어 넣어주는 것 같습니다. 그냥 무턱대고 마음대로 하라고 냅두는 게 아니라, 해당 신에 맞는 공기를 만들어 주는 거죠.

    △박경림 = 오, 박진영씨가 되게 좋아하겠는데요.

    ▲송강호 = (웃음) 후배 배우들이 아주 훌륭합니다. 오히려 저는 유아인씨를 비롯해서 뛰어난 후배들의 연기와 열정을 보면서 제가 자극을 받고 많이 배우기도 하는 그런 기회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유아인씨가 열 아홉살 차이나 나는데요.

    제가 유아인씨 나이 정도에 영화 데뷔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저와 비교하면 유아인씨는 '대배우'입니다. 그때 저는 바보였거든요. (웃음) 그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깊이가 있고, 배우로서 열정이랄까 자세랄까 태도도 매우 훌륭하고…. 옆에서 봐도 되게 선배가 더 많이 배우게 되는, 그런 멋진 배우가 아닌가 싶어요.

    ▲유아인 = 감사합니다, 아버지.

    △박경림 = 선배들에게 '나는 저 나이 때 저런 연기를 했었나?' 하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연기의 타임머신' 같은 존재가 바로 유아인씨가 아닌가 싶습니다. 감독님께 여쭤보겠습니다. 배우들을 처음 만났을 때 어땠나요?

    ▲이준익 = 송강호씨가 영조 역을 맡고 남원에서 첫 촬영을 할 때였는데요. 그날 촬영 분량이 꽤 많았어요. 보통은 송강호씨 특유의 보이스톤이 있는데요. 이번 영조는 좀 달라요. 송강호씨가 다른 목소리를 준비해오셨더라고요. 보통 이런 대배우들은 딱 한 번에 끝내는 경향이 있는데, 송강호씨는 모니터 옆에서 아주 소소한 대사를 수십번 수백번 반복해서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정말 대단했습니다.

    ▲송강호 = 사극이다보니 평소 언어와 다르고 호흡도 다르고…. 그래서 그랬던 겁니다. 늘 그런 건 아니에요. (웃음)

    ▲유아인 = 분장실에서요. 으아~ 하고 대사를 읊조리시시면서….

    △박경림 = 무슨 발성 연습인가요?

    ▲송강호 = (웃음)

    ▲유아인 = 대단한 분이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이준익 = 주연배우가 그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현장에 팽팽한 긴장감 같은 공기가 흐르게 돼요.

    대리청정 신이 굉장히 길었는데요. 카메라가 정면에서 투샷으로 왔다갔다하면서 롱테이크로 찍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유아인씨가 준비해온 설정이 저랑 좀 안맞았어요. 그래서 유아인씨 앞에 앉아서 이런 식의 설정이 어떻겠느냐고 견해를 물었어요. 유아인씨가 앞에 찍었던 톤을 잘 모르니까 그런 느낌을 그대로 이어가는 차원이었죠.

    보통 이런 경우엔 잠시 쉬었다가 다시 세팅을 하는 게 일반적이죠. 카메라들이 뒤에 서 있고 선배 배우들은 앞에 쭉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아인씨는 그대로 갔어요. 원테이크로 가다가 자기가 준비한 게 튀어나오면 잠깐 스톱을 한 뒤 다시 이어서 원테이크로 계속 가더라고요. 그런 광경은 처음 봤습니다. 유아인씨만이 할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대단한 배우예요.

    △박경림 = 아까 대기실에서 감독님이 뭐라고 하셨죠? 나는 오늘 할 말이 없다. 준비해 온 게 없다….

    (객석 폭소)

    감독님, 오늘 질문 안드렸으면 어떡할 뻔 했어요. 이번엔 키워드 토크입니다. 먼저 비극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죠. 감독님은 '왕의 남자'에 이어 '사도'에서도 비극적인 내용을 연출하셨는데요. 이번엔 왜 이같은 비극적인 가족사에 초점을 맞추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준익 = 이야기를 만들면서 도전하고픈 지점이 바로 비극입니다. 제 목표는요. 비극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겁니다. 사도 세자는 누구나 알고 있는 흔한 이야기인데요. 이게 언제까지 비극으로만 남아 있는 게 과연 올바른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이 비극에 도달하는 것은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이어야합니다.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아들을 죽음으로 이끈 아버지의 마음, 심리 감정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의문들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세자가 뒤주에 갇힌지 8일 만에 세상을 떠난 사건입니다. 거북한 옷을 입고, 분장을 하고 뒤주안에 들어갔죠. 뒤주 안과 밖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심리를 좇아가다보면 비극은 아름다워야한다는 그런 감정선들이 잘 보여졌으면 좋겠어요.

    △박경림 = 비극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들이 연기한 비극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겁니다.



  • 두번째 키워드는 콤플렉스입니다. 영조나 사도 모두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어요. 스틸 컷에서도 두 사람이 고뇌하는 모습들이 엿보입니다. 송강호씨는 영조의 콤플렉스 연기가 힘들지 않았나요?

    ▲송강호 = 영조대왕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형님인 경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분이라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경종이 일찍 단명하다보니 독살설 같은 의혹을 평생 안고 갔던 분입니다. 아버지는 숙종 대왕, 어머니는 천민 출인이에요. 그런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왕의 정통성에 대한…. 그래서 평생 사도 세자에 대해서도 그렇게 혹독한 기준과 훈련을 내세웠던 게 아닌가. 이런 점이 비극의 씨앗이 된 겁니다. 영화 속에서도 '왕'이라는 정통성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모습들이 간접적으로 많이 보여집니다.

    이번에 영조 역을 맡으면서 배우로서 제 나이보다 20~30년 더 살았던 인물을 연기하게 됐는데요. 목소리나 여러가지 부분에 대해 많이 연구를 하게 됐습니다.

    △박경림 = 왕 역할은 이번이 처음이시죠?

    ▲송강호 = (웃음) 소원 풀었죠.

    ▲유아인 = 사도는 정통성을 가진 인물이었는데요. 아버지가 가진 콤플렉스의 피해자였어요. 왕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 자신보다 뛰어난 기질을 가진 아들 정조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진…. 단순한 콤플렉스라기 보다는 그런 것들이 자신의 운명에서 도망치고 싶게 만드는 요소였어요.

    △박경림 = 한치의 물러섬도 없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인데요. 사실 주위에 갈등을 빚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이 참 많죠.

    ▲이준익 = 세상의 모든 아들은 아버지를 두고 있습니다. '사도'는 영조, 사도, 정조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예요. 영화 안에 56년간 있었던 이야기를 압축했습니다. 이런 방대한 이야기를 2시간으로 압축한다는 게 위험한 선택이긴 하지만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어느 장소나 시대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랑하지만 실망도 하고 그런 실망이 미움이나 증오로 자라나기도 하죠. 애정이 넘칠 때 사단이 나는 겁니다. 이같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상처와 고통이 누군가에겐 큰 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박경림 = 송강호씨는 실제로 아들이면서 아버지시죠?

    ▲송강호 = 저는 실제로는 저렇게 엄격한 편은 아닌데요. 영조나 사도나 그 시대의 왕에 대한, 군주에 대한 생각을 알게 되니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유아인 = 저는 아버지와 세대 차이를 더 확실하게 느끼게 됐습니다. 하하. 저희 아버지도 경상도 분이다보니 식탁에서 말도 없이 밥먹는 환경 속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를 연기하면서 운명처럼 생각하게 됐어요.

    △박경림 = 우리 모두가 아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누구도 알지 못했던 그 안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영화 '사도'를 통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8일간 벌어진 이야기 속에 56년이란 세월을 최초로 풀어낸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준익 =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때 연역적으로 보여주기엔 너무 방대한 분량이라 시간 순서로 만들지 않고 역순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배치했습니다. 처음 하는 작업이었는데요. 다행히 배우 분들이 이런 불안한 요소들을 다 메워주셨습니다.

    △박경림 = 여름에 특수 분장을 하고 찍는 게 상당히 힘드셨을 것 같아요.

    ▲송강호 = 무덥고, 오래 걸리는 일이긴 하지만 배우로서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극들이 있지만, '사도'라는 영화는 90% 이상이 팩트 위주로 구성이 된 작품이죠. 돌직구 같은 그런 사극인 것 같습니다. '사도세자'처럼 익숙한 얘기들을 어떻게 경쟁력 있는 작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이 컸어요. 그래서 연기할 때 신경을 많이 썼죠.

    △박경림 = 유아인씨는 뒤주에 8일간 갇혀서 결국 죽음에 이르는 역을 맡았는데요. 이같은 연기는 보통 감정적으로 소모가 크지 않나요?

    ▲유아인 = 물론 그랬지만 체험해보고 싶었어요. 배우가 아니면 결코 겪을 수 없는 경험이잖아요? 그 순간을 체험하고 그 정서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 안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하는 부분들은 제가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감정들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아주 새로웠고 배우로서 가질 수 있는 일종의 '영광'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감정들까지 체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박경림 = 한 영화(사도)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다른 영화(베테랑)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객석 폭소)

  • ▲유아인 = 지금도 기성 세대와 신세대간의 갈등이 있잖아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힘든…. 가깝고 친밀한 사이 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사이. 한집에서 살고 같은 운명을 걸어가는 입장에도 결코 이해할 수 그런 관계가 아닐까 싶어요. 한 집에서 살지만 죽는 날까지 이해할 수 없는 부자지간. 그러한 점을 영조와 사도가 잘 표현해 낸 것 같아요.  

    △박경림 = 영조는 사도가 왕이 돼 주길 바랐고, 사도는 영조가 자신의 아버지가 되어 주길 바랐던 것은 아닌지…. 송강호 만의 영조는 어떻게 해석을 하고 연기를 했는지 말씀해 주실까요?

    ▲송강호 = 이같은 소재는 드라마로는 많이 다뤄졌었고, 영화로는 한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조를 다룬 영화는 많지만 사도와 영조를 다룬 영화는 60년대 이후엔 저희가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그동안 여러 선배님들이 영조대왕을 연기해 오셨는데 저희들은 어떤 비약이나 해석의 확대랄까 이런 것들이 아니라 8일간에 있었던 사실을 중심으로, 심리적인 과장이나 그런 쪽 보다는, 가장 현실적인 영조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사도'의 지향점 중 하나였습니다. 물리적으로 20~30년 위에 영조대왕을 연기할 수 있겠느냐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가장 현실적인 영조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유아인 = 아주 인간적인 영화예요. 무겁다는 느낌도 있지만, 웃음포인트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 안에서 웃음을 감당하는 송강호 선배님이었는데요. 지금까지 나왔던 영조 캐릭터 중에서 아주 인간적인,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박경림 = 송강호씨는 정말 우리의 아버지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도세자라는 소재를 다루게 된 계기, 그리고 그리 닮지 않은 송강호와 유아인을 부자지간으로 캐스팅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질문 대독)

    ▲이준익 = 저보다는 배우들의 선택이 더 주효했다고 봅니다. 시나리오를 우리는 머리로 쓰는데요. 생각을 잘 구현한 시나리오를 캐스팅용으로 전달했을 때 선택하는 것은 감독이 아닌 배우입니다. 영조는 송강호가, 사도는 유아인이 선택한 겁니다. 그리고 사극을 반복적으로 찍는 이유는 제가 잘 몰라서 찍는 것 같습니다. 잘 아는 얘기라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제 자신이 잘 모르니, 그 호기심 때문에 잘 모르는 시대극을 찾아 열심히 찍는 것 같습니다.

    요즘엔 사극에 판타지 같은 요소를 접목하는 걸 자주 보는데요. '황산벌'이나 '왕의 남자'는 사실을 근거로 오늘날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느냐를 고민한 끝에 나온 작품들입니다. 200년 전 영조와 사도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겠습니까? 다 지난 일이죠. 그러나 내가 이 땅에 있고 이 순간에 '나'라는 DNA 안에는 사극 안에 있는 어떤 마음과 닿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조나 사도의 마음들이 요즘 사회에서 벌어지는 세대간의 갈등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건 그리스에도 없던 비극이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이야기들은 있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것은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가능한한 사실을 근거로 해서 해석의 확대나 약간의 변형을 거친, 그 정도의 사극을 연출하고 싶었어요.

    △박경림 = 제작기 영상이나 티저 그림을 자꾸 보니 이제는 두 분이 굉장히 닮은 것 같습니다.

    ▲송강호 = 사실 메이크업도 비슷하게 해보려고, 헤어스타일이나 의상에 변화를 주기도 했는데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박경림 = 마지막으로 끝인사 부탁드릴게요.

    ▲이준익 = 여러분 기대를 낮추십시오. 버리십시오.

    △박경림 = 무슨 말씀이세요? 기대를 갖지 말라뇨? (웃음)

    ▲송강호 = 그동안 여러분을 2년 가까이 못뵀는네요. 이번 영화를 통해 날씨 좋은 가을에 따뜻한 영화로 인사드리게 돼 감개무량합니다.

    ▲유아인 = 기대 많이 해주세요. 아마 감독님께서도 오랫동안 이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셨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끌린 작품이 바로 '사도'입니다. 드디어 소개를 해 드리게 됐는데요. 큰 사랑 보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준익 = 유아인은 반골이야 반골. (웃음)

    △박경림 = 이상으로 영화 '사도'의 제작보고회를 마치겠습니다. 함께 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목 : <사도>
    감독 : 이준익
    출연 : 송강호, 유아인, 문근영, 전혜진, 김해숙, 박원상
    제공/배급 : ㈜쇼박스
    제작 : ㈜타이거픽쳐스
    개봉 : 2015년 9월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