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물망초, '북한영화를 통해 본 일상생활 속 어머니' 세미나
  • ▲ 물망초인권연구소가 8일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10층에서 제22차 월례조찬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은 (왼쪽부터) 이재원 물망초 인권연구소장, 안지영 인제대 외래교수,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 북한이탈주민 마순희 씨. ⓒ 물망초 인권연구소
    ▲ 물망초인권연구소가 8일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10층에서 제22차 월례조찬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은 (왼쪽부터) 이재원 물망초 인권연구소장, 안지영 인제대 외래교수,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 북한이탈주민 마순희 씨. ⓒ 물망초 인권연구소

    북한인권단체인 사단법인 물망초(이사장 박선영)가 어버이날을 맞아 북한영화에서 묘사하는 ‘어머니 상(像)’의 특징을 알아보고, 북한 독재정권에서 선전하는 ‘사회주의적 남녀평등’의 허구성을 분석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 참석한 패널들은 북한당국이 남녀평등을 내세워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면서, 실제 북한은 매우 가부장적 사회이며 여성 개인의 행복이 실종된 사회라고 입을 모았다.

    물망초 인권연구소는 8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10층에서 ‘북한영화를 통해 본 일상생활 속의 어머니’를 주제로 제22차 월례조찬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재원 물망초 인권연구소장(법무법인 을지 대표변호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에서는, 안지영 인제대 외래교수가 발제를 통해 북한영화에서 그려지는 여성상을 분석했다. 아울러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북한이탈주민 마순희씨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 北, 선군정치 내세워 집단을 위한 여성의 일방적 희생 강요

    안지영 교수는 북한영화에 대해 “체제의 선전·선동 의도가 담겨있긴 하지만, 북한의 문화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주민들의 사는 모습이 담겨있다”며, “그들의 생활상을 어느 정도 참고할 수 있고 북한 당국의 정책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일은 1998년 이후 ‘선군정치’를 내세우며 선군혁명영화 제작을 지시했고, 군인의 위상과 역할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을 중심에 둔 경제개선정책을 반영하는 장면을 영화에 담는데 주력했다.

    ‘군관의 안해들’(2000), ‘어머니의 행복’(2003), ‘엄마를 깨우지 말아’(2002), ‘행복의 수레바퀴’(2010) 등 북한영화 속 어머니들은 국가정책에 충성하기 위해 가족조차 희생시키며, 이상적 모델로서 김일성의 첫째 부인인 ‘김정숙’을 부각·칭송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 ▲ ▲참석자들이 세미나 발표 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 물망초 인권연구소
    ▲ ▲참석자들이 세미나 발표 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 물망초 인권연구소

    이 때문에 북한영화에는 주로 외아들을 둔 홀어머니나 고아를 입양한 처녀엄마에 대한 설정이 흔하며, 심지어 임산부조차 특별한 배려 없이 돌격대에 동원되는 장면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 교수는 북한당국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여성’에 대해,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대상으로만 파악하고 있으며 모성의 논리가 ‘선군정치’와 결합해 국가주의의 도구로 전락했다”고 평했다.

    국가정책에 충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북한영화에서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가족이기주의’에 대한 해석도 이어졌다.

    안 교수는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여성이 경제주체로 떠올랐고, 사회동원보다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는 모습이 영화에서 관찰된다”며, “이는 북한여성들이 국가에 종속된 수동적 주체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모색해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영선 교수는 토론에서 “북한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내세우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신격화’가 작동되고 있다”며, “이야기 전개구조가 매우 단순해 마치 신라 향가를 해석하는 수준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전영선 교수는 북한영화를 통해, 북한 사회의 모순을 엿볼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대외적으로는 남녀평등을 강조하면서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과시하지만, 실제로는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풍토가 지배하는 모순이, 영화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는 설명이다.


    ◆ 사회주의 '남녀평등' 가치 우월하다며 선전하지만..현실은 전근대적 사회

    그러면서 전 교수는 북한영화 ‘시인 조기천’의 한 장면을 예로 들었다. 이 영화에서 사회주의자인 조기천 시인은 광복 후 조국으로 돌아와 조선땅을 돌아보던 중, 큰 보따리와 아이를 업고 가는 아내와 빈손으로 걸으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남편을 보고 ‘사회주의 제도는 남녀가 평등하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도와야 한다’고 훈계를 한다.

    이 장면은 2000년대 중반에 나온 조선중앙방송위원회 토막극 ‘다정한 부부’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북한이 ‘봉건잔재 청산’과 ‘남녀평등 실현’ 등의 가치로 사회주의의 우월함을 선전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도 현실에서는 가부장적 생활형태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 교수는 “당 정책에 의해 국가와 사회, 가정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이 강요돼, ‘개인으로서의 어머니’가 실종됐다”고 분석하면서 “북한 여성들이 개인성에 대한 부분을 깨우치는 것이 북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 참석자들이 세미나가 끝난 뒤 패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물망초 인권연구소
    ▲ 참석자들이 세미나가 끝난 뒤 패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물망초 인권연구소

    마순희 씨도 “북한은 국가법령으로 남녀평등권을 명시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가부장적인 나라”라며, “여성혁명가들에 대한 영화인 ‘피바다’, ‘당의 참된 딸’, ‘강물은 흐른다’ 등의 그 어디에도 어머니 자신을 위한 행복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 영화에는 ‘우리’는 있어도 ‘나’는 없다. 북한에서 개인의 운명이나 행복은 오직 당과 수령을 위한 길에 희생해야 하는 것으로 교육받아왔고 그렇게 행동하기를 강요 받은 것”이라고 전하면서 “북한의 어머니들과 여성들도 당연히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고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당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바쳐야만 했다”고 말했다.

    지난 1998년 3명의 딸과 함께 탈북해 2003년 대한민국에 정착한 마순희씨는 사이버대학을 졸업하고 남북하나재단에서 북한이탈주민전문상담사로 근무하기도 했다.

    마 씨는 “우리식구들은 특별히 큰 재산을 모아놓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세금도 내면서 대한민국의 성실한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식구 중 한 명의 수급자도 없이 제대로 정착해 살고있다는 것 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편 세미나를 기획한 이재원 물망초인권소장은 “어버이날을 맞아 북한에서의 ‘어머니’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이날 세미나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에서 어머니와 여성이라는 존재는 북한 정권에 의해 이용•희생당해야 하는 취약계층”이라며 “북한 정권이 선전하는 사회주의에 의한 ‘남녀평등’이라는 허상을 통해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희생을 강요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