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빅토르 안’입니다

    조광동 /재미언론인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 팀으로
소치 올림픽에 출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편치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국인들을 열광케 하고 금메달 3개를 수상해
한국 쇼트랙 빙상 역사에 이정표를 세웠던 안현수가
러시아 국기를 달고 출전한 현실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안현수가 한국을 떠난 것은 한국 빙상계의 파벌과 부조리 때문이었고,
올림픽에 다시 출전하고 싶은 꿈을 펼칠 수가 없어서 러시아로 귀화했다는
아버지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마음은 얼른 납득이 되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말이 아들의 어색한 귀화를 합리화시키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올림픽의 영광을 다시 한번 목에 걸고 싶은 인간적인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스포츠 영웅’이 국적을 바꾼 것에 제 감정이 순응하질 않았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스포츠를 위해 조국을 떠난 것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빙상 선수가 하루 아침에 국적을 바꾼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안현수가 러시아를 선택하기 전에 여러 나라의 조건을 ‘샤핑’했다는 보도는
 제 마음을 유쾌하게 하질 않았습니다.
조금 가혹하게 이야기하면 한 나라의 장군이 돈과 조건을 놓고 흥정한 다음
상대국의 용병이 된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안현수의 국적 이탈은 한국인들에게 배신감을 주기에 충분한 선택이었습니다. 

안현수의 귀화를 이민과 동일시해서 오해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조국을 떠나 이민을 가는 것이 마치 조국을 배반한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떠나는 것을
조국에 대한 배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지극히 잘못된 것이고, 사고가 편협하고, 비뚤어진 것입니다.  

이민은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천부의 인간 행복과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운명을 바꾸는 선택입니다. 인간의 꿈을 더 큰 세상에서, 더 큰 기회에 도전해서, 더 큰 인간의 삶, 인간의 역사에 공헌하는 기회이자 진취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한 것은 이민에 해당된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한 개인이 국가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을 때는
아무리 억울해도 개인의 야심은 국가에 대한 책무와 헌신으로 희생해야 하고,
부조리에 맞서는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것을 버릴 때 너무 이기적으로 보여지게 됩니다.
안현수는 국가보다는 개인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스포츠 영웅’의 인격, 국가에 대한 도리의 문제입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쇼트트랙 최종 결승전 경기를 TV로 지켜보는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안현수와 함께 다른 2명의 한국 선수도 함께 출전했습니다.
 선수들이 트랙을 돌면서 앞뒤를 다투는 긴장의 순간이 계속 되면서
 저는 제 자신의 마음이 달라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마음에 자리했던 안현수에 대한 비판적 감정이 사라지고
 저도 모르게 안현수를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안현수가 금메달을 따 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성과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분출이었습니다.
 제 자신의 이중성과 모순의 뿌리가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물론 안현수가 같은 핏줄의 형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제가 한국 선수보다 안현수를 더 본능적으로 응원했다는 것은
핏줄의 논리 만으로 설명이 되질 않았습니다.
 안현수에 대한 동정과 연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민자가 국적을 바꾸어 새로운 나라의 시민이 되었을 때,
그 나라를 사랑하고 새로운 ‘애국심’을 접목하고 소화하기까지는
 많은 감정의 갈등과 방황을 거쳐야 합니다.
안현수처럼 귀화를 급조했을 경우는
마음 속에 더 많은 번민과 갈등이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안현수를 응원한 것은
안현수를 “외로운 코리안 이민자”로 받아 들였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안현수를 이민자로 생각지 않았지만,
안현수의 현실은 어쩔수없이 이민자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안현수는 더 이상 안현수가 아니라 ‘빅토르 안’이었습니다. 

그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고 귀화한 이민자는
이민한 곳의 삶이 아무리 만족스럽고,
이민의 세월이 많이 흘러도 숙명적인 외로움이 있습니다.
러시아 깃발을 어깨에 걸치고 환호하는 러시아인들에게 답례하는
빅토르 안의 가슴 속에는 본인만이 알 수 있는 깊은 외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영광과 스포츠를 위해 외로움의 길을 택했지만,
인간의 선택 뒤에는 보이지 않은 다른 감정의 그림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제가 빅토르 안을 저도 모르게 열심히 응원한 것은
나라는 달라도 같은 코리안 이민자가 된 외로움의 감정이
 이입되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빅토르 안이 금메달을 따지 못했을 때 그의 가슴 속 외로움은 더 커질 수 있고,
그의 러시아 이민에 대한 후회의 가능성이 그만큼 커질 수 있었기에
저는 빅토르 안이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기를 바랬는지도 모릅니다. 

제 감정이 ‘빅토르 안’을 응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의 축제가 끝난 뒤 제 마음은 다시
 ‘안현수’에 대한 본래의 아쉬움과 착작함으로 돌아 왔습니다.
이것 또한 이민자의 방황하는 가슴, 갈등의 여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민자는 새로운 땅, 새 조국에서 살아 남아야 하고,
거기서 새 뿌리를 내리고 성공해야 합니다.
이민자가 새 땅에서 실패하고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이민자의 가슴은 두번 찢어집니다.

 빅토르 안이 금메달로 그의 새 조국 러시아에 보답하고,
 러시아의 빙상 발전을 위해 공헌할 때,
그의 외로움은 극복될 수 있고,
 그의 러시아 선택은 후회없는 이민이 될 것입니다. 

빅토르 안은 더 이상 한국을 떠나게 된 상황과 이유에 대해
구구한 해명이나 구차해 질 수 있는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칫하면 평지풍파를 일으킬 수 있고, 오늘의 영광에 흠집을 만들 수 있습니다.

떠난 자는 말이 필요없습니다.
자신의 선택을 바람직하게 하기 위해 빅토르 안은
조국 한국을 잊고 러시아를 위해 몰두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한국은 더 이상 빅토르 안을 한국 안의 잇슈로 끌어 들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빅토르 안이 한국을 떠난 빙상계의 부조리를 척결하는 것은 절실한 것이지만
거기에 빅토르 안을 끌어 들이는 것은
빅토르 안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어느 스포츠 평론가는
 “안현수 쪽의 아버지와 소속사 관계자로 부터
 안현수 선수가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고 싶어 한다”한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전에 빅토르 안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은
러시아 언론과 인터뷰에서 의례적인 얘기를 한 것이 아니겠느냐”라는
성급한 자기 해석을 했습니다. 

빅토르 안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 갈 수도 없고, 돌아 가서도 안 됩니다.
빅토르 안이 한국을 떠난 것은 건너 온 다리를 불태운 것입니다.
한국으로 돌아 갈 경우,
 이것은 빅토로 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코리안의 이미지, 도덕성, 신뢰성까지 해치게 되고,
한국과 러시아 간의 국가 관계로 까지 비화할 수 있습니다.
 빅토르 안의 인격도 죽고 코리아의 국격도 훼손됩니다. 

빅토르 안의 러시아 선택이 스포츠 용병이 아니라
스포츠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였다면
떠난 조국은 떠난 것으로 묻어두고
새 조국 러시아의 스포츠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빅토르 안이 러시아에서 성공적인 이민자가 될 때,
그는 러시아에 스포츠 한류를 심고,
코리안의 기량과 기상을 높여 줄 것입니다.
이것이 글로벌 시대 민족 영역의 확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