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국훈련 중 주요시설 테러 대응훈련의 한 장면. 경찰 특공대와 수방사 특임대가 나섰다.
    ▲ 호국훈련 중 주요시설 테러 대응훈련의 한 장면. 경찰 특공대와 수방사 특임대가 나섰다.

    대테러(Counter-Terror).
    이 이름을 쓰는 정부조직은 왠지 살벌하고 기계처럼 움직일 것 같다.
    하지만 국내 [대테러 기관]은 그렇지가 않은 듯하다.
    지난 16일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일어난
    [진천중앙교회 성지순례객] 테러에는 별 관심도 없다고 한다. 


    시나이 반도 테러 이후 부산한 외교부, 조용한 국정원


    16일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테러가 발생한 뒤
    외교부와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정부의 최우선 임무 중 하나인 [재외국민 보호]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정원은 별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내부적으로는 현지 대사관에 파견나간 국정원 직원이 발 빠르게 움직였는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조용했다.

    언론 등은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폭탄 테러를 저지른 용의자가 누구인지 궁금해 했다.
    곧 유력한 용의자로 시나이 반도에서 활동하는 알 카에다 연계 조직
    <안사르 바이트 알 마크니스(Ansar Bait al-Maqdis, أنصار بيت المقدس‎)>가 지목됐다.

  • ▲ 진천중앙교회 성지순례객들이 탄 버스에 테러를 가한 안사르 바이트 알 마크니스(예루살렘 후원자들)의 깃발.
    ▲ 진천중앙교회 성지순례객들이 탄 버스에 테러를 가한 안사르 바이트 알 마크니스(예루살렘 후원자들)의 깃발.

    이에 국내 대테러 업무를 총괄 관리한다는 국정원 측에
    이 단체에 대해 아는 정보가 있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그런 건 잘 모르겠다].

    그럼 현재 무슨 활동을 펴고 있는지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해외에서 일어난 테러 등 재외국민보호 부분은
    [법적]으로 외교부 소관이기 때문에 우리(국정원)는 관여할 수 없다.”


    국내 대테러 활동의 [선봉]으로 알려진 국정원의 대답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한편 외교부에서는 인원도, 예산도 가장 작다는 [재외국민보호과]에서는
    이 사건을 맡아 밤낮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재외국민보호과] 뿐만 아니라 이집트와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 영사들은
    현장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외교부 긴급대응팀은 18일 오후 늦게 테러 사건 현장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국민들이 영화 <베를린>에서 봤던,
    <박근혜> 정부 이후 <남재준> 원장이 취임한 뒤 [전사가 되겠다]던
    그 국정원은 어디로 간 걸까?
    [안드로메다]로 간 걸까, 아니면 정은이 목 따러 간 걸까?

  • ▲ 국회 국정원 개혁특위에 나온 남재준 국정원장. 그는 취임 일성으로 "나도 전사가 되겠다. 여러분도 전사가 돼라"고 외쳤다고 한다.
    ▲ 국회 국정원 개혁특위에 나온 남재준 국정원장. 그는 취임 일성으로 "나도 전사가 되겠다. 여러분도 전사가 돼라"고 외쳤다고 한다.


    국내 대테러 조직, 머릿속까지 근육으로 가득 찼다?!


    사실 국민들이 언론 등을 통해 보는 국내 대테러 기관들은
    대부분 군과 경찰 소속의 [대테러 부대]다.

    육군 특전사령부 예하의 707특수임무대대,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성공리에 마친 해군 특수전 여단 내 대테러 제대,
    경찰청 소속의 868특공대와 각 지방경찰청마다 있는 경찰 특공대,
    해양경찰청의 특공대,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35특공대 등
    다양한 [대테러 부대]들이 있다.

    국민 대부분은 이들 [대테러 부대]가 국제 행사나 대형 축제 등에서
    [대테러 훈련]을 하며 보여주는 [묘기]만 봐 왔다.

    하지만 [대테러 부대]는
    실제 대테러 작전과 테러 대응 정책에서 손과 발 역할을 맡는 [근육]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대테러 작전을 총괄 관리하는 [책임자]는 누구일까?

  • ▲ 우리나라 최정예 '정규 특수부대'로 불리는 특전사 707특임대. [사진: 연합뉴스]
    ▲ 우리나라 최정예 '정규 특수부대'로 불리는 특전사 707특임대. [사진: 연합뉴스]

    현재 우리나라에는 대테러 관련 법률이 없다.
    대신 1982년 1월 21일 대통령령으로 정한
    [국가대테러활동지침]이 법률을 대신하고 있다.

    이 지침 제2장 1절 5조에 따르면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테러대책회의]가 있다.
    이곳 의장은 [국무총리]다.

    [테러대책회의]에는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안전행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국토해양부 장관과
    국정원장, 국무총리 실장,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청와대 경호처장, 외교안보수석, 관세청장, 경찰청장,
    소방방재청장, 해양경찰청장 등이 참가한다.

    이 [테러대책회의]는
    국가 차원의 [대테러 전략]을 논하고 정하는 곳이고,
    여기서 결정된 바에 따라 실행을 하고 대테러 활동을 관리 감독하는 곳이
    바로 [테러정보통합센터(Terror Information Integration Center, TIIC)]다.

    이 [테러정보통합센터]는 실질적으로 국정원 산하에 있다.
    지침 2장 3절 11조에 따르면
    [테러정보통합센터]의 책임자 임명, 인원 및 구성 등에 대한 권한이
    국정원장에게 있고, 국가주요행사에 대한 [테러 예방활동]도 감독한다.

    그렇다면 국정원과 [테러정보통합센터]가
    국가 대테러 활동에서 [사실상 두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침을 살펴보면 여기는 [두뇌]가 아니라 [눈]과 [귀], [입] 정도 역할만 한다.

  • ▲ 테러정보통합센터(TIIC) 홈페이지 메인화면 캡쳐. 실제 메뉴를 보면 '빈약하다'는 느낌이 든다.
    ▲ 테러정보통합센터(TIIC) 홈페이지 메인화면 캡쳐. 실제 메뉴를 보면 '빈약하다'는 느낌이 든다.

    지침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대테러 기관] 중 [두뇌] 역할을 할 만한 곳은 없고,
    [근육]과 감각기관, 그리고 소화기관
    (테러 대응을 이유로 책임소재 분리와 권한 강화가 필요한 정부 부처들)만
    잔뜩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군사시설에 대한 테러는 국방부가,
    해외에서의 테러는 외교부가,
    국내 민간인에 대한 테러는 안전행정부가,
    산업기반 시설에 대한 테러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교통시설에 대한 테러는 국토해양부가 맡도록 돼 있다.

    즉 테러조직의 시각에 서서 테러를 사전에 예방하는 게 아니라
    [테러가 발생한 뒤]를 가정해
    부처 간의 [충돌]이 적도록 지침을 만들어 놓았다는 말이다.

    [지침]이 이런 탓에 정부 부처들은 우리 국민들의 보호를 목표로 해서
    [대테러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해당 부처의 관할 분야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이런 모습을 대테러 활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 보면,
    우리나라의 대테러 조직은 [머릿속까지 근육으로 꽉 찬]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 한국 대테러 활동은 국내로 한정?!


    사실 [국가대테러활동지침]에는 더 큰 문제가 숨어 있다.
    해외에서 우리 국민들이 테러를 당했거나 테러를 당할 위험이 있을 때
    제대로 [예방 조치]를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해외여행객이나 재외 국민들에게
    [테러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는 외교부에 있다.
    하지만 외교부는 [1급지]로 불리는 북미 지역이나 유럽, 일본 등으로 가려는,
    [일부 이기적인 외교관]들 때문에
    테러 위험이 있는 [4급지]나 [오지] 등에서는 늘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

  • ▲ 2007년 6월 원양어선 마부노 1호와 2호가 피랍됐을 당시 노무현 정권은 이 사실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관련 노조가 직접 나서 모금을 하고, 시민들이 도와 몸값을 지불할 수 있었다.
    ▲ 2007년 6월 원양어선 마부노 1호와 2호가 피랍됐을 당시 노무현 정권은 이 사실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관련 노조가 직접 나서 모금을 하고, 시민들이 도와 몸값을 지불할 수 있었다.

    실제 2007년 <마부노 호 피랍 사건> 당시
    남아공에서 출발한 원양어선 2척이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피랍됐을 때
    해당 사건을 맡은 담당영사는 駐케냐 대사관 소속이었다.
    이곳 대사관에서 인근 3개국에서 일어나는 사건까지 맡는다고 했다.
    이곳에 파견돼 있는 국정원 요원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해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 사건> 때도
    현지 외교관 수는 모두 합쳐 ○명에 불과했다.
    이 지역의 언어와 문화에 정통한 국정원 요원은 단 1명으로
    인근 파키스탄까지 관할 지역이었다.

    게다가 외교부는 [대테러 전문가]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다.
    재외국민보호를 맡은 현지 공관 영사가
    테러조직의 활동을 어떻게 파악하고, 무슨 협상을 하겠는가?

    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런 상황은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 16일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일어난 [진천중앙교회 성지순례객 테러] 당시
    이집트 주재 대사관 영사에다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 영사까지 [출동]한 이유도
    실은 이 지역이 [외교관 기피 국가]라 인력이 부족해서라는 해석이 많다. 

    경제규모가 1조 달러를 넘는 나라의 대테러 정책, 왜 이 따위일까? 

    국정원 측에서는 [국가대테러활동지침]이 1982년에 나온 탓을 한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지침이 나올 당시는 냉전이 한창일 때라 우리가 아는 테러 조직보다는
    북한에 의한 [테러]가 더 우려될 때였다.
    따라서 [대테러 활동]은 국내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 지난 16일,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일어난 진천중앙교회 성지순례객 버스 테러 사진. 이제 테러는 한국인을 피해가지 않는다. [사진: 연합뉴스]
    ▲ 지난 16일,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일어난 진천중앙교회 성지순례객 버스 테러 사진. 이제 테러는 한국인을 피해가지 않는다. [사진: 연합뉴스]

    그러나 지금은 2014년이다.
    32년 전의 [대통령령]에 기대 지금의 테러 위협에 맞선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국정원은 이를 내세워 [테러방지법]의 조속한 국회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국정원, 언제까지 법 핑계만 댈 건가?


    하지만 국정원은 [테러방지법 제정]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90년대 말 국정원 내부에 [대테러 부서]를 만들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기밀]이라고 하니 밝히지 않겠다.
    하지만 이후 국정원이 주도하는 [대테러 활동]이라는 게 어땠는지는
    앞서 설명한 재외국민 피랍 및 납치, 테러로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국정원의 [대테러 활동]을 뒷받침하는 [법적 근거]가 낡았다고 해서,
    활동근거의 [격]이 대통령령에 불과하다고 해서
    제대로 활동을 하지 않거나, 대통령에게 제도 개선을 건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상 직무유기] 아닌가.

    각종 학회나 공청회, 세미나 등에서
    이스라엘 모사드와 같은 우수한 정보기관으로의 발전하겠다,
    국정원 개혁이 필요하다고 외치면 뭐할 건가?

    자기나라 국민 하나도 못 지키면서,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요원들에게 충분한 [활동조건]도 제공하지 못하면서
    <모사드> 운운하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

    [원장] 혼자 [전사]가 되면 뭘 하나?
    다수의 [요원]들이 제도적, 환경적인 문제 때문에 [공무원]으로 전락한 상황인데
    수뇌부만 나서면 되나? [입]으로 [대테러 활동]하고, 재외국민 보호할 건가?

    최근 국정원의 [공식적 활동]도 웃긴다.
    언론들이 [서울시 간첩사건]이라고 부르는,
    [재북 화교 간첩의 공무원 위장취업 사건]에 대해서도
    [언론 참고자료]를 뿌리며 애를 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군 홍보부서를 떠올렸다.

    국정원 수뇌부가 기억해야 할 게 있다.

    남북한 관계, 우리나라 상황을 생각할 때
    국방부는 전쟁 때 나서는 조직이지만,
    국정원은 [평시]가 곧 [전시(戰時)]인 조직이다.

    따라서 국방부가 평시에 자신들이 하는 일,
    특히 대민지원이나 연합훈련 상황을 언론에 알리는 일은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국정원은 [아무 일이 없을 때] 전쟁을 하는 조직이므로
    자신들의 활동을 되도록 알리지 않는 게 좋다.

    꼭 필요할 경우에는 [기록]을 남기지 말고 접촉 대상을 찾아 차근차근 설명해야 한다.

  • ▲ 美국가대테러센터(NCTC) 본부와 국가정보장실(DNI)이 함께 사용하는 건물. NCTC는 2001년 '9.11테러' 직후까지는 CIA의 한 부서였다. 하지만 테러에 대한 적극적인 예방과 억지수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美정부와 의회는 이를 분리해 NCTC로 만들었다.
    ▲ 美국가대테러센터(NCTC) 본부와 국가정보장실(DNI)이 함께 사용하는 건물. NCTC는 2001년 '9.11테러' 직후까지는 CIA의 한 부서였다. 하지만 테러에 대한 적극적인 예방과 억지수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美정부와 의회는 이를 분리해 NCTC로 만들었다.

    2004년 국내에 <알 카에다>와 <탈레반> 등이 이용하는
    환치기 조직 <하왈라(Hawala)>가 대거 나타난 뒤
    한국인을 노리는 테러 징후가 세계 곳곳에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럴 때 [국가 대테러 활동]의 눈과 귀, 입이 되는 [테러정보통합센터]와
    그 감독조직인 국정원이 해외에서 테러가 일어났을 때
    지금처럼 [외교부 일이니까]하고 손을 놓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국정원은 외교부와 재외공관에 요원 몇 명 보냈다고 [임무]를 다 한 게 아니다.
    이번 이집트 시나이 반도 테러를 시작으로 해외첩보활동 역량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CIA의 CTC(대테러 센터)를 별도로 분리해
    <NCTC(국가대테러센터)>를 만든 것처럼 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언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켜줄지 모르는 국회의원들에게만 기댈 게 아니라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해서 [국가 대테러 활동지침]부터 바꿔서 움직여야 할 때다.  

    관련 부서들도 이제는 [궁지에 몰린 정보 파트] 그만 괴롭히고 본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