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절대빈곤 아니다
    人道的 지원 깊이 생각해야

    최 응 표 /뉴데일리 고문(뉴욕에서)
  •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소리가 나올 때마다
    북한의 實狀(실상)을 얼마나 알고 하는 소린가,
    하는 짜증 섞인 속말을 하게 된다.
    사전적 의미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에
    바탕을 둔 인도적 지원을 감히 누가 마다하겠는가.

    문제는 누구를 위한 인도적 지원이냐,
     다시 말해 ‘인도적’이란 숭고한 가치를
    받을만한 대상이 누구냐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굶주림을 말할 때
    1990년대 3백만, 4백만이 굶어 죽은 참상을 떠올린다.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것처럼 비참한 재앙은 없다.
    그 인간 최악의 참상이 현재도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북한이다.
    우리 형제들이 그 지옥의 땅에서 이유 없이 맞아 죽고 얼어 죽고 굶어 죽는다고 생각하면
     ‘인도적’ 보다 더 높은 차원의 지원을 말한다고 해서 누가 감히 토를 달겠는가. 

    하지만 그처럼 끔찍한 인간 최악의 참상이
    ‘絶對貧困(절대빈곤)’탓이 아니라면
    모든 문제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3백만, 4백만 주민(국민)이 왜 굶어죽었나.
    정말 절대빈곤 탓일까?
    김정일의 소름끼치는 소리를 들어보자. 

    “병들고 노동력이 없는 인민들은
    빨리 죽어 없어지는 것이 나에게는 편하다.

    철통같이 뭉친 군대와 당원 3백만 명만 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공화국은 건재하다.”

    이래도 3백만, 4백만이 절대빈곤 탓에 굶어 죽었다고 생각 하는가?
    굶어 죽은 것이 아니라 굶겨 죽인 것,
     적어도 양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량 학살’이라고 말해야 정직한 것 아닌가.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조차 모른 채 그 많은 형제들이 굶어 죽어가는 동안
    김정일의 아방궁과 그 졸개들의 안방에서는 酒池肉林
    (주지육림-술로 연못을 이루고 고기로 숲을 이룬다는 뜻)의
    배터지는 소리와 계집들의 요염한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쏟아져 나오고 또 나오고 있는데,
    이런 치 떨리는 악마들의 비인간적 행태엔 왜 말이 없나. 

    “너희는 운 좋아서 남한에 태어났고, 나는 운 나빠서 북한에 태어난 것 뿐인데----.”
    라며 서러움에 북받쳐 절규하는 어느 탈북여성의 눈물,
    그저 운이 나빠서 북한에 태어난 불쌍한 주민에게 무슨 죄가 있나.
    지도자를 잘못 만난 죄와 운 나쁘게 몹쓸 땅에 태어난 것이 죄일 뿐인데,
    그들이 왜 그처럼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 가 말이다. 

    북한은 절대빈곤 아니다. 부자집단이다.

    1995년부터 한국이 북한에게 인도적 지원을 시작한 이래
    공식적으로 지원한 돈만 9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됐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직, 간접으로 북한에 지원한 액수가 5천억이 넘는다.
    그렇다면 비공식으로 흘러간 돈은 얼마나 될까.
    아무도 모른다. 엄청난 액수라고만 알려져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는 매년 몇 십만 톤의 식량을 퍼주었다.
    인도적이라는 명목으로 민간단체에서 지원한 돈과 식량도 엄청나다.
    그 밖에 국제기구에서 지원한 물자와 식량은 또 얼마인가. 

    김대중 정권이후 종북 내지 친북성향 무리들이 줄줄이 북한을 찾았다.
    1998년 이후 10년간 사회문화교류 명목으로 4만 1700명 가까이가 북한을 방문했다. 

    이들 대다수가 북한 인사를 만날 때마다
    ‘면담’대가로 수십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까지 지불했다.
     그 액수 또한 얼마나 되겠는가.

    그 뿐인가. 마약수출, 밀수, 위조 달러 찍어 내기, 가짜 양담배 만들기와 살인무기수출 등,
    온갖 범죄행위로 달러를 긁어 들이고 있는데 왜 그들을 가난하다고 하나.
    그런데 그 엄청난 돈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가난한 게 아니라 돈이 공짜로 마구 쏟아져 들어오니 돈의 가치를 모르고,
     땀 흘리지 않은 눈먼 돈이 넘쳐흐르니 주지육림에 빠져 못된 짓만 골라 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는
    도덕적 인간들 사이에서는 사랑이 유효할지 모르나,
    비도덕적 사회에서는 그게 아니라고 한다.
    종교적 사랑은 무조건적일 수 있지만
    부도덕한 인간들, 더욱이 정치적 이념적으로 비도덕화 된 사회에선
    절대사랑(人道的)은 오히려 주위에 재앙을 뿌리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껏 봐오고 있다. 

    북한이 어디 인도적 사랑을 인도적으로 받아들이고 고맙다는 흉내라도 낸 적 있는가.
    주민들(국민)을 먹여 살리는 일은 통치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자식들은 굶겨 죽이면서 혼자만 배터지게 먹으며
    살인노름에 빠지는 애비가 세상에 어디 있나. 

    애비가 주지육림에 빠져있어도 자식들은 착한 이웃들이 다 먹여 살릴 뿐 아니라
    이웃들이 갖다 준 자식들의 밥까지도 마음대로 빼앗아 먹을 수 있는데
    걱정될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러니 애비의 버릇이 점점 더 고약해질 수밖에. 

    ‘인도적’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인도적’ 가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다시 말해 그런 인격을 갖춘 상대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김정일이가 아무리 철통같이 뭉친 군대와 당원 3백만 명만 가지면
    공화국을 지탱해 나갈 수 있다고 큰 소리 쳤지만,
    2천 7백만 백성이 다 굶어 죽어 북한 전체가 해골바가지로 뒤덮이는데도
    여전히 큰 소리만 치고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사정이 이쯤 되면 제아무리 악한이라도 꿍쳐둔 호주머니 일부를 털어서라도
    죽지 않을 만큼 죽 정도는 먹이지 않겠는가.
    문제는 굶어죽는 백성을 착한 이웃들이 먹여 살려주니까
    김정일, 김정은이가 마음 놓고 사람 죽일 흉계만
    꾸미고 있다는 생각들은 왜 안 하는가 말이다. 

    네 백성 네가 먹여 살려라.
    최선을 다 했는데도 역부족일 때,
    그 때 인도적 차원에서 도와주겠다는 메시지를 이제라도 보내야
    저들의 고약한 버릇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개과천선한다는 보장은 없다.

    북한 형제들의 죽음의 공포와 굶주림의 멍에는
     김씨 왕조의 세습독재가 끝나야 벗을 수 있다.
    인도적이라는 명목으로 주민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일은
    분명 우리의 몫이지만,
    동시에 김씨 왕조의 생명도 연장시켜
    북한 주민의 고통을 그만큼 더 길게 한다는데 고민이 있다.

    여기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 하다.
    북한 공산독재도 끝장내고 북한 형제들의 노예의 멍에도 벗겨내는
    솔로몬의 지혜는 북한을 절대 빈곤으로 보지 않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인도적 지원이 계속되는 한 김씨 왕조는 더 기세 등등해지고
    북한 주민의 고통은 더 고통스러워진다.
    이것이 2014년에 해결해야 할 우리의 고민이다. 

    이 지혜를 찾아내는 작업이 아마도
    박근혜 정부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이 아닌가 싶다.
    2014년도 그저 그렇게 보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북한 독재도 끝내고, 북한 주민도 구하고,
    자유통일도 이루는 윈윈의 지혜,
    국민의 의지와 대통령의 결단과 개개인의 양심이
    인도적 차원에서 하나가 되면 못 해낼 것도 아니다. 

    북한, 절대 빈곤 아니다.
    그런데 왜 북한 주민은 여전히 굶어 죽어가고 있나?
    사정이 이런데도 무조건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하나,
    신중하게 고민하면 반드시 길이 보일 것이다. 

    “눈 앞의 현실을 똑바로 보면 해결책이 나온다”고 한
     니알 퍼거슨의 말처럼 북한의 현실을 바로 보면 반드시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
    2014년의 화두는 ‘북한 절대 빈곤 아니다’가 돼야
     자유통일의 길을 열 수 있다.
     ‘자유통일의 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