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인이 [시대의 걸림돌]인 나라 

    조선 중기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지식인은 시대의 걸림돌이다.

    최성재  

      올빼미는 지혜의 상징이다. 그리스의 아테나는 로마의 미네르바인데, 그 화신이 올빼미다.
     야행성 날짐승 올빼미는 사람과 달리 밤에 잘 본다. 잘 본다는 것은 잘 안다는 것이고,
    밤에도 잘 본다는 것은  세상에  모르는  게  없다는 것으로  유추되었던 것이다.    
    일종의 공감주술(sympathetic magic)에 따른 미신이다. 

    올빼미 소재의 현대 우화가 있다.
    날짐승 길짐승이 평화롭게 사는 숲 사이로 난데없이 고속도로가 생겨서,
     동물들이 그를 사이에 두고 가족 또는 친구와 생이별하게 이른다.
    고속도로 위로 질주하는 저 괴물들을 피해서, 어떻게 하면 예전처럼 무사히 양쪽을 오가며
     가족도 상봉하고 친구도 상봉할 수 있을 거나? 동물들은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다.
     마침내 새 시대를 맞이하여 새 지도자는 모름지기 힘이 아닌 지혜로 뽑아야 한다며,
    세습 지도자 호랑이나 사자가 아니라 100% 투표율에 100% 몰표로
    미네르바 올빼미가 지도자로 선출된다. 

    “나를 따르라!” 

    다음 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미네르바 올빼미는 동물들을 이끌고 고속도로에 들어선다.
    그 순간 올빼미는 술 취한 사람처럼 허둥지둥한다. 동물들도 함께 허둥지둥한다.
    올빼미가 뒤뚱뒤뚱 걸어가다가 기우뚱기우뚱 날자, 길짐승과 날짐승도 따라한다.
    이윽고 길짐승이든 날짐승이든 쌩쌩 달리는 자가용, 트럭, 버스에 부딪치고 치여 몰살한다.
    몰표가 몰살을 이끈다.
    그들은 죽는 순간에도 미네르바 올빼미가 낮에는 장님이나 마찬가지임을 모른다. 

    우리나라 지식인이 시대의 선구자였던 때가 있다.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성리학자들은, 권력과 결탁되어 민중을 착취하던 당시의 지식인
    불교 승려들을 대신하여 새 나라를 세우고 민심을 얻는 데 성공한다.
    산과 강을 경계로 하던 귀족과 승려의 장원경제를 혁파하여 새로운 관료에게 알맞게 나눠주고 50%가 넘던 실질 세율을 10%로 낮춘다. 귀족정치를 관료정치로 바꾸면서
    신분 위주의 사회를 능력 위주의 사회로 일신한다. 

    훈구세력(건국세력)이 새로운 기득권으로 귀족화할 기미가 농후하자,
     지방의 사림(士林)이 들고 일어난다. 여러 번의 사화(士禍)를 겪었지만,
    그들같이 강력한 견제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에 나라는 여전히 건강했다.

    그러나 명종(재위 1545~1567) 무렵부터, 사림이 귀족화된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을 견제할 세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견제 없는 권력은 썩기 마련이다.
    말만 앞선 이들은 나라야 망하든 말든, 백성이야 굶주리든 말든,
    아름다운 말을 내세워 권력 투쟁에 영일이 없다.

    두 차례의 큰 전쟁,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도 성리학자는,
    양반 특히 문반(文班)은 전쟁의 영웅들을 철저히 짓밟고 서서 전혀 뉘우치지 않는다.
     백성들은 그들의 위선과 독선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조직도 없고 돈도 없고 무엇보다 그들의 엉터리 논리에 대항할 지식이 없어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다.
     그러다가 농업시대 5천 년을 끝장내는 신흥 산업화 세력에게
    삐악 소리도 한 번 못 내고 나라를 빼앗긴다. 

      천만다행으로, 미국의 도움을 받되,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적절히 응용한
    지도자가 한국에 등장한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시장경제의 시장도 없고 자유민주의 민주는 더더구나 없는 나라에서, 국가 실정에 맞는 시장을 만들고 국민의 민도에 알맞은 민주를 가꾼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재산권도 최대한 보장하고
     세금도 조선초보다 적게 걷는다. 실질 세율이 10%가 안 되었다.
    가난한 국민의 고혈(膏血)을 짜내지 않고,
    재정의 절반 이상을 해방 후 20년 동안 미국에 의존한다.

    반면에 북한은 소련이 윽박지르는 대로 공산경제와 공산독재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독립이 보장되자마자 거기에 조선시대의 봉건주의와 일제의 군국주의를 섞어서
    유일독재체제를 구축한다.
    김일성은 개인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노동자농민의 공동재산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세금을 50% 이상 강제 징수한다. 

    한국에선 지식인들이 둘로 나뉜다.

    하나는 다짜고짜 미국 수준의 자유민주를 주장하고,
    다른 하나는 노골적으로 북한식 인민민주를 주장한다.
    이 둘은 민주화 세력으로 한데 뭉쳐 줄기차게 반정부 운동을 벌인다.

     6.25동란 후 민주는 자유민주로 수렴된다.
    그러나 이들은 박정희의 경제개발에 노발대발한다.
    국가를 망치고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다고 달달 외운 지식의 틀에 갇혀 진심으로 걱정한다.
    경제개발은 학자가 아니라 조선초의 성리학과 애국심으로 무장한 신진관료처럼,
    시장경제와 과학기술과 애국심으로 무장한 신진관료가 담당한다.
    이따금 참여한 학자는 어용학자로, 나라 걱정을 몽땅 짊어진 듯한 지식인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예상 외로 박정희가 성공하고, 악마 취급하던 전두환도 성공했지만,
    그들은 조금도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
    곧 망한다고, 사상누각이라고, 논문과 책과 강의와 강연으로 비분강개하며
    젊은이들을 호도한다. 젊은이들은 스승의 말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인다. 

      1980년부터는 자유민주가 인민민주에게 접수된다.
    그 다음부터는 정통성과 민주라는 자의적 절대선에 의해 한국의 현대사가 완전히 뒤집어진다.
     처절하게 왜곡된다.
    시대의 걸림돌에서 벗어난 일부 지식인이 최근에야 역사 전쟁을 선언하고 있지만,
    99.99% 민중사관 교과서 채택에서 보듯이 학생들이 세뇌된 지는 이미 한 세대가 흘렀다.

     그렇게 세뇌된 첫 세대가 어느새 40대가 되었다.
     문학도 연극도 영화도 신문도 방송도 서서히 바뀐다.
    90년대 이후엔 이들이 지식인의 입과 귀가 되어 도끼눈을 치켜뜨고 친북좌파의 주먹을 휘두른다. 새 천년에 접어들자, 시장경제와 자유민주를 한국의 실정에 맞게, 민도의 눈높이에 맞게
    새로 만들고 키운 20세기 후반기 세계 최대의 기적을 낳은 지도자들은 개새끼가 되고,
     20세기 후반기 세계 최대의 지옥을 만든 김일성 1세, 2세, 3세는 최고존엄으로 올라선다. 

    가방 끈이 짧은 국민들은 남이나 북이나 건국 후 5년도 안 되어,
    특히 6.25 동란을 계기로 더 이상 지식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국경만 열리면 한 달 이내에 2천만이 발로 투표한다는 것을 독재자가 더 잘 알므로,
    인간지옥의 문은 절대 열지 않는다. 거기서는 지식인이 아예 앵무새가 되었다.

    한말 양반의 기개도 거기선 절대 구경할 수 없다. 바로 죽여 버리니까!
    한국의 자유는 시대착오적인 지식인에 의해 엽기적으로 오용되고 악용된다.
    옛날에는 삼강오륜을 들먹이며, 오늘날은 민주와 평등, 자주와 민족을 울부짖으며,
    민초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몰고 간다.

     그러나 대체로 한국의 고졸 이하 출신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본능적으로 안다.
    누가 개새끼이고 누가 수줍어하는 최고존엄인지 본능적으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