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배우보다는 좋은 사람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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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내가 언제 카이스트 박사 역할을 해보겠어요?(웃음)

       - 정재영


    "개그맨보다 더 재밌고 유쾌한 배우"
    아마도 그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뷰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좋은 배우]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이미 이뤄진 것처럼 보였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미래를 보고 온 사람들의 이야기 <열한시>.
    정작 그는 미래를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현재에 충실하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실천하기 힘든 삶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10년 뒤엔 지금 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배우 정재영.

    그가 전하는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 근황, 체력은 어떤지?

    영화 <역린> 촬영 중이다.
    얼마 전에 <플랜맨> 촬영이 끝났다.
    지금은 <열한시> 홍보중이다. 


    - 완성된 영화를 본 느낌?

    기자 시사 때 봤는데
    촬영을 시작한지 1년 반 정도가 지났더라.
    어떻게 편집이 됐는지 기억도 안 났다. (웃음)
    계획보다 CG가 많아져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걱정 했던 것 보다 무난하게 나온 것 같다.
    하지만 CG의 완성도에 대해서
    그렇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러닝타임이 짧다보니 지루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연기를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처음 보는 관객처럼 영화를 보지는 않았다. 
    촬영 때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주로 봤다. 
    그런 것들이 신선하기도 했다.

     

  •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 본인의 장면을 보는 게 민망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번에도 그랬는지?

    그렇다. 혼자 보면 덜 민망할 텐데 같이 보니까 (민망하다)
    개봉하고 나서 일반 극장에 가서 내 영화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웃음)
    연극 같은 경우는 그런 걱정이 없다.
    내가 내 연기를 보지는 않지 않나.
    TV에서 지난 영화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 채널을 바로 돌린다. (웃음)


    - 연극을 한지 꽤 오래 된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한 것이 2004년 쯤 일거다.
    기회가 되면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섭외도 안 들어오고... (웃음)


    - <열한시>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당연히 시나리오와 감독님이다.
    예를 들어 "미술감독이 좋아서 하게 됐어요" 이럴 수 없지 않은가. (웃음)
    (시나리오가) 새로웠고 신선했다.
    이런 장르의 영화가 내 기억에는 거의 없어 좋았다.
    또 감독님의 전작들도 재미있게 봤었다.

     

  •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 감독님이 지금까지 찍은 영화가 이번 영화 장르와 많이 다르다. 걱정이 되지 않았나?

    원래 수학 잘하는 사람이 영어도 잘 한다. (웃음)
    이 작품은 유일하게 감독님이 원안을 쓰지 않은 작품이다.
    만약 감독님이 이런 장르의 글을 썼다고 한다면
    걱정이 됐을 수도 있다.


    - 캐릭터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은 있는지?

    전혀 없다. (웃음)
    헤어 준비했다. 파마 했다.
    박사들은 머리가 곱슬인 사람이 많더라.
    직모인 사람은 별로 없었다. (웃음)
    감독님이 아인슈타인의 <시간으로의 여행>이라는 책을
    선물로 주기는 했다.
    한 20 페이지 읽고 안 읽었다. (웃음)


    - 흥행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항상 있다.
    하지만 잘된다 하더라도 내 능력이라기보다
    감독님이나 스탭들의 도움이 있어
    잘 된 것이라 생각한다.

     

  •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 직업배우? 아티스트?

    아티스트는 누구나 열망하는 것이다.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넘어 섰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미용하시는 분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가위질이라든지
    이런 것이 가능하다면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직업이 되는 거라 생각한다.
    어떤 것 이상의 평가를 받았을 때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누구나 다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한다.
    나 역시 되고 싶다. 


    - 배우가 된 계기는?

    처음에는 신방과 이런 곳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성적도 안 되고...(웃음)
    기자, PD같이 자유스러운 직업을 갖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방송부였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방송제 할 때 드라마도 썼었다.
    막연하게나마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것을 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미술이나 음악에는 재능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연극영화과를 가게 됐다.
    특별한 사람만 가는 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끼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랬는데 어쩌다 보니 가게 됐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는 것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이거야 말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때는 너무 좋았다.
    길을 잃고 헤매다 찾은 느낌이었다.
    미쳤었다.
    집에도 안 들어갔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같다. 

  •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 맡은 캐릭터가 고집스런 인물이다. 실제 정재영은?

    캐릭터처럼 그런 것은 없다.
    우유부단 하고 귀도 얇다. (웃음)
    보통 사람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우석은 보통사람은 아니다.
    만약 나였으면 다른 사람을 구하기보다
    내가 먼저 살기 위해 도망쳤을 것 같다. (웃음)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사실 특별한 사람들이다. 


    - 캐릭터가 기능적이다. 플롯이 주가 된 영화 같은데?

    맞다. 이 영화는 캐릭터 영화가 아니다.
    상황과 사건에 의해 캐릭터가 변하거나 만들어지는 것이다.
    영화에서 매번 캐릭터가 부각될 필요는 없다.
    그런 작품만 나와도 관객이나 배우에게
    지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양성이 배우나 관객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 영화 <우리선희>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갑자기 홍상수 감독님께 연락이 왔다.
    개인적으로 유준상과 친한데
    감독님께서 준상을 통해서 내 연락처를 알게 돼
    연락이 왔던 것 같다.
    그렇게 인연이 돼서 하게 됐다. 

     

  •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 결말이나 주제에 대한 생각은?

    김옥빈의 대사를 보면 바뀔 수 있을까?이다. 즉, 의문형이다.
    "바꿨네" 가 아니라.
    열린 결말이라고 본다.
    미래는 당연히 바꿀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바뀐 미래도 정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두 가지 다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볼 수 없으니까.
    바뀐 건지 아닌 건지 어떻게 알 수 있겠나.
    그러니까 결론은 굳이 앞으로 가서
    우리의 미래를 확인해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 계획을 세워놓고 일을 하는 편인가?

    아니다. 그때 그때 들어오는 시나리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한다.
    모든 것은 조그만 것이 쌓여서 큰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열한시>도 그 때 들어온 시나리오 중에서
    가장 신선했던 시나리오였다.
    연기도 그렇다.
    안 해본 연기를 해보고 싶은 것은 있다.
    하지만 마땅히 새로운 것이 없다면
    해 봤던 것도 할 수 있다.
    기자들도 그렇지 않은가.
    어떤 배우랑 인터뷰 하고 싶다 하다가도
    안 되면 나랑 하는 거다. (웃음)
    모든 게 그렇다. (웃음)

  •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 예전 인터뷰에서 좋은 배우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 했던 거다. (웃음)
    인생관이나 신념 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는 게 좋다는 의미다.
    나쁜 사람인데 좋은 배우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사람이 나쁜 사람인데 좋은 배우면 조금 이상하지 않나? 화나지 않나?
    그런 의미다.
    일단 좋은 사람이어야지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바꿔 말하면 좋은 배우가 되고 싶으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먼저라는 의미다.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어떤 것을 이루게 된다면 말로가 안 좋다.
    이 영화 주인공처럼.


    - 최다니엘이 자신의 연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고 했다.
     정재영씨가 생각하는 좋은 영향이란 어떤 것인가?

    어? 그거 내가 했던 말인데 따라 했나보네. (웃음)
    희망적인 영향이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공감을 하고 반성을 하게 되면 좋겠다.
    소위 말하는 좋은 영향이었으면 좋겠다.
    우리 영화를 보면서 아 미래를 볼 필요가 없겠구나, 하는 정도랄까.
    현재에 충실해야겠다,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도덕적인 도구로서의 기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 정재영  ⓒ 이미화 기자

     

    - 십 년 뒤 어떤 배우가 됐으면 좋겠나?  

    사실 나도 궁금하긴 하다.
    답이 안 나와 생각을 안 하긴 하는데.
    배우를 그때까지 하고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다른 것을 하고 싶기도 하고.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 배우라서 행복한가?

    당연하다. 재밌고 대우받고 여러 가지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언제 깡패, 물리학자, 형사 이런 것을 해보겠나.
    타인의 삶을 엿 보는 게 정말 흥미로운 일인 것 같다.
    그것은 배우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지 않나.  


      [ 사진= 이미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