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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 길이 아닌 곳으로

    가려는 것입니까?


  •  MBC일일 드라마 <구암 허준> 25일자 방송에서는 불치병을 고치고 나서 기로에 선 허준의 갈등이 그려지고 있다.

    불치병에서 일어난 정경마님도 울고, 생명을 걸고 그를 치료한 허준도 마주보며 눈물을 흘린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죽어가던 몸이 봄의 싹처럼 돋아나니 생명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느끼게 한다.

    우상대감은 허준에게 집 한 채를 지어주겠다고 하지만 허준은 정중히 거절한다.

    누추하나마 살 집은 있습니다.
    소인의 재주가 아니라 스승님 가르침 때문이니 스승님께 드리십시오.”

    그 동안 만난 의원들은 대부분 작은 공을 크게 부풀리는 데 의원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다는 허준을 남다르게 보고 우상대감은 어떡하든지 보상을 하려고 한다. 허준보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내의원 과에 응시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자네가 뜻만 세운다면 입교하도록 소개장을 써 주겠네.”

    흔쾌히 대답하며 뜻을 결정하면 떠나기 전에 자기 방으로 다시 오라는 우상대감.
    허준은 방으로 돌아와 잠시 갈등을 한다.

       ‘나쁜 일도 아니지 않은가?
       미천한 신분을 벗어나는 길은 내의원에 들어가는 것뿐이야.’


  • 꺼림직하면서도 스스로 합리화하여 소개장을 받아가지고 산음으로 돌아온다.
    한 밤중에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정한수를 떠 놓고 빌고 있다.
    허준은 목이 메어 그 즉시 땅바닥에 엎드려 절한다.

    소자 정경마님을 고치고 왔습니다.”

    우상대감 댁에서 감사표시로 준 비단들과 특별히 아내 다희한테 준 것을 아내보고 풀어보라고 한다.

    다음에 보겠습니다.”

    허준의 재촉에 보자기를 풀어보는 다희! 보석함에 보석이 가득하다. 하지만 큰 성공을 거두고 재물까지 가져왔는데도 아내는 별로 기뻐하는 기색이 없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나를 믿으시오! 한양에 가서 보란 듯이 살 것이오.”

    밤새 다른 생각으로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두 사람!

    서방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서찰을 포기하면 안 되겠습니까?
    이미 실력이 인정되었는데 자신을 밀어 놓고 어찌 남을 의지하여 되려는 것입니까?”   
    “과거가 자신만 가지고 되는 줄 아시오? 매년 있는 줄 아시오? 한 번 떨어지면 2년 3년 기약도 없는 줄 모르시오? 이 기회를 잡을 것이오.”

    허준은 얼굴을 붉히며 아내에게 화를 낸다.

    서방님 답지 않습니다. 어찌 길이 아닌 곳으로 가려는 것입니까!”
    “내 목숨을 버릴지언정 이 서찰을 버릴 수 없소.”

    시어머니도 며느리에게 천신만고 끝에 얻어 온 소개장을 포기하려는 해괴한 소리를 하면서 남편의 앞길을 막는다고 야단을 친다.


  • 다희는 모든 미덕을 갖춘 드문 여인이다. 양반의 특권을 다 버리고 사람의 심지 하나 보고 평생 지아비로 아무것도 없는 허준을 택했다. 천민으로 살지만 조금도 비굴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불의에 대해 당당하게 맞서고 어떤 어려움도 꿋꿋하게 이겨나간다. 남편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며 지지해준다. 의원이 되는 일에만 전념하도록 늘 신경을 쓴다.

    정경마님을 고치러 갔을 때도 갈아 입을 옷만 건네주고 돌아온다. 이 먼 길을 왔는데 형님을 보고 가야지 않겠냐는 양태의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병자를 돌보시는 데 허튼 데 신경을 쓰시면 안 됩니다.
    틈 봐서 먼 발치서 보겠습니다.”

    여인으로서 남편에 대한 지극한 연모를 품으면서도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아무 때나 두서없이 섣부르게 쏟아내지 않는다.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헌신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며 흔들리지 않는 다희이다. 그러면서도 사람으로서 옳고 그른 도리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로운 여인이다.

    허준은 처음 맛 보는 큰 성공 앞에서 기고만장하여 분별력을 잃어버렸다. 쉬운 길을 택하여 그냥 밥벌이에 지나지 않는 의원이 될 것인가, 아니면 어리석어 보이고 힘들지만 차근차근히 쌓아나가서 훌륭한 심의가 되는 길을 택한 것인가? 두 갈래 길에 서 있다. 총명한 아내는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조용히 간청한다.

    어찌 길이 아닌 곳으로 가려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