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주식을 정치에 이용한 한 사람과 기업가 정신을 지킨 사람
  • 두 사람이 있다.
    한사람은 59년생, 또 한사람은 62년생, 3살 차이.

    두 사람 모두 ‘벤처신화’ 주인공이다.
    한 사람은 중소기업청장에 내정됐다가 사의를 표명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
    그리고 또 한 사람은 강력한 대선 후보였다가 4월 국회의원 재보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전 교수(안철수연구소 전 이사장).

    업종도 다르고 회사의 성장 과정도 달랐지만, 아무튼 우리 사회는 두 사람 모두 ‘성공한 기업인’으로 평가한다.

     

  • ▲ 황철주 중기청장 내정자와 안철수 전 교수 ⓒ 자료사진
    ▲ 황철주 중기청장 내정자와 안철수 전 교수 ⓒ 자료사진

    하지만 두 사람은 현재 꽤나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한 사람은 차기 대권후보로 모두의 ‘추앙(?)’ 속에 정치권의 ‘삼성’이라는 별호까지 휘두르며 거칠 것 없는 행보를 하고 있다.

    또 한 사람은 새 정부 경제민주화의 핵심 중소기업청장의 ‘장관급’ 권력까지 쥐었다가 결국 이를 포기하고 평생 일군 한 기업의 대표로 돌아갔다.

    정치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두 기업인이 자신이 평생 일군 회사와 여기에 투자한 ‘소중한 투자자’들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이른바 '기업가 정신'

    땀 흘려 번 몇 백만원을 투자하는 소액투자자(개미)는 이 두 사람에게 사뭇 다른 추억을 가지고 있다.

     

    # 2011년 상반기.

    황철주 중기청장 내정자의 ‘주성엔지니어링’과 안철수 전 교수의 ‘안랩’은 2만원에 조금 못 미치는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해 10월 서울시장 재보선을 앞두고 안 전 교수가 정치 행보를 시작하면서 안랩의 주가는 폭등하기 시작한다.
    1만원대 주가가 무려 16만원을 넘었고 최대 지분을 가진 안 전 교수는 벼락부자가 됐다.

    벼락부자가 된 안 전 교수는 이 돈을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데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자신의 지분의 절반 총 186만주를 기부한다는 뜻을 자랑스럽게 발표한다.

    발표 당시 주가(13만900원)로 계산하면 2,500억원에 달하는 돈이었지만, 그건 주가 기준일 뿐 실제 매각했을 때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실제로 매각 과정에서 주가가 폭락하면서 실제 기부한 돈은 86만주 약 930억원에 불과했다.
    게다가 안 전 교수의 주식을 분할해 장내매도하면서 주가는 연일 하한가를 거듭했다.
    그나마 나머지 100만주는 주식 기부와 신탁 형태로 이뤄졌다.


  • ▲ 안철수연구소(안랩)의 주가 주봉 차트 ⓒ 네이버 증권
    ▲ 안철수연구소(안랩)의 주가 주봉 차트 ⓒ 네이버 증권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나온 발표는 대중들에게는 2,500억원 이상의 효과를 냈고 이후 그는 ‘야권의 확실한 대권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모든 언론과 국민의 시선은 안 전 교수에게 쏠렸고, 야당의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마저 쥐락펴락하는 위치에 오른다.

    문제는 끝내 대선 후보 사퇴로 결론지어진 그 사건의 결과로 16만원을 넘었던 안랩의 주가가 3만원대까지 주저앉았다는 점이다.

    주가가 1/5 토막 난 셈이다.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최고 시세였던 1조6,012억원에서 3,000억원대로 감소하면서 1조2천억원 이상이 공중에서 먼지로 분해됐다.

    덕분에 안 전 교수만 믿고 투자했던 소액투자자(개미)들은 폭락하는 주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증권가는 이 손실의 대부분을 개미 투자자들이 떠안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동안 주식시장에는 ‘안철수 때문에 한강 간다’는 곡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 ▲ 안철수연구소(안랩)의 주가 주봉 차트 ⓒ 네이버 증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전 교수는 여전히 회사를 손에 쥐고 있다.

    지분 매각 과정을 거치며 안 전 교수의 안랩 지분율은 37.15%에서 18.57%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최대 주주로 주주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사실상 안 전 교수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안철수재단(동그라미재단) 지분율 9.98% 등을 합치면 그는 안랩의 실질적 주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

     

    반면 18일 중소기업청장직을 사퇴한 황철주 내정자.

    그는 자신의 회사 지분에 대해 안 전 교수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여줬다.

    그가 장관급 권력을 반려하면서 내놓은 해명은 이랬다.

     

    “청장직을 수락할 경우 소유 주식을 전량 처분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소액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중기청장은 차관급으로 4급 이상 공무원의 경우, 본인 및 이해관계자 보유주식이 3,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보유지식을 모두 매각하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 해야 하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야 한다.

    일각에선 황 내정자가 중기청장의 자리보다 경영권을 더 소중하게 여긴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대형 지분이 일시에 매도될 경우 일어날 개미들의 피해가 먼저였다.

    코스닥 상장업체의 지분을 가진 이사들의 경우 주가 기준으로 산정하면 수백·수천억원대 재벌이 되지만, 실제로는 주식 현금화 과정에서 최소한 반토막 이상 나는게 기본이다.

    때문에 주성엔지니어링의 자신 지분 25.45%와 부인 김재란씨 1.78%를 합쳐 740억원이 넘는 주식을 공직 임용과 함께 자연스럽게 매도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황 내정자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회사를 노리는 M&A 세력들의 견제를 겪으며 경영난에 빠진 회사에서 소위 ‘손’을 털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 ▲ 주성엔지니어링의 주가 주봉 차트 ⓒ 네이버 증권
    ▲ 주성엔지니어링의 주가 주봉 차트 ⓒ 네이버 증권

    하지만 이럴 경우 황 내정자의 중기청장 진출과 함께 주성엔지니어링은 제2의 안랩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가 우려한 것도 이 점이었다.

    갑자기 지분을 전량 매각할 경우 주가 급락으로 개인투자자들이 손실로 이어지고 연이어 회사를 노리는 M&A 세력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 만약 황철주가 안철수 같았다면?

    벤처업계에서는 황 내정자의 사퇴를 상당히 ‘의외의 사건’으로 보고 있다.
    회사 경영권을 내놓고 중기청장 자리를 차지하는 게 당연하다는 시선이다.
    물론 자신의 지분 700억원을 고스란히 현금화 하면서도 말이다.

    가장 큰 이유가 17일 국회가 정부조직법을 합의하면서 함께 통과시킨 중기청의 위상 강화 법안이다.

    여야 합의 내용에 따르면, 앞으로 중기청장은 매주 국무회의에도 참석할 수 있고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점해오던 불공정거래행위 기업 고발권도 갖게 된다.

    국무회의 참석은 의결권은 없는 단순한 배석이긴 하지만, 참석만으로도 중기청의 위상이 크게 강화되는 것은 물론이다.
    ‘불공정거래행위 기업 고발권’은 민간기업에 대한 ‘지도권’까지 가져오게 돼 일각에서는 ‘장관급’ 권한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게다가 반도체와 LED사업을 하는 주성엔지니어링 업종 특성상 거대 자본의 경영권 침략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도, 황 내정자가 ‘손을 털 것’이라고 점칠 수 있었던 부분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2010년 489억원 흑자 이후 계속 단기 적자를 내고 있는 업체기 때문에 회사 경영상황도 그리 좋지 않았기에 그렇 것”이라고 예상했다.

    증권가에서는 ‘만약 안철수였다면 100% 팔았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18일 <뉴데일리>와 만난 한 벤처기업가의 말이다.

     

    “황 대표의 사의 표명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업체 사정을 뻔히 아는데 요즘 세상에도 소액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난의 경영을 계속하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나 역시도 그랬던 것처럼 문제는 그런 확고한 기업가 마인드가 이제는 순진한 생각으로 치부되는 것이 안타깝다.
    자신의 주식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황 대표 같은 자기 회사와 투자자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풍조가 아쉬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