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멸망 막으려는
    언론(言論)의 눈물 나는 노력들


    중국의 선전을 아무런 해설도 없이 일방적으로 실어놓고,
    김정은 정권 붕괴에 대한 大衆(대중)의 두려움만 키우는 제목을 뽑았다.

    金成昱   

     

  • 1.
    독일 통일 직전 西獨(서독)도 그랬다.
    언론(言論)과 지식인들은 東獨(동독) 붕괴는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고 우겼다.

    책상물림들의 허망한 예측 속에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 무너져 내렸고 1년 뒤 하나의 독일이 만들어졌다.
     
    한국도 그렇다.
    보수를 대변해 온 <조선일보>마저 김정은 체제를 지키기 위한 대남(對南)심리전을 벌이는 듯하다.
    31일 이 매체는 전 날 있었던 ‘한반도의 미래 국제회의’ 기사 제목 중 하나로 “北 갑작스러운 붕괴 땐… 보유 핵·미사일은 동북아 ‘화약고’”를 뽑았다.
    중제는 “한·중 협력해 북 급변사태 막아야”였다.
     
    기사 내용을 보면 제목과 사뭇 다르다.
    본문에 나오듯,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이 커졌으니 “한국은 물론 미·중·일·러 등 주변 강국이 본격적으로 대비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목과 중제는 급변사태 대비를 말하는 게 아니라 급변사태는 있을 수 없다는 식이다.
     
    기사에 따르면, 버웰 벨 前주한미군 사령관은 “한·미 양국이 북한의 붕괴에 대비해 준비 태세를 유지해 전면적 억지력을 갖춰야 할 것”이므로 “군사적 역량을 먼저 고려해 한·미 모두 군 예산을 삭감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석우 전 통일부 차관은 “3대 권력 세습은 개혁 개방의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북한의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북한이 붕괴하지 않도록 막은 것은 한국의 從北(종북)주의자와 중국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국 공산당 御用(어용)학자들이 “북한 급변사태 시 주변국가 개입은 내정간섭”이라고 선동했다.
    일고의 가치가 없는 통상적인 궤변이다.

    그러나 <조선>은 중국의 선전을 아무런 해설도 없이 일방적으로 실어놓고, 김정은 정권 붕괴에 대한 大衆(대중)의 두려움만 키우는 제목을 뽑았다.
     
    2.
    반(反)통일적 행태는 우연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12월18일 “북한급변사태는 없다”는 제목으로 특집기사를 냈다.
    이 매체는 “김정은 체제의 갑작스러운 붕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고 단정했지만, 특별한 근거를 대지는 못했다.
    다만 햇볕론자인 양무진 교수를 인용, “군에 대해선 2중·3중의 감시·견제가 이뤄지고 체제에 저항할 지도자가 나타나기도 어렵다”며 체제붕괴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대선 하루 전 나온 이 기사는 대통령이 누가 되건 북한정권을 살려내 한반도 분단의 現狀(현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黙言(묵언)의 지시처럼 느껴졌다.
      
    <조선일보>는 1월1일 북한 신년사설이 나오자 “주한미군철수와 연방제통일도 빠진 가장 穩健(온건)한 내용”으로 격찬하며 같은 사설에 나오는 “6.15와 10.4선언 철저 리행” “외세 지배 배제한 자주적 통일” “무자비한 격멸소탕과 조국통일대전 승리” “主體革命(주체혁명) 위업완성” 등 북한의 전형적 적화선동이 갖는 함의를 빼버렸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적화통일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주장인데 “온건한 내용”으로 제목을 뽑았다.
      
    1월2일에는 특파원칼럼을 통해 북한과 대화할 것을 주문했다.
    <조선일보>의 이 칼럼은 “최근 미 외교가에서는 이란 문제를 담당했던 전직 고위 관리들이 백악관에 ‘이란 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채찍’ 일변도로 가지 말고 ‘당근’을 쓰라‘’고 조언했다”며 “이란과 북한 문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조만간 북한에 대해서도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예단했다.

    <조선일보>의 일련의 기사를 정리하면 이러하다.

    첫째, 북한정권은 망하지 않는다.
    둘째, 북한정권은 ‘좋은 쪽으로’ 변하고 있다.
    셋째, 북한정권과 대화하고 지원해야 한다. 여기 한 걸음 더 나가 북한과 대립해 反共(반공)을 말하는 보수는 극우라는 뉴라이트적 인식이 깔려 있다.
     
    3.
    역사의 전진을 막으려는 언론(言論)과 지식인들의 탐욕과 교만은 놀랄 일은 아니다.
    브란트 前서독 수상은 1984년 “통일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아무 실효가 없으므로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1989년 10월25일 <시사저널> 초청으로 방한한 브란트는 “독일의 통일과 구라파의 통합이 매우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지만 “독일의 통일은 유럽의 통합이 이뤄진 다음에야 기대할 수 있다”는 요지로 말했다.

    그가 독일 통일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 불과 2주일 뒤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독일 통일 주역인 기민당의 콜 수상 역시 다르지 않았다.
    1988년 10월 콜 수상은 모스크바를 방문,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만났다.
    그 후 한 기자가 ‘언젠가는 고르바초프가 독일에 통일을 제의하지 않겠는가’라고 묻자 콜은 비꼬는 투로 이렇게 답했다.

    “나는 (영국인 소설가) 웰즈처럼 미래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당신의 질문은 판타지의 영역에 속한다”


    콜 수상의 경직된 시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1989년 8월15일에도 “나와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은 지금 유지하는 우호 정책을 계속하기로 하였다”고 기자들에게 발표했다.
      
    白面書生(백면서생)들도 거기서 거기다.
    동독을 탈출한 사람들이 유럽의 서독 대사관에 들어가 농성 중이던 1989년 여름, 서독 지식인들은 ‘이젠 공식적으로 동서독 통일의 포기를 선언해야 될 때가 온 것이 아닌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주간지 ‘슈피겔’은 카버 스토리로 “왜 정부가 서독(西獨) 대사관을 찾는 동독(東獨) 사람들을 받아주느냐”고 따졌다.
      
    독일 통일 과정을 보면, 북한이 영원할 것처럼 떠들며 과장하는 한국의 정치인, 언론의 반(反)통일적 작태에 실망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기득권에 빠지면 대부분 인간은 이대로 있고 싶은 법이다.
    욕심이 눈을 가려 하루를 살 뿐 未來(미래)를 보거나 天時(천시)를 듣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는 흐른다. 오늘 하루를 지나면 통일은 하루 더 가까이 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