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마다, 대선 때마다

    등장하는 ‘광주영화‘ ’5.18 영화‘

    -20077년 영화 ‘화려한 휴가’‧2012년 영화 ‘26년’-

    오 윤 환


    ‘영화’에 시비 걸 생각은 조금도 없다.
    영화는 ‘감각적인 비주얼’일 뿐이라 생각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주제가 ‘광주’ ‘5.18’이라면 사정이 좀 다르다.
    특히 ‘광주영화‘ ’5.18 영화‘가 5년을 주기로, 그 것도 대선을 코 앞에 두고 제작돼 상영된다면 뭔가 의도성이 읽히기 때문이다. ’광주‘와 ’5.18‘이 ’대선기획용‘으로 전용된다는 느낌이 그것이다.

    5년 전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제작된 ’화려한 휴가‘가 그랬고, 27일 광주에서 시사회를 가진 영화 ’26년‘이 그렇다.

  • 27일 광주 시내 한 극장에서 시사회를 가진 영화 <26년>(감독 조근현)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유족들이 한 전직 대통령(전두환)에게 복수하러 나서는 내용이다.

    ‘5·18’ 때 아버지·어머니·누나를 각각 잃은 건달 ‘곽진배’(진구)· 국가대표 사격선수 ‘심미진’(한혜진)·경찰관 ‘권정혁’(임슬옹)이, 계엄군을 했다는 죄책감으로 살아온 ‘김갑세’(이경영)와 그의 양아들인 ‘김주안’(배수빈)의 주도로 모여 유혈진압 책임자를 처단하는 것이다.

    5.18 당시 군인들의 총에 맞아 창자까지 쏟아내는 여학생의 죽음같은 당시의 장면은 애니메이션으로 처리됐고, 이 장면들은 유족들에게 직접 단죄에 나서는 동기를 부여한다. 영화는 5.18 희생자 자녀가 국가대표 사격선수로 성장해 고공 크레인에 올라 유혈진압 책임자에게 총구를 겨누며 눈물을 흘릴 때, “얼른 (방아쇠) 당겨!” “쏴!”라는 할머니의 절규로 절정에 이른다.

  • 5년전.
    1997년 제 17대 대선을 앞둔 7월 영화 ‘화려한 휴가‘가 ’화려하게 개봉됐다.

    이 영화 제작발표회도 광주의 한 영화관에서 열렸다. 80년 5월 18일부터 10일 동안의 ‘광주’를 그린 영화다. 광주 택시기사 민우, 동생 진우. 진우와 같은 성당에 다니는 간호사 신애, 퇴역장교 흥수는 가까운 이들이 진압군에게 죽임을 당하자 시민군을 결성해 열흘간의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화려한 휴가가 개봉되자 김대중 전 대통령, 정동영 민주당 대선후보 등 야권 정치인들이 앞다퉈 관람하고 찬양했다.

    민주당 어느 의원은 “화려한 휴가에 관객이 1000만명만 들면 이번 대선은 끝날 것”이라고 화려한 휴가에 ‘화려한’ 기대를 부여했다.

    그들의 희망대로 700만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봤다.

    그러나 몇 달 후 대선에서 민주당 정동영 후보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530만표 차이로 참패했다.

    ‘화려한 휴가’는 ‘친노’ 핵심이자 현 민주당 의원인 유인태의 친동생 유인택이 제작했다.
    제작비가 무려 100억원이다. 제작비 100억원은 왠만한 흥행력으로는 불가능한 규모다.

    유인택은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일도 없다.
    어쨌든 ‘화려한 휴가‘는 제작자 의도대로 관객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영화’ 자체로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광주영화’ ‘5.18 영화’에서 ‘호남사투리‘가 깡그리 외면당한 것이다. 열흘간 오로지 ’광주’에서 벌어진 사건인 데 주인공들 입에서는 서울 표준말이 줄줄 흘러 나왔다. 계엄군이나 시민군의 입에서 나온 똑같은 억양의 표준말은 영화를 그저 그렇고 그런 ‘픽션’처럼 전락시켰다. ‘광주’라는 설정을 빼면 그저 잔혹과 총격이 난무하는 ‘무력환타지’로 만들고 만 것이다.

    제작자와 감독(김지훈)은 “대중성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주인공이 호남사투리를 쓰면, 타지역 사람들이 거북스러워하니, 표준말로 바꿨다는 말이다. ‘광주’를 위한, ‘광주’에 헌정한 영화라면서 호남사투리를 외면함으로써 호남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영화가 화려한 휴가다.

    광주정신을 기리고 승화하기보다 ‘1,000만명 관객’이 목표였다는 자복이기도 하다.
    잔혹한 조폭영화 ‘친구’가 진한 부산 사투리를 배경으로 한 것과 비교하면 입맛이 쓰다.

    지난 16일 서울광장에서는 영화 ‘26년’ 콘서트가 2시간 30분동안 열렸다.
    영화사상 상영을 앞둔 영화가 서울광장에서 사실상의 시사회를 가진 것은 ‘26년’이 처음이다.

    그날 서울광장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날씨도 추웠다.
    관객은 수백명이 모였다.

    영화 ‘26년’이 올 대선을 염두에 둔 대선기획용이라고 한다면 제작진은 서운할지 모른다. ‘26년’은 지난 2008년 제작을 시도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을 한달 앞두고 ‘광주영화 ’5.18 영화‘를 서울광장으로 들고 나옴으로써 대선기획용 영화라는 손가락질을 자초한 것만은 분명하다.

    왜 ’광주‘ ’5.18‘ 영화는 5년마다, 대선을 앞두고 제작돼 상영돼야만 할까?

    전두환 군부가 호남인들을 “잔인하게 쏘아 죽였다“는 것은 완성된 역사다. 5,18은 민주화운동으로 승화됐고, 희생자들이 묻힌 곳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희생자와 부상자, 유족들에게는 부족하나마 보상이 주어졌다.

    이제 ‘5,18’과 ‘광주‘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할 때다. 전두환 군부가 호남인들을 “잔인하게 쏘아 죽였다“는 외침과 인식의 반복은 당사자들에게도 ’힐링‘이 될 수 없다. 전두환 일당에게 보복하는 ’복수극‘으로는 오직 카타르시스 효과밖에 없다. 그 카타르시스를 위해 ’호남사투리‘까지 숨겨야 한다면 그건 더한 ’5.18 스트레스‘다. ’군인들의 총에 맞아 창자까지 쏟아내는’ 여학생의 죽음은 ‘분노’와 ‘복수심’만 키우지 않겟는가?

    대선을 앞두고 ‘26년’ 뿐만 아니라 영화 ‘남영동’도 상영되고 있다.
    고 김근태 의원이 군사정권으로부터 고문당한 장소를 상징한 영화다. ‘남영동’ 감독 정지영은 기자간담회에서 “이 영화가 대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역시 ‘대선기획용’이라는 얘기다.

    며칠 후 오마이뉴스는 “영화 ‘26년’과 ‘남영동’을 개봉 첫 주 꼭 봐야하는 이유”라는 기사에서 “개봉 첫주에 관객이 몰리지 않으면 영화를 스크린에서 내려야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26년’과 ‘남영동’은 좌파 영화판과 친야 언론의 합작품이다.

    ‘5,18’과 ‘광주’에 ‘용서’와 ‘화해’를 주문하는 것은 지나칠 것이다.
    ‘26년’ 처럼 전두환 세력을 쏘아 죽이고 싶을 정도의 복수심에 부르르 떠는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그걸 강요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극복’과 ‘초월’을 통해 ‘5.18’과 ‘광주’는 ‘광주’ ‘호남’을 너머 더 승화되고, 확산된다고 믿어진다. ‘광주’와 ‘5.18’에 대한 전국민의 폭넓은 이해와 공감만이 그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방식은 ‘호남사투리’를 무시한 ‘5.18 영화’나 전직대통령을 쏘아 죽이는 ‘판타지’는 아니지 않나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