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궐기를 앞둔 地下黨 세력들 
      
     ‘從北연대 세력 정권 장악은 대한민국의 국가운영 기조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
    金成昱   
     

  •  從北세력은 왜 이렇게 커버린 것일까? 이들의 뿌리는 6·25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 이후 살아남은 남로당·빨치산 잔당의 활로 모색과 북한의 집요한 對南공작이 맞물려 탄생한 것이 從北이다. 여기에 80년대 386주사파가 등장한 뒤 從北세력은 질적·양적으로 성장했고 이들은 사회 각 영역에 ‘投身(투신)’해 역량을 키웠다. ‘통진당 현상’은 길게 보면 건국 이후 60년, 짧게 보면 87년 민주화 이후 30여 년 從北세력 투쟁의 결과다.
     
     6·25 이후 남한 조선로동당(남로당)은 와해됐지만 그 잔존 세력은 인혁당·통혁당·남민전·민혁당 등 북한 조선노동당(북로당)의 지도성을 인정하는 ‘지하당’ 건설을 꾸준히 벌였다. 공안당국의 적발로 그때그때 조직이 와해되고, 핵심 지도부는 사형과 장기 수형으로 단절을 격지만 이념적·역사적 맥은 이어졌다.
     
     지하당 지도부 중 생존자들은 범민련, 한국진보연대, 6.15공동선언 실천연대 등 소위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등 야당의 지도적 위치에서 親北·反美·反韓·反정부·反시장·反기업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2012년 현재, 이들 남로당·인혁당·통혁당·남민전·민혁당 출신 및 후예들은 386주사파 그룹(反美청년회, 전대협 출신 등)과 함께 거대한 從北세력을 이뤄 합법적 권력 쟁취(소위 민주연립정부 수립)를 꾀하고 있다.
     
     <“인혁당, 4.19 후 첫 자생적 공산주의 혁명운동조직”>
     
     6·25때 남한에서 패퇴된 남로당 세력의 첫 번째 공식적 재건은 64년 검거된 인민혁명당(인혁당)이다. 인혁당은 南派간첩 김영춘에 포섭된 도예종·이재문, ‘빨치산’ 출신 박현채 등이 조선노동당 강령을 토대로 작성한 정강에 기초해 62년 1월 결성한 지하당이다. 인혁당은 북한의 지령에 따라 간첩활동을 하다 64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검거됐다.
     
     도예종·이재문은 이 사건으로 각각 징역4년과 징역1년을 선고받았다. 도예종은 73년 인혁당 재건을 꾀하다 결국 사형 당했고, 이재문은 79년 남민전 사건으로 사형이 확정된 후 81년 10월 서대문 구치소에서 병사한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75)는 최근 펴낸 저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미래’를 통해 64년 인혁당 사건을 “4·19 후 첫 자생적 공산주의 혁명운동조직이었다”고 증언한다. 安교수는 62년 당시 서울대 대학원 재학 당시 ‘빨치산’ 출신 박현채의 지도 아래 사회주의자가 됐다고 털어놨다.
     
     인혁당 관련자는 73년 조직재건을 시도하지만 64년 1차 인혁당 사건과 달리 73년 2차 인혁당 사건은 2007년 법원에 의해 무죄로 再審(재심)판결이 났다. 2차 인혁당 사건은 북한과 연계성 증거가 불충분해 재심판결이 났지만 1차 인혁당 사건 당시 복역한 도예종 등이 흩어진 세력을 규합, 지하 혁명운동조직을 재건하려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통혁당, 남로당 부활을 꾀한 당 조직”>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 역시 中央黨(중앙당)인 조선로동당 지시를 받는 地下黨(지하당)이었다. 통혁당은 1961년 12월 전남 무안 임자도 주민 최영도가 南派간첩 김수영에 포섭되며 시작됐다. 최영도는 평양을 오가며 조선노동당에 입당했고 이후 김종태를 포섭했다.
     
     김종태도 조선로동당에 입당했고 이후 김질락·이문규 등과 통혁당을 조직한다. 이 사건은 한명숙 민주통합당 前대표와 韓 前대표 남편인 박성준, 신영복도 연루됐다. 통혁당 조직원들은 美貨7만 달러, 韓貨 3천만 원, 日貨 50만 엔의 공작금을 받으며 간첩활동을 하다 68년 8월 중앙정보부에 검거됐다.
     
     법원은 통혁당을 “남로당을 부활시킨 조직체”로서 “북한의 무력남침에 대비한 사전 공작 조직”이라고 판시했다. 주범인 김종태, 김질락은 사형됐고 신영복, 박성준은 각각 무기징역,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20년과 12년을 복역했다. 한명숙 대표 역시 징역 1년, 집행유예1년을 선고받았다.
     
     신영복은 88년 출소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출간해 인기를 끌었고, 99년부터는 성공회대 교수(현재 석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가 쓴 붓글씨 <처음처럼>은 국내 최대 주류회사 소주 포장으로 사용되고, 각종 언론의 인기 강연자, 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박성준은 81년 출소해 ‘비폭력 평화의 물결’, ‘아름다운가게’ 등 시민단체 공동대표를 맡았었다. 그의 부인 한명숙은 DJ, 노무현 정부 시절 장관, 총리를 거쳐 2012년 초까지 민주통합당 당 대표를 맡았다.
     
     <“인혁당 잔당이 만든 지하혁명운동 남민전”>
     
     통혁당의 이념적 흐름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으로 이어진다. 79년 10월 검거된 남민전은 64년 인혁당 연루자 이재문 등이 감옥에 나와서 결성한 또 다른 地下 공산혁명조직이다.
     
     남민전은 인혁당 재건위 사형수 8명의 옷을 모아 北韓旗(북한기)를 모방한 남민전 깃발을 제작했다. 민중봉기로 공산혁명을 한다는 목표 아래 김일성에게 “피로써 충성을 맹세”하는 서신을 보냈고, 결정적 시기에 북한군 지원을 요청할 계획을 세웠다.
     
     남민전 주범 이재문·신향식은 사형선고를 받았고 안재구(前숙명여대 교수), 김승균(前사상계 편집장),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김남주(시인), 이학영(국회의원) 등이 구속됐다.
     
     안재구는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88년 가석방 됐다. 이후 북한의 지령을 받아 ‘구국전위’라는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다 적발돼 재차 무기징역을 받았다. 김남주는 15년 형을 선고받고 88년 가석방, 시인으로 활동하다 94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남민전 출판부 부장이었던 임헌영(본명 임준열)은 2003년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주도했던 민족문제연구소 소장과 2011년 6·15 남측위 공동대표를 지냈다. 또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등을 지냈고 공영방송인 KBS시청자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최근 화제를 모은 인물은 2012년 민통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학영이다. 이학영은 남민전 산하 彗星隊(혜성대) 조직원 출신으로 자금마련을 위해 최원석 동아그룹회장 자택에 침입 강도행각을 벌였었던 장본인이다.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5년간 복역한 뒤 YMCA 사무총장 등에서 활동을 해오다 2011년 10·26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선대위에서 활동했고, 이듬해 4·11총선(경기 군포)에 출마해 당선됐다.
     
     <“조선로동당 하부조직으로 건설된 중부지역당”>
     
     지하당, 즉 地下공산혁명 운동의 흐름은 남민전 사건 이후 일시 단절됐으나, 80년대 중반 자생적 주사파 조직이 등장한 뒤 민혁당과 92년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중부지역당)’ 사건 등으로 맥을 이어갔다. 중부지역당 사건은 북한이 조선로동당 서열 22위 간첩 이선실을 남파, 남한에 조선로동당 하부조직인 중부지역당을 건설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와 김낙중(前민중당 대표), 이철우(前열린우리당 의원·민통당 당가 작사자), 윤민석(민통당 당가 작곡자) 등 62명이 구속됐다. 이철우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복역한 뒤 17대 국회에 입성했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2005년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는 민통당 소속으로 2012년 4·11총선(경기 포천·연천)에 다시 출마했다.
     
     이철우는 2004년 12월, 92년 중부지역당 행적이 언론에 보도돼 물의를 빚었다. 당시 법원은 “피고인(이철우 前의원)은 북한 조선로동당기를 벽에 걸고 그 밑에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각각 전시한 다음 입당식을 거행했다”며 “나는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한 수령님의 전사이다”라며 이렇게 맹세했다고 나온다.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를 통일의 광장에 높이 모실 그날을 가슴 벅차게 그려보며, 주체의 혁명위업을 이 땅에서 실현할 우리 한국의 혁명가들은 어떠한 고난이 닥쳐온다 해도 수령, 조국과 민중 앞에 다진 우리의 맹세를 지켜갈 것이다”
     
     <지하당 사건 연루자들, 이제는 수면 위로>
     
     남로당→인혁당→통혁당→남민전→중부지역당으로 이어지는 ‘지하당’ 흐름은 오랜 기간 在野의 투쟁기를 지나 2012년 공개적 궐기를 앞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민통당을 들여다보자. 통혁당 연루자 한명숙씨는 전직 대표이고 黨歌(당가)를 작곡, 작사한 인물 모두 중부지역당 사건 연루자 이철우 前의원과 윤민석이다. 민주당 이학영 의원은 남민전 연루자다.
     
     인간은 대부분 과거의 사상적 궤적 위에서 살아간다. 한명숙 대표는 親北·反美노선을 일관되게 고수해왔다. 그녀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 이후 이명박 정부가 “46명의 꽃다운 청춘을 차가운 바다에 수장시켰다(2010년 5월29일 광화문 선거유세)”고 주장하는가 하면 북한 핵보유 선언(2005년 2월10일) 이후 “북한 나름대로의 국익이 있기 때문(2005년 6월27일 국회)”이라고 감싸더니 이듬해 북한이 핵실험(2006년 10월9일)을 하자 “미국의 제재와 일관된 금융압박이 하나의 원인(2006년 10월11일 국회)”이라며 북한을 감쌌다.
     
     2012년 대선은 예년의 선거와 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장성한 80년대 NL주사파 그룹과 남로당-인혁당-통혁당-남민전-중부지역당 등 ‘지하당’ 사건 연루자들이 참여하는 從北연대 세력 정권 장악은 대한민국의 국가운영 기조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