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고자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卽生 必生卽死)

    이순신 성웅께서 12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맞아 싸워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명량해전을 앞에 두고 휘하 병사들에게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며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한 연설입니다. 손자병법 과 함께 중국 최고의 병법서로 불리우는 오자(吳子)에도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의 역설적인 가르침이 마태복음서에도 나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오,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니라’.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고,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진다니!
    설마 옛 성현들이 말장난을 한 것은 아닐테지요.

    진리라는 것은 원래 단순명료한 것이지요. 이 역설적인 가르침은 심오한 철학도 아니고 무슨 다른 복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고,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낮추면 높아진다는 간단명료한 가르침이요, 진리일 것입니다.

    이 가르침을 우리 현실에 적용하며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로 사는 것이 우리네 평범한 인생살이일 것입니다. 그러니 고전에서나 설교시간에나 가끔 가르침을 받는 정도이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진리가 변하는 것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며 속임수도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살게 되고 높아진다는 것이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되고 있지요. 명랑해전에서 죽고자 했기에 수많은 병사들과 우리민족이 살았고 당신 본인도 성웅으로 영원히 산 것입니다. 저기 중동의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예수도 한 없이 낮은 길을 택했기에, 높임을 받으며 영원히 살고 있지요.

    대대로 오랫동안 왕조시대를 살아왔기에 아직도 대통령을 왕처럼 여기는 성향이 짙고, 제도적 미비점과 편법적 운영 등으로 인해 대통령 한 사람에게 막중한 권한과 권력이 집중되는 5년 단임 대통령제를 택한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가 이제 5개월 남았습니다. 이기면 다 얻고 지면 다 잃는, 모 아니면 도의 이판사판 선거전이 5년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선을 크게 보면 야당지지자와 여당지지자로 30%씩 미리 갈라져 있고 나머지 40%의 중도층에게 누가 더 많이 다가서는가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선 때만 되면 서로가 중도요 서민이라고 해대는 것일 겁니다. 각 후보 캠프에서도 이 3:3:4라는 큰 맥락을 기본전제로 깔고 선거전략을 짜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간과하면 큰 낭패를 당하기 쉽습니다.

    야당에서는 완전국민경선제라는 것을 도입하여 전국을 돌면서 흥행을 주도하려 한다고 하는데, 현재로 봐서는 아무래도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의 싸움으로 보입니다. 안철수 교수가 아직은 변수로 남아있는데, 민주당 경선에는 참여하지 않고 부전승으로 올라가서 민주당 경선 승리자와 한 판 붙을지 아니면 요상하게 생긴 앵그리 버드 인형이나 들고 다니면서 껄떡대며 협찬해주고 차기를 노릴 지는 아직 안개속입니다.

    민주당 경선이 잠룡들의 도토리 키 재기로 찻잔속 태풍으로 끝날지, 아니면 거대한 용을 만들어 낼지는 아직 판단이 이릅니다. 하지만 일방적 원 사이드 게임으로 싱겁게 끝날 새누리당 경선 보다는 아무래도 국민적 관심을 더 많이 받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이 됩니다.

    여기에 새누리당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친박 인사들은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재오, 정몽준 의원은 경선 불참을 선언했고 김문수, 임태희, 김태호, 안상수, 박근혜 이렇게 5명이 경선을 치루려는가 봅니다.

    지난 4.11총선 공천에서 드러났듯 새누리당은 친박인사들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진을 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결말을 다 아는 드라마를 흥미롭게 보겠다는 사람은 없겠지요. 우샤인 볼트와 이제 갓 새 운동화 사서 운동화 끈 묶어보는 범생이 고등학생 간의 100미터 달리기를 보겠다고 모여드는 관중은 없을 테지요. 볼트를 좋아하는 팬들만 모여 출세의 보증 수표가 될 지도 모르는 싸인이나 한 장 받아가려고 할 뿐이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전혀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대선은 박근혜와 박근혜의 싸움이라는 말이 있듯이 전적으로 박근혜에게 달려 있습니다. 성대한 추대식이 오히려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한 군데로 힘을 모을 수 있는 좋은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소위 보수세력이라 불리워지는 현 여당세를 잘 아울러 국민에게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선불참을 선언한 정몽준 이재오 의원도 포용하고, 친박좌장에서 눈 밖에 나서 공천도 못 받고 하루아침에 정처 없이 떠도는 돌쇠로 전락해 버린 김무성 전의원도 포용하고, 원수같이 굴던 친이계도 포용하는 등 새가슴이 아닌 하해와 같이 넓은 아량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근혜를 철의 장막으로 둘러치고 있는 친박인사들이 죽어야 하고 낮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박근혜가 삽니다. 비박을 높이려면 친박이 낮아지고 비박을 살리려면 친박이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박근혜도 높아지고 살게 됩니다. 그래야 친박도 같이 살고 높아지게 돼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결혼을 했다고 한 박근혜 후보의 말이 친박하고만 결혼했다는 소리로 국민들에게 들려서는 실패하게 돼 있습니다. 30%의 단단한 시멘트 콘크리트 표만 나오지 부드러운 40%의 유동층은 등을 돌리게 돼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 있어서 박근혜 후보가 승리하는 길은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하라는 평범한 겸손지덕 정도를 말함이 아닐 것입니다. 박근혜 자신도 낮추고고 죽어야 하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친박을 낮추고 죽여야 한다는 소리가 더 큰 컷입니다. 그래야 박근혜도 살고 친박도 높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