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교류는 편지왕래부터 
      
     대만과 중국처럼 편지와 전화와 사람이 마음대로 오가면, 그것이 곧 통일이다.
    최성재   
     
      남북한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일컬어진다. 중국과 대만은 통일되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중국과 대만은 사실상 통일되었다. 왜?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대만도 중국의 1국가 2체제에 속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만 해협을 사이에 둔 양안(兩岸)간의 교류가 홍콩과 중국 본토와 별 차이가 없다. 정치적 자율권 외에는 별 차이가 없다. 중국의 1당 독재 체제보다는 대만이 훨씬 앞서 있으니까, 경제에서 중국이 계속 대만의 뒤를 따라온 것처럼 정치에서도 장차 중국이 대만을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실지로 중국의 지식인들은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효파(劉曉波 류사오보)처럼 서구의 정치 민주화가 아니라 대만의 그것을 중국에 도입하고자 한다.
     
      중국은 모택동 시절에 도입된 이원체제 곧 농민이 도시로 이주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농민공 2억은 도시에 가서 노동은 할 수 있지만, 시민권은 없어서 수도나 전기, 교육 등의 기본적인 혜택도 제대로 이용 못한다. 거기 비하면 부유하고 자유로운 대만 사람들은 중국에 가면 특혜를 받는다. 2008년 마영구(馬英九 마잉주)총통 체제가 들어서면서 양안 관계는 급속히 개선되어 굳이 정치적 통합을 도모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이른바 3통(三通), 곧 통상(通商) 통우(通郵) 통항(通航)이 이전의 3불(三不)을 대신한다.
     
      1978년 대마왕의 심술과 변덕에 운명을 맡겼던 자폐증 환자 중국이 지도부의 교체와 더불어 스스로 죽의 장막을 걷기 시작하면서 양안 사이에서 경제교류가 이뤄졌다. 1978년 양안의 무역은 4천6백만 US달러(이하 동일 화폐단위)였다. 그것이 2010년 기준으로 1103억 달러로 늘어났다. 200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대만 기준으로 수출은 778억 달러, 수입은 326억 달러로 대만이 452억 달러나 흑자를 본다. 홍콩까지 합하면 교역은 1523억 달러, 무역흑자는 772억 달러다. 참고로 2010년 한국의 대(對) 중국 교역은 1168억 달러, 452억 달러 흑자였다. 홍콩을 합하면, 교역은 1420억 달러, 685억 달러 흑자였다. 대만의 경제규모가 한국의 약 절반이므로 중국이 대만에게 상대적으로 한국에 비해서 약 두 배의 혜택을 준다고 볼 수 있다.
     
      1993년부터는 편지, 전신, 전화가 서서히 개방되기 시작했다.
      1997년부터는 배와 비행기가 직항로를 개설하기 시작했다. 2008년 12월 15일부터는 3통이 전면적으로 실시되어, 중국의 공항은 21개, 대만의 공항은 8개가 직항로를 개설했다. 항구는 중국이 63개, 대만이 11개가 일직선으로 연결되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인적 교류다. 2010년 기준으로 대만 해협을 건넌 사람은 556만 명이다. 대만에서 중국으로 간 사람은 163만(2012년 200만 돌파가 확실시됨)이고 그 반대 방향은 393만 명이다. 대만 사람이 개인적으로 중국에 가면 다목적 비자로 1년간 마음대로 머물 수 있고 중국의 개인은 대만에 마음대로 15일을 머물 수 있다.
     
      고작 200명 정도가 그것도 수백억 원을 바치고도 겨우 몇 년에 한두 번 금강산 인간동물원에서 가족 상봉쇼를 벌여 눈물콧물 쥐어 짜내는 남북한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통일 직전 동서독의 인적 교류는 1000만 명이었는데, 양안의 인적 교류도 머잖아 그것을 돌파할 것 같다. 피붙이가 각 가정을 방문한다든지, 사진기를 메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북한주민과 대화한다든지 관광한다든지, 하는 것은 휴전선을 사이에 둔 민족은 상상도 못한다. 인공기를 걸어놓고 충성을 맹세한 자도 특별한 은총을 받아야 극비로 마왕을 만나 머리를 조아릴 수 있을 뿐, 누구도 감시원 없이는 북한을 돌아다닐 수 없다. 감시원이 붙더라도 북한을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먹구름 낀 날 별 보기보다 어렵다.
     
      금강산을 통해 북한주민의 주머니가 아니라 노동당 39호실로 달러를 갖다 바칠 때도 한국인은 청송교도소에 갇힌 사람보다 자유롭지 못했다. 아무리 물증이 확실해도 간첩 혐의자의 묵비권이 회기 중의 국회의원의 면책특권보다 잘 보호받는 한국인이지만, 유럽 여행보다 비싸게 관광하면서도 휴전선만 넘어가면 스스로 말처럼 재갈을 물고 스스로 죄수처럼 수갑을 차고 스스로 개처럼 목줄을 길게 늘어뜨린다. 개성의 노예공단도 마찬가지다. 재판정에서도 친북좌파는 여차하면 위력시위를 벌이지만, 거기만 가면 그들도 대한민국의 헌법이 보장하는 일체의 기본권이 박탈당하고도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보고도 못 본 척해야 하고 들어도 못 들은 척해야 한다. 모든 돈은 알아서 쓰시라며 무조건 노동당 39호실로 바쳐야 한다. 중국처럼 시장경제로 개과천선하여 북한이 개혁하고 개방하면 남북의 경제교류나 인적 교류는 양안 못지않게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햇볕 운운하는 자들의 말이 사실이었다면, 이미 지금쯤 남북한은 수천만 통의 편지와 전화가 오가야 하고, 수백만이 자유왕래해야 한다.
     
      김대중과 김정일이 볼을 부비며 얼싸안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단 한 통의 편지, 단 한 명의 사람도 자유로이 오간 적이 없다. 넘어간 것은 북한 예산의 50년치에 해당하는 100억 달러 이상의 무상 원조였지만, 돌아온 건 잠수함(김영삼, 김대중)과 대포(김대중, 이명박)와 어뢰(이명박)와 미사일(김대중, 노무현, 이명박)과 핵무기(노무현, 이명박)와 욕설(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뿐이었다. 그게 바로 선군(깡패)정치다.
     
      정상적인 남북교류는 무엇보다 가장 돈이 적게 들고 손쉬운 편지왕래여야 한다. 그리고 전화 통화여야 한다. 그 다음으로 안내원 없는 자유로운 인적 교류여야 한다. 그런 비용은 한국이 기꺼이 전액 부담할 수 있다. 이건 국민 각자가 스스로 비용을 댈 것이기 때문에 혈세를 한 푼도 안 쓰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 봤자, 1년에 몇 천만 달러면 된다. 이리 손쉽고 좋은 일을 왜 못하는가?
     
      김씨공산왕조와 한국의 친북좌파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반세기 남북합작 입맞춤 불륜이 하루아침에 들통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1975년의 헬싱키 선언이 북한의 공산정권과 한국의 친북좌파가 득세하는 한, 남북한 사이에선 나올 수 없다. 반역적 6.15선언이나 나온다. 군사면에선 미국과 맞먹던 소련이 동구와 더불어 봄바람에 눈이 녹듯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녹아 버린 것은 바로 헬싱키 선언에 따라 편지와 전화와 라디오와 TV와 삐라 풍선의 진실이 공산권으로 봄 처녀처럼 사뿐사뿐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진실 앞에 선전선동과 비밀경찰과 핵무기는 무용지물이었다. 교육, 의료, 식량 등
     100% 무상이란 것이 소유권이 박탈된 국가노예에게 던져지는 빵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헬싱키 선언으로 공산권에 서서히 알려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