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임 민주당, 제2의 열린당 분당 사태 맞나
    민노당과 유시민에 이어 좌파운동권에도 포위당해
      
    변희재, pyein2@hanmail.net   
     
    출마 선언부터 안철수 후광을 등에 업고 약진한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예상대로 민주당의 박영선 후보를 꺾고, 야권단일후보의 자리를 꿰찼다. 민주당으로서는 지난 지자체 선거 경기지사, 4,27 재보선에서의 경남 김해 선거에 이어, 중요 재보선에서 후보를 내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그 충격은 더 하다.

    경기지사 선거에서 후보를 내준 유시민 참여당 대표의 경우, 민주당에 뿌리를 둔 재선 의원이며, 2007년 대선에서는 대선 후보로까지 나섰던 인물이다. 또한 경남 김해 선거에서는 문재인 전 비서실장의 중재로, 100% 여론조사로만 후보를 정한 바 있다. 이번 서울시장 재보선에서는 민주당과는 전혀 연이 없는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게, 나름대로 민주당에 유리한 경선룰을 관철시켰음에도, 큰 격차의 패배를 당한 것이다.

    더구나 이번 재보선은 소통령이라는 수도서울시장을 선출하는 선거이고, 1996년 서울시장 선거 이래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

    민노당, 참여당 이어, 박원순 중심의 좌파운동권세력까지 민주당 위협

    민주당으로서는 내년 총선에서, 기존의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에 약 20석의 지역구 정도를 양보하며 야권 단일화를 추진할 전략을 짜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장 재보선 경선에서의 패배로,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던 박원순을 상징으로 하는 좌파 시민사회에까지 위협을 받게 된 셈이다.

    이번 민주당의 패배는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민주당은 재보선 정국에 들어서자마자, 명확한 당론을 확정하지 못한 채, 시류에 따라 크게 흔들렸다. 안철수 바람을 박원순 후보가 승계하자, 당 내에서는 후보를 내지 말자는 말까지 나오며, 일찌감치 경선구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천정배 의원 등 비주류의 강력한 문제제기로 경선을 급조했으나, 박원순 후보의 바람을 꺾지 못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손학규 대표는 외부의 후보에만 관심을 기울이다가, 뒤늦게 민주당 후보 당선을 위해 뛰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이 바람에 민주당 경선 당시 천정배, 추미애 등 비주류 후보를 지지했던 절반 가량의 민주당 당원의 힘을 제대로 모으지 못했다. 손학규 대표는 지난 4.27 재보선에서도 민주당의 텃밭인 전남 순천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민주노동당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번 경선 과정에서도 천정배 의원 등 비주류로부터 “자신의 대권을 위해 당을 팔아먹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문제는 민주당이 진퇴양난의 골에 빠졌다는 점이다. 민주당 외부에는 이해찬 전 총리, 문재인 전 노무현 재단 이사장 등 야권단일정당을 추진하는 ‘통합과 혁신’ 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은 암묵적으로 민주당 후보보다는 박원순 후보를 지원했다. 민주당의 기득권을 무너뜨려야 야권통합이 수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문재인 전 이사장과 한명숙 전 총리는 박원순 후보의 출마 때부터, 단독 만남을 주선하며, 박후보 띄우기에 나서기도 했다.

    2003년 재보선, 민주당 위협하던 유시민 도왔다가, 분당 사태 맞아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통합과 혁신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박원순 후보를 적극 밀다가는 재보선 이후의 당의 안위를 보장하지 못한다. 반면 그렇다고, 민주당에 유리한 경선 룰을 통해 결정난 단일후보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으면, 당락에 관계없이, 민주당 책임론이 불거질 우려가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이미 유사한 경험을 한 바 있다. 2003년 고양 재보선 당시 민주당은 민주당을 위협하던 개혁당의 유시민을 조건없이 도왔다. 유시민은 당선 이후, “민주당은 사라져야할 정당”이라며 민주당 해체에 앞장선 바도 있다. 그뒤 실제로 민주당은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를 맞았다. 특히 중간에서 이중적 태도를 보였던 손학규 대표의 경우 재보선 이후 어차피 당대표의 지위를 내놓아야 한다. 대선 후보 지지율이 5%도 미치지 못한 상황에서, 무소속 박원순 후보와 문재인 전 비서실장의 통합과 혁신 세력이 주도권을 잡게 되면, 존재감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민주당 지지 사이트, “차라리 나경원 찍자” 반감 표출

    이런 우려 탓에 민주당의 박주선 최고위원, 박준영 전남지사, 김영환 의원 등은 박원순 후보가 민주당 입당을 전제하지 않으면 후보단일화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민주당 지지 사이트에서도 박원순 후보에 대한 반감이 표출되고 있다. 아크로(theacro.com)의 유틀러는 “괜히 박원순이 찍어주면 설마 얘들이 우리 착한 민주당 지지자들이 박원순 찍어줬으니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 후보 찍자고 할까요? 아닙니다. 내일 모레 부터 당장 민주당이 자금을 내놓으라느니 조직 내놓으라느니 난리 날 겁니다. 앞으로 26일까지 민주당 지지자들을 열받게 할 글들은 엄청나게 쏟아진다고 보시면 됩니다”라며, “ 주위 사람들 적극적으로 나경원 찍으라고 설득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투표하라고 권유합니다. 저는 그래도 기권으로 방침을 정했는데 이제는 나경원을 확실하게 찍어주고 가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라고 주장했다.

    사이트 수복(soobo.or.kr)의 ‘대륙시대’는 이번 민주당의 패배가 민심이 아닌 매스컴에 의한 것이라며 “민심이 답이라면 민주당과 후보단일화, 통합 운운하지도 않는다. 민심이 그들에게 있는데 그런 거추장스런 짓을 왜 하는가? 그 민심, 매스컴의 선동으로 만든 민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물이 없는 매스컴 민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스컴으로 민심을 만들어내고 민주당에서 실물을 가져가고져 하는 것이다”라고 친노좌파 매체 등의 편향성을 지적했다.

    국민뉴스(koominnews.com)의 강재현은 “민주당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양심과 진보를 추구하는 민주당 내의 정치세력들은 이번 서울시장 재보선 결과를 지켜보면서 신당창당이라는 특단의 대책을 세울것을 강력하게 권고하는 바이다”라며 아예 친노세력과 결별하자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

    반MB 정서에 편승하며, 제 1야당 신뢰성 추락한 것이 근본적 원인

    이렇게 60년 정통 야당을 자부하던 민주당이 출마 선언한지 한 달도 채 안 된 정치 초년생 박원순 후보에게 패배하자, 그 이유에 대한 다양한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다수의 언론에서는 이번 박원순 후보의 승리가,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작용했다며. 민주당이 기득권을 버리고 환골탈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신문은 10월 4일자 사설 ‘박원순 야권통합후보 선출과 과제’에서 “정치권 밖 시민사회 출신으로 정치 경험이 전무한 박원순 후보가 승리한 것은 그의 참신성과 사회에 대한 헌신성 못지않게 기존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감을 반영하는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철저한 반성과 쇄신이 절실하다”고 분석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쇄신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이석현 의원은 "민주당은 확실히 패배했다"며 "네 탓, 내 탓 공방으로 허송세월하지 말고 시대흐름에 맞게 변화하고 개혁해야 한다"고 했고, 우제창 의원은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여론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현실에 깊은 자괴감을 느낀다"며 "87년 체제의 기득권을 버리고 당 구조를 모조리 뜯어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민주당이 각종 촛불 집회, '희망 버스' 등에 동참하며 '거리 정치'에 열중했고, 국민은 이런 민주당이 시민단체와 어떤 차별성을 갖는지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됐다"며 "똑같은 물건이라면 신상품을 사겠다는 심정 아니겠느냐"고 했다. 민주당이 그간 각종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를 한다며 군소 야당이나 시민사회의 덩치를 너무 키워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민주당은 2008년도 광우병 촛불 이후, 박원순 후보가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지원한 좌파시민단체와 함께 거리투쟁에 골몰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여당 시절 추진해온 한미FTA마저 반대하며, 국정운영세력으로서의 신뢰를 점차 잃어갔다. 민주당이 정당 정치를 부정하며 좌파시민사회와 함께 투쟁대열에 합류하면서, 여당 역시 국회에서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다. 민주당이 좌파시민사회와 차별성을 잃어가고, 여당이 이를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민주노동당과 좌파시민사회가 민주당의 영역을 잠식해들어간 것.

    여전히 민주당의 중도개혁노선을 지지하는 김경재 전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MB정권 들어 2%의 지지율도 안 되는 민주노동당과 좌파시민사회에 끌려다니면서, 정상적인 정당의 기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민주노동당 등 종북좌파세력과 선을 긋고 국정운영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원순 당락에 관계없이 민주당 해체론에 시달릴 것

    그러나 민주당의 추락과 혼란은 서울시장 재보선 이후에 오히려 더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나온다. 실제로 이번 경선에서 박원순 후보에 패한 책임을 지고 손학규 대표는 사퇴 선언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어차피 민주당은 대선 1년 전인 12월 18일 이전에 신임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면 당선되는 대로, 낙선하면 낙선하는 대로 민주당의 전당대회는 정상적으로 치러지기 어렵다.

    만약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면, 좌파시민사회의 발언권이 거세지며, 민주당 해체를 통한 신당 창당론이 힘을 받게 될 것이고, 낙선하게 되면, 민주당이 제대로 선거를 지원하지 않았다는 논리로 역시 민주당 해체론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재보선 과정을 거치며 결과에 따라, 민주당이 2003년도 열린우리당 분당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높다. 이번 박원순 후보의 약진은, 그가 기존의 민주당 조직원이 아니라는 점, 문재인 비서실장 등 친노세력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PK 출신이라는 점 등등 노무현 바람 이후의 열린우리당 창당의 흐름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