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 10일 서대문형무소서 오후 7시부터는 기념공연 ‘내가 대한민국이다’ 개막
  • 우리나라에는 애국자를 양성했던 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를 만든 이는 당시 재벌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신흥무관학교다. 일제 치하에서 최대의 항일 투쟁 본부이자 독립투사 양성소였다.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 3월 신민회의 국외독립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립 결의로 시작된다. 신민회 결의 후 당시 조선의 갑부였던 이시영․이회영 6형제와 이상룡, 김동삼, 김대락 등 안동 출신 애국지사들이 재산과 노력을 모아 1911년 4월 중국 유하현 삼원포 고산자에 그 터를 마련, 경학사(耕學社)를 설립한다.

    1911년 6월 10일에는 유하현 삼원포 추가가에 부설기관인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설립하였다. 신흥강습소는 1912년 통화현의 합니하로 이전한다. 1913년에는 교사(校舍)를 새로 지어 신흥중학교로 이름을 바꾼다. 신흥중학교의 소문을 듣고 조선 각지에서 지원자가 몰려오자 류하현 제3지구의 고산자가(孤山子街)로 이전,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였다.

    신흥무관학교에서 배출한 독립군 중에는 청산리 전투와 친일파 척살의 주인공이 많다. 지청천, 이범석 장군 등이 이곳에 와 후일을 도모했고, 입학지원생도 늘어났다. 하지만 일제의 집요한 박해와 잇단 사고로 1920년 폐교됐다.

    신흥무관학교가 폐교되자 지청천이 이끄는 학생 300여 명은 백두산 지역의 안도현(安圖縣)에서 홍범도 부대와 연합했다. 김좌진 부대도 뒤따라 대한독립군단 결성에 참가하는 등 신흥무관학교는 항일무장투쟁의 본거지, 애국투사의 산실이라 불릴 만 했다.

  • ▲ 광복후 기념사진을 찍은 신흥무관학교 학우단. 이들은 학교가 문을 닫은 1920년 후에도 평생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 광복후 기념사진을 찍은 신흥무관학교 학우단. 이들은 학교가 문을 닫은 1920년 후에도 평생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이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행사’가 오는 10일 서대문형무소 잔디광장 야외무대에서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공동대표 윤경로·김삼웅·전기호·서중석·허남성·한용원)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기념식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기념사업회원, 일반시민, 학생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흥무관학교 경과보고, 역사어린이합창단의 독립군가, 기념사업회 윤경로 대표의 기념식사, 국가보훈처장의 축사, 신흥무관학교 교가제창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기념식이 끝난 후에는  ‘내가 대한민국이다’라는 주제의 기념공연이 열린다. 기념공연은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영상 상영에 이어, 장사익·크라잉넛·솔트레인·노래를 찾는 사람들·역사어린이합창단 등의 공연 순으로 이어진다.

    이 외에도 독립기념관에서는 신흥무관학교 100주년을 맞아 6월 9일부터 7월 24일까지 ‘조국광복의 꿈, 항일무장투쟁의 산실 신흥무관학교’를 주제로 특별기획전(신흥학우단 발간잡지 '신흥학우보', '신흥교우보' 등 20여점의 자료)이 열리며, 관람객을 대상으로 6월 18일부터 7월 17일까지 신흥무관학교 졸업앨범 및 종이모형 만들기 등의 체험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오는 6월 21일에는 중국 심양 소재 9·18역사박물관에서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 한중공동항일투쟁 학술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에서는 ‘신흥무관학교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일본의 중국침략과 학살’ 등 총 9개의 주제로 발표와 토론이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