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과 분열의 화신, '노무현'이란 이름 석자
     야권의 묻지마식 통합몰이, 노무현의 실패 반복할 가능성 높아
     
     변희재, pyein2@hanmail.net   
     

    4.27 재보선 이후 야권 진영에서의 화두는 역시 ‘통합’이다. 이들은 노무현의 정신도 ‘통합’이라 규정하고, 통합을 위해서라면 사상전향, 야합, 밀실협상, 정당 민주주의 파괴 등, 무엇든 할 태세이다.

    그러나 이들이 통합을 외치면 외칠수록, 야권을 지지하는 않는 국민들과의 분열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즉 현재의 통합논의는 이명박 정권, 혹은 우파세력으로부터 권력을 되찾아오기 위해서, 국론을 무조건적으로 양분시키는 분열의 씨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야권이 느닷없이 통합의 화신처럼 내세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통합보다는 ‘분열’에 더 가까운 인물이다.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도 한나라당 시절 노무현 정권을 향해 “경제를 파탄내고, 사회를 갈기갈기 찢은 이 정권을 국민은 당연히 거부할 것”이라고 공격한 바도 있다. 노대통령이 분열의 상징이 된 사건은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이었다. 이 분당 사건으로 구 여권은 극심한 분열에 시달리며 두 동강 나고 말았다. 이에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정동영, 천정배 의원 등은 정권연장을 위해 갑작스러운 통합작업에 나섰다. 그래서 ‘통합민주당’, ‘대통합민주신당’ 등 ‘통합’이 정당 이름에 무분별하게 등장하기도 했다.

    노무현의 영호남 민주화세력 통합 노력, 국론 분열 초래하며 참담한 실패

    그렇다면 노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이 분열의 주역이란 점을 인정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노대통령이 관심을 두었던 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남민주화세력의 지지였다. 이는 한국 현대 정치사적으로만 보자면 매우 깊은 의미가 있다. DJ와 YS 세력의 통합, 즉 1987년의 양김 분열 이전의 신민당의 복원이었던 것이다. 노대통령은 신민당의 복원과 영호남의 민주화세력의 화해를 진정한 ‘통합’으로 봤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의 틀을 파괴해야하는 문제가 있었다. 2011년 현재 분열의 화신으로 손꼽히는 유시민이 2003년도 민주당 분당을 주도하며 “지금까지 죽어라고 한나라당만 찍어온 대중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정권재창출을 이룬 대중은 소중하고 거기 협조하지 않은 대중은 그냥 버려두어도 좋다는 말입니까?"라고 선동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 분당 사건은 민주당을 호남 자민련으로 남겨두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여, 영남인들이 호남에 대한 편견에 구애받지 않고 찍을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친노세력의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에 거대한 분열을 야기하고 말았다. 일단 구 민주당 지지세력과 친노세력 간의 극심한 갈등을 야기했다. 분열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사활을 걸고 권력투쟁을 벌이면서 한나라당과의 대립도 심해졌다. 열린우리당의 창당 명분이 부족하다보니, 더 적나라하게 한나라당 및 우파진영을 공격하면서 입지를 넓혀나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실 정책과 별 관계도 없는 과거사 논쟁에 몰두했다. 안 그대로 수많은 애환이 서려있는 한국 현대사를 정략적 목적으로 끄집어내다보니, 정치권 뿐 아니라 국민들까지 분열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실정을 거듭한 노무현 정권이 국민들로부터 심판을 받아 정권이 교체되면서, 분열된 국론이 조금씩 통합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으며 투신자살을 하여, 국론은 돌아올 수 없는 수준으로 또 다시 분열되었다. 이외에도 이명박 정부에서의 지도층들의 병역기피, 위장전입 등등이 끊임없이 터져나오면서 계급갈등마저 증폭되고 말았다.

    이러한 정치사적 과정을 보면 지금의 야권통합은 노대통령이 분열시킨 야권세력을 복원한다는 명분과, 이명박 정권에 실망한 국민을 모두 끌어모아 정권을 탈환하겠다는 실리적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의도와 달리 노대통령 때보다 더 큰 부작용만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양한 사상과 노선이 공존해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 걸맞지 않게 각 정당이 모두 획일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의 노선은 제 각각이다. 이를 억지로 묶으려 하다보니 각자 고유의 노선을 포기하는 일들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노선 다른 정당의 통합몰이는 필연적으로 정당 민주주의를 파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건이었다. 민주노동당은 NL(민족해방)을 대표하고 진보신당은 PD(민중민주)를 대표한다. 이 두 노선은 대학 운동권 사회에서부터 늘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경쟁하며 공존해왔다. 이러한 노선의 뿌리로 따진다면 민주노동당의 종북주의를 비판하며 진보신당이 창당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를 단지 총선과 대선의 승리만을 위해 되돌리며 무리한 통합을 시도하다 결국 ‘종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말았다. 뿌리부터 다른 두 정당을 몇몇 지도부들이 억지로 통합시키려니 당연히 당원들의 목소리는 억압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억압은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크나 큰 위협으로 작용한다. 진보신당 지도부들이 당원들이 결정한 ‘북한 3대 세습 반대’ 문구를 슬쩍 뒤바꾸며 민주노동당과 협상에 나선 것이 좋은 예이다. 통합을 위해 진보신당 당원들의 권리는 박탈된 것이다.

    유시민의 국민참여당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국민참여당은 노무현 정권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창당했다. 노대통령은 집권 마지막까지 한미FTA와 개헌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참여당은 이러한 노대통령의 꿈을 실현하기는커녕 민노당과의 합당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유시민 대표는 한미FTA 등에 대한 자신의 노선 수정을 검토한다고 한다. 재보선 실패 이후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자, 자신과 자신이 창당한 정당의 노선을 폐기처분하며 사상 전향을 통해 타 정당과의 합당에만 몰두하고 있는 격이다.

    재보선 패배 이전까지만 해도 유시민과 참여당은 야권에서 가장 오른 쪽에 위치하며 가치있는 노선을 확보하고 있었다. 최소한 묻지마식 세금복지 노선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관 출신으로서 전문적으로 이를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유시민과 참여당은 민노당과 합당하기 위해서는 이런 가치를 모두 포기해야할 판이다. 이는 정당 민주주의 전체의 손실이 될 것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당의 정동영 최고위원은 노무현 정권 당시 실용노선을 추진했다. 그러다 지난해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별다른 설명도 없이 갑자기 좌파 노선으로 사상을 전향해버렸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대권후보까지 지낸 유력 정치인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사상를 전향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아무리 좋게 이해하고자 해도, 이는 대선에서 좌파진영의 지지를 선점하기 위한 정치적 정략 측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시절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맹폭격을 가하다, 민주당으로 넘어와 이를 계승하겠다고 외치는 손학규 대표에 대해서는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한나라당 경기도지사 시절 활발한 해외투자 유치로 ‘글로벌 경기’를 이끌었던 그의 리더십은 이제 국가적으로 실종되고 말았다.

    노대통령이 영남민주화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책과 노선도 다르지 않으면서 민주당 분당을 감행하며 분열을 초래했다. 반면 현재의 야권통합론은 오직 정권 탈환만을 위해 정책과 노선이 엄연히 다른 데도, 이를 억압하며 뭉치려는 민주주의 파괴가 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두 가지 방식 모두 명분이 부족하다보니, 상대를 악의 축으로 몰아버리면서 정당성을 획득하는 방식을 취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노대통령과 현재의 야권통합 방식 모두 대한민국 전체로 보면 국론 분열을 야기하게 된다.

    한나라당 초선 15인의 가치동맹과 새노추의 반신자유주의 노선의 의미

    그 점에서 김용태, 진성호, 신지호 등 한나라당 초선 의원 15명의 가치동맹과 무분별한 통합을 거부하고 정통 사회주의 노선의 정당을 추진하는 ‘새로운노동자정당추진위원회’(이하 새노추)의 선언이 오히려 타락한 정치권에 참신한 목소리를 던져주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 초선 15명의 가치동맹은 한미FTA 비준안 처리와 북한인권법 제정 등 정통 우파의 노선을, 새노추는 반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정통 좌파 노선을 추구한다.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그러나 국민 입장에서는 일단 불안하지가 않다.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노선, 정책이 모두 명확하기 때문에 이들의 정치적 행보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사상을 전향하고, 저 멀리 떨어져있는 정당에 갑자기 투신하여 과거의 말을 모두 뒤집어대고, 실제 자신의 노선을 야합을 위해 은폐하면서 야기되는 정치적 혹은 사회적 비용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로 인한 국론분열까지 감안하면 계산이 안될 정도일 것이다.

    차라리 이런 비용을 모두 한데 모아, 각자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선거를 통해 자유롭게 연합할 수 있는 결선투표제,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등 정치개혁에 투자하면 어떨까. 이는 분열의 화신 노대통령이 퇴임 직전 정치권에 주문한 내용이기도 하다. 최소한 노무현 이름을 팔아 창당한 유시민과 참여당은 민노당에 투신하기 전에 노대통령의 주문부터 실천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이들이 이를 모른 체 하기 때문에 ‘노무현’이란 이름 석자의 가치가 더 높아지는 시대이다. /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뉴데일리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