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유적지 방문..3대 권력승계 공식화 의도
  • 북한의 2인자인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20일 새벽 중국 방문은 차기 지도자로서 위상을 분명히 하는 첫 국제무대 행보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특히 김 부위원장은 단독 방중을 통해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북한의 당 중앙군사위는 지금까지 그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김정일 사후 국방위원회를 대체할 권력기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지적이고, 김 부위원장은 그동안 북한 대내적으로 2인자로서 자리를 공고히 해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아직 수행인물이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김 부위원장 측근으로 분류되는 리영호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겸 인민군 총참모장, 최룡해 당 정치국 후보위원(전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 장성택 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 부위원장 등이 포함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으며, 김 부위원장이 이들과 함께 이번 방중을 통해 차기 지도자로서 '인정'받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우선 김 부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간의 회동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김 부위원장이 북한의 차기 최고지도자로서 지위가 확고해진 상황에서, 내년 10월 제18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차기 국가주석 선출이 유력해진 시 국가부주석과의 만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시 부주석도 '차기'를 공고히 하고서 북한을 방문한 전례가 있고 김 부위원장의 이번 방중도 그런 성격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차기 지도자 간의 회동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난 다섯차례 방중에서 중국 수뇌부 대부분이 김 위원장과 면담했던 전례로 볼 때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포함해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와의 면담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또 주목할 점은 김 부위원장의 방중 행선지다.

    김 부위원장이 탄 열차는 이날 새벽 투먼(圖們)을 경유해 무단장(牧丹江)으로 향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로 미뤄볼 때 김 부위원장의 동선은 투먼-무단장-하얼빈(哈爾濱)-창춘(長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지난해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중했을 당시 귀로였던 창춘-하얼빈(哈爾濱)-무단장(牧丹江)의 역순이다.

    무단장은 조선과 중국의 공산당이 항일 공동투쟁을 위해 결성한 무장 투쟁 세력인 동북항일연군이 1930년대 활동했던 주무대다. 김일성 주석을 비롯해 최현, 서철, 오백룡, 임춘추, 안길, 최용건, 김책 등 북한 정권 수립의 주역들이 모두 동북항일연군 1로군 소속이었다. 무단장 베이산(北山)공원에는 이들을 기린 동북항일연군(聯軍) 기념탑이 있다.

    따라서 김 부위원장은 이번 방중을 통해 혁명정신을 계승하는 제스처를 보임으로써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권력 승계의 의지를 대내외에 공식화하려는 의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눈여겨 볼 대목은 김 부위원장의 방중 시점이다.

    지난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이후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됐고 올들어 북한이 대화 공세를 벌이고 있으나 비핵화 의지 등에 대한 진정성이 확인되지 않으면서 여전히 교착을 못 벗어난 가운데 차기로서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방중이 단행됐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거듭된 북한 비핵화 제안에 북한이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속에서 이뤄진 김 부위원장의 방중은 남북 관계보다는 북중 관계에 무게를 싣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우리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대북 교역을 전면 중단한 5.24 조치 이후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심화한 것으로 알려졌고, 최근 들어 '긴밀화'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북·중 교역의 70%를 차지하는 신의주-단둥(丹東)간 신압록강대교가 작년 말 착공하고 이달 초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으며 양국 접경인 압록강의 섬 황금평 개발과 훈춘(琿春)-라진항 도로보수 공사도 이달 말 양측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착공식을 하기로 하는 등 경협이 후끈 달아오르는 모양새다.

    이런 탓에 일단 투먼(圖們)을 거쳐 무단장(牧丹江)으로 향한 김 부위원장은 하얼빈(哈爾濱)-창춘(長春)으로 향했다가 귀로에 창춘-지린(吉林)-투먼 집중 개발 플랜인 이른바 '창ㆍ지ㆍ투(長吉圖)계획'의 핵심지역을 둘러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강성대국 원년인 2012년을 1년 앞두고 창지투 플랜을 둘러보고 그와 관련한 개혁개방 의지를 대내외에 선포하는 경제챙기기 행보를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은 그동안 창춘에서 지린, 두만강 유역을 2020년까지 경제벨트로 이어 낙후지역인 동북3성의 중흥을 꾀하자는 이른바 '창지투' 플랜에 심혈을 기울여왔고 이에 대한 북한의 참여와 협조를 촉구해왔다.

    특히 중국은 이 계획의 핵심인 '동해 출항권'을 얻기위해 북한을 설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 부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이와 관련해 북한의 '변화'가 있을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김 부위원장 방중을 계기로 북중 경협이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근래 중국 중앙정부의 태도 변화도 주목할 대목이다. 중국 중앙정부는 그동안 지방정부와 각 기업이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대북 투자를 하도록 유도해왔으나, 최근에는 대북 투자에 나선 자국 기업의 투자 손실을 보전해주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중앙 정부 차원의 북중 경협 강화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북한은 그동안 중국 중앙정부가 경협에 개입해달라는 요청을 거듭해왔다"면서 "중국 중앙정부가 본격적인 '지원'에 나서면 북중 경협이 크게 활기를 띨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북한이 만성적인 식량난에 춘궁기가 겹치면서 수백만명의 건강이 심각한 위협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김 부위원장의 방중을 통해 중국의 대북 식량 지원이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최근 방한에서 북한의 정확한 식량사정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면서 미국이 조만간 식량평가단을 보낼 계획을 밝히는 등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도 조만간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