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의 도박, 노무현식 낡은 정치 재현"
     
    변희재, pyein2@hanmail.net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가 결국 분당을에 출마를 선언했다. 최측근인 신학용 의원이 “분당을은 백전 백패”라고 자인해버린 것이 오히려 출마를 부추긴 셈이다. 당 대표 측이 필패라고 선언한 지역에 어떤 후보가 출마할 수 있겠는가.

    정권 탈환에 사운을 건 좌파 매체들은 환호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이 사건을 분석해보면, 손학규 대표의 분당을 출마가 얼마나 비상식적인 정치행위인지 쉽게 드러난다.

    원칙적으로 재보선 선거는 권력투쟁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해당 지역 출마 후보자 중 가장 훌륭한 인물을 주민들의 의사로 선택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런 재보선 선거에 ‘희생’이니 ‘헌신’이니 ‘도박’이니 하는 단어들이 난무하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 정치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노무현식 도박, 유시민, 정동영, 손학규 등 철새 정치인들이 벤치마킹

    이런 후진적 정치 문화를 만들어낸 장본인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에서 세 번 연속 낙선한 뒤 대통령이 되다보니, 민주당의 기회주의 정치인들은 모두 이런 노무현의 정략을 뒤따라하고 있다. 유시민이 갑자기 대구에 출마했고, 경기도로 올라오고, 정동영이 동작에 출마했다 전주로 내려가고, 손학규는 광명, 종로, 분당을 헤매고 있다. 명분과 원칙은 없고 오직 권력만을 쫓아다니는 철새만 대량 양산된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부산에 확실한 연고가 있고, 부산에서 당선된 경력도 있었던 상태였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질적인 지역감정의 벽에 도전한다는 강력한 명분도 있었다.

    반면 손학규 대표는 분당에 전혀 연고가 없다. 더구나 분당은 지역감정과 별 관계도 없는 도시이다. 민주당에서 분당에는 강남좌파가 먹힌다면 서울대 조국 교수를 거론하는 걸 감안해본다면, 손대표도 분당에서 강남좌파론이나 설파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손학규 개인의 대권을 위한 도박판의 판돈으로 전락한 분당을 유권자들이 가련할 따름이다. 이번에 낙선하면 내년 총선에는 또 어느 지역구의 유권자들을 판돈으로 삼을 건지도 궁금하다.

    또한 시대도 변했다. 노 전 대통령이 부산에 출마할 때만 해도, 그의 도전에는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노대통령 집권 시기를 거쳐 정치권은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 수준의 갈등을 양산했다. 이제는 정치가 벼랑 끝 승부수가 난무하는 도박장이 아닌 상식적이고 대승적 상생의 정치로 발전해야 하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한나라당에서 15년 간 호의호식하던 사람이 한나라당을 깨버리겠며 분당을에 전격 출마한다? 시대 흐름에 180도 역행하는 일이다.

    바로 이러한 민주당의 노무현식 낡은 정치 탓에, 민주당은 수도권인 분당을에 변변한 출마 후보자 하나 내세우지 못했다. 지금은 제 정신 가진 언론인이라면 손대표의 ‘희생’(?)에 박수를 칠 때가 아니라, 제 1 야당이 수도권에 후보 하나 내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해야하는 것이다.

    원칙 내던지고, 자기 손으로 자기 뺨 때리며 아우성치는 한나라당

    더 한심한 것은 한나라당이다. 손대표가 출마를 선언하자, 마감일까지 당에 입당 원서조차 내지 않은 정운찬 전 총리 추대론이 또 다시 불거지고 있다. 야권에서 권력투쟁을 위해 외지인을 내보내니, 국정운영에 책임이 있는 여당도 외지인을 넣겠다는 발상이다. 그것도 이미 절차적으로 편법을 쓰지 않고는 후보가 될 수 없는 인물을 말이다.

    집권 여당이라면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이미 지원서를 낸 후보자들 중에서 정상적인 절차를 따라 신속히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하면 정권 탈환만을 위해 분당을 권력투쟁의 장으로 만드는 야당을 준엄하게 꾸짖어야 한다. 그러나 4월 12일 정식후보등록 마감일까지 한나라당의 내분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내분이 분당을 출마자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며 판세를 불리하게 끌고 가게 된다. 분당 유권자들이 볼 때, 명백히 후보접수 마감이 끝났는데도, 공천을 하지 않으면 강재섭 후보 등에 대해 "무언가 문제가 있는 인물이어서 당이 공천을 주저하지 않나" 이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자기 손으로 자기 뺨을 때리며 아프다고 아우성대는 격이다.

    오히려 손대표의 출마로 유탄이 떨어진 곳은 전남순천과 경남김해이다. 전남순천은 민주노동당 김선동 후보와 무소속 김경재 전 의원 외에 6명의 민주당 후보들이 대기하고 있다. 이미 당에서는 순천 무공천을 선언했음에도, 민주당 소속 후보들은 여전히 출마 포기도 탈당도 하지 않고 선거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손학규 분당 출마는 민주당 순천 출마자들과 유시민에 유탄

    민주당 후보 6인은 모두 민주노동당 등 야권연대 찬성론자이다. 야권연대에 찬성하면서도 순천만큼은 자신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의 시각으로 보면 손대표는 야권연대 단일후보로서 당대표가 직접 몸을 던졌다. 정치 도의 상 야권연대에 찬성하는 민주당 소속 순천 후보라면, 이러한 당대표와 당 전체의 결의에 따라 순천의 야권연대 단일후보인 민주노동당의 김선동 후보를 도와야 한다. 아니면 더 지체하지 말고 탈당하여 손대표를 비판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해야 한다.

    경남김해에서는 현재까지도 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 요구가 관철되어왔다. 이번 손대표의 출마로 유시민의 참여당보다는 민주당의 곽진업 후보 측에 더 힘이 실리게 되었다. 유시민 대표는 자신의 공언대로 분당을에서 손대표 선거를 도와야 한다. 손대표의 출마로 유시민 대표가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것이 전직 경남도지사 출신인 김태호 후보에 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것을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경남김해에 목숨을 걸었던 참여당이 후보를 내지 못할 경우, 유시민 대표 등 참여당 지지자들이 얼마나 민주당을 도와줄지도 미지수이다.

    손대표의 출마로 이번 재보선은 세력 간에 사활을 간 난투극으로 변질될 전망이다. 재보선에서 이런 벼랑 끝 승부수가 통하면, 내년 총선과 대선 역시 난투극이 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이번 손대표의 승부수는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유권자들의 비웃음을 사며 찻잔 속의 태풍이 될 가능성이 점점 더 높아질 것이며, 민주당의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기 때문에 야당이면서도 여당 지지율의 반토막밖에 안 되는 것이다.

    정적 깬다며, 이 지역구, 저 지역구 돌아니는 철새 정치인, 선진국에는 없어

    미국이나 영국 같은 정치 선진국에서 당내 유력 정치인이, 정적을 깨버린다며 이 지역구, 저 지역구 돌아다니는 사례가 있는가. 미국에서 보기드문 정치 승부사인 오바마 대통령도 시카고에서만 정치를 했을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권력잡겠다고, 손학규 대표처럼 공화당 우세지역인 미국 남부에 출마하고 다닌다는 게 상상이나 되는가.

    아무리 너그럽게 이해해도, 이런 정치는 노무현의 시대와 영호남 간의 지역감정의 특성 등, 매우 특수한 시대와 특수한 사례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2004년 총선에서 유시민 등 친노세력의 민주당 죽이기에 맞서 민주당 최고위원 신분으로 순천을 포기하고, 서울 출마를 감행했던 김경재 전 의원의 사례도 이런 특수한 시대와 지역 내에서만 고려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이번 재보선은 시간이 흐를수록 손대표를 비롯한 민주당에 대한 심판론이 정권 심판론을 압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역시 그 핵심지역은 친 김정일 노선의 민주노동당과의 야합, 노무현식 도박정치를 심판하게 될 전남 순천이다.
    <변희재 /객원논설위원, 미디어워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