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사태 등 중동 ‘민주화 시위’는 한국 ‘민주화’와 달라근본주의 정권 들어설 경우 서방 국가 에너지 수급 치명타
  • 이집트 사태, 튀니지 사태에 이어 리비아 사태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리비아 사태는 반정부 시위가 아니라 거의 내전 수준이다. 이에 강보합세를 보이던 유가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왜 세계는 리비아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걸까.


    Q. 리비아 사태가 점점 ‘내전 양상’을 띠어가는 모습이 마치 1980년 5.18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 시위는 한국의 민주화 시위와 같은 것 아닌가. 이러다 보면 리비아도 우리나라처럼 민주화 사회로 가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좋을 거 같다.

    A. 문제가 간단치 않다.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이 리비아는 서구 문명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나라라는 점이다. 리비아 사태는 ‘민주화’가 목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위대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러 가지다. 인구 640만여 명의 리비아는 500여 부족으로 이뤄져 있다. 현재 반정부 시위와 친정부 시위도 부족들 간의 알력이 내재돼 있다. 카다피 원수는 카다파족(族) 출신이다. 반정부 시위대는 와라파족, 파그왈라족, 투아렉족 등으로 구성돼 있다.

    카다피 국가원수는 대령 시절 쿠데타에 성공한 뒤 40년 동안 집권하면서 카다파족에 상당한 특혜와 권한을 줬다. 때문에 타 부족들의 불만이 점차 쌓였지만 지금까지는 무력 통치와 독재를 통해 억눌러 왔다. 반미활동도 독재의 수단이었다. 원유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로 국민들을 먹여 살리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 생활물가가 급등하자 카다피 정권이 국민들을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면서 불만이 커졌고 시위가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아무튼 더 큰 문제는 카다피 원수가 권좌에서 축출된 후다. 각 부족들은 서방국가와 같은 대의민주주식 선거제도를 채택할 수도 있지만, 선거결과에 불복할 수도 있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각 부족들 간의 합종연횡이나 부족 간에 심각한 권력투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때문에 현재 리비아 사태는 현재 상황뿐만 아니라 향후 예측도 어렵다.

  • 이런 점 때문에 카다피가 권좌에서 축출돼도 내부 갈등이 사그라들지 않으면, 우리나라에도 그리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카다피가 권좌를 지키게 될 경우에도 독재가 더욱 심해질 것이므로 우리나라에 그리 이익이 될 부분이 없다.

    Q. 그래도 현재의 반정부 시위로 리비아 등에서 독재정권이 무너지면 선거로 민주정부가 들어서게 될 게 아닌가. 그렇게 되면 미국, 이스라엘과도 대화가 가능할 것이고, 중동 정세도 안정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왜 서방국가들은 지금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나.

    A. 현재 미국 등 서방 강대국들은 자신들이 리비아 정정(政情)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기 때문에 우려를 나타내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리비아 사태와 같은 내부갈등과 이후 상황을 예측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그 나라 국민의 ‘성향’이다. 리비아 국민들은 40년간의 독재로 세뇌되어 반미 감정은 심각한 수준이지만 수백 년을 이어온 이슬람 율법은 충실히 지킨다. 중동 무슬림에게 이슬람은 서방세계에서 생각하는 종교가 아니라 그들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이슬람은 리비아 부족들에게도 도덕이고 생활이며 법이다.

    이런 정서를 잘 아는 카다피는 독실한 무슬림들을 이끄는 방법으로 반미감정을 내세우는 한편 권력 유지를 위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는 거리를 둬 왔다. 최근 알 카에다가 리비아 사태를 적극 지지한다는 식의 ‘언론 플레이’를 하자 카다피는 이에 맞선답시고 ‘이번 시위의 배후에 알 카에다가 있다’고 발표해 향후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의문이다.

    한편 리비아에는 서방 국가들의 영향력이 거의 미치지 않기 때문에 카다피가 권력을 유지하든 쫓겨나든 부족들 간에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의견 대립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내전이 지속될지 아니면 미국, 이스라엘과 대화에 나서는 등 국제무대로 복귀할 지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Q. 리비아 사태가 격화되자 ‘알 카에다’가 끼어들려 한다고 들었다. 대체 알 카에다가 리비아 사태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그러는가.

    A. 알 카에다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중에서도 ‘변종’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힐 곳으로 주로 부족 간 대립이 심각한 지역, 내전 국가를 골랐다. 소말리아 남부,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인도네시아 일부 지역이 대표적이다. 이번 리비아 사태의 근본 원인도 부족 간의 대립 양상이 심각해지면서 생긴 것이라는 점을 간파한 이들은 ‘이슬람 율법’을 내세워 카다피 정권에 불만이 큰 부족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상당한 자금과 훈련된 병력을 제공해 카다피 독재정권을 쫓아내겠다고 제안, 리비아 사태에 개입한 뒤 자신들의 근거지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알 카에다가 소말리아 남부에 이어 리비아에까지 영역을 넓히게 되면 주변 중동 국가들도 긴장하게 되고, 그 긴장을 활용해 다시 걸프 연안 국가와 사우디아라비아에까지 침투하려는 것이다.

    Q. 이집트 사태, 튀니지 사태 때만 해도 유가 상승이 심각하지 않았는데 리비아 사태가 격화되면서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 유가 추이 전망은 어떤지, 우리나라는 어떤 대비책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A. 리비아 사태가 내전 양상을 띠게 되면서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가는 유럽 북해산 브랜드유, 미국 텍사스 중질유, 두바이유 순으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세계 각국이 수입하는 석유는 주로 두바이유다.

  • ▲ 해외 한 블로거가 美뉴욕선물거래소의 유가 가격으로 그린 그래프. 신흥공업국의 성장과 함께 유가가 급등했음을 알 수 있다.
    ▲ 해외 한 블로거가 美뉴욕선물거래소의 유가 가격으로 그린 그래프. 신흥공업국의 성장과 함께 유가가 급등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두바이유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세계 각국, 특히 신흥공업국은 웃돈을 주고라도 석유를 확보하려 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6개월까지 지속될 경우 유가는 최고 150달러를 넘길 수도 있다는 게 세계 금융권의 분석이다. 유가가 150달러를 넘게 되면 인도, 중국 등 신흥공업국 경제는 사실상 마비될 수도 있다.

    석유를 전량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도 전력, 제조업, 유통, 무역, 교통 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석유 수급이 3개월 이상 어려워질 경우에는 시간제 전력공급, 군 훈련 축소, 대중교통 운행 단축 등의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한편 우리 정부는 지난 2월 7일 지식경제부를 중심으로 ‘석유수급 비상대책반’을 편성해 가동하고 있다. 청와대 또한 ‘중동사태 비상대책반’을 가동 중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중동 지역에 집중돼 있는 원유 공급국을 러시아, 남미 등으로 다원화하고 석유 이외 대체 에너지원 수급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석유 소비량이 세계 6위(2009년 기준)인 탓에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Q. 만약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일각의 주장처럼 자원을 무기화할 가능성은 낮지 않은가. 산유국 협력체(OPEC)도 있지 않나. 왜 서방 일부 국가들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집권을 두려워하는가. 독재정권과의 밀월관계가 드러날까 그러는 건가.

    A. 서방 국가들은 중동 국가에서의 반정부 시위가 자칫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 수립으로 이어져 서방 국가들과 대립관계를 형성할까 걱정하는 것이다.

    OPEC 회원국은 알제리, 나이지리아, 리비아, 베네수엘라,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인도네시아, 앙골라 등 12개국이다. 이들 중 리비아, 베네수엘라, 이란 등이 반미 국가-정확하게는 반서방 국가다. 또한 전체 12개국 중 알제리, 나이지리아, 리비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인도네시아가 이슬람이 국교이며 이 중 절반의 나라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거나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즉 OPEC는 중동 근본주의자와 서방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해낼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 ▲ OPEC 회원국을 세계 지도에 표시한 것이다. 주로 중동 지역에 몰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포함되지 않은 거대 산유국으로는 러시아, 노르웨이가 있다.
    ▲ OPEC 회원국을 세계 지도에 표시한 것이다. 주로 중동 지역에 몰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포함되지 않은 거대 산유국으로는 러시아, 노르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석유 수출량 1위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서방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왕정(王政)’국가이면서 동시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요람이기도 하다. 정치 제도 또한 독재국가에 가깝다. 다른 중동 산유국들도 대동소이하다. 이들은 원유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국민들을 위해 사용하지만 상당 부분은 개인의 소득으로 돌린다. 이자수입 등의 금융 산업을 금기시하는 이슬람 율법을 피하기 위해 중동 왕가들은 서방 금융기관을 통해 투자활동도 한다.

    이런 점을 ‘율법을 거스르는 행위’로 보는 근본주의자들은 ‘왕정 타도’를 내세우며 반정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런 근본주의자들이 집권할 경우 1979년 이란 팔레비 왕정 타도와 같은, ‘선거를 통한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로의 변신’ 가능성이 높다. 이란과 현재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서방 국가는 독재자들과의 커넥션이 노출되는 것 보다는 이란과 같은 국가들이 석유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