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국정원이 국제망신 시켰다’며 흥분국정원 몰락의 시작은 20년 전 정치권이 시작
  • 지난 16일 인도네시아 특사단의 숙소를 뒤진 범인이 국정원 직원으로 알려지자 정치권은 국정원을 ‘내곡동 흥신소’라며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정치인도 국정원이 이렇게 된 게 자신들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문제의 발단 ‘여권 고위 관계자’

    16일 인도네시아 특사단의 숙소에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침입했던 사실은 사건 발생 이틀 후에 알려졌다. 사건 발생 직후 인도네시아 특사단은 노트북에서 자료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기 위해 10시간 이상 경찰 신고를 미루었고 이후 인도네시아 파견 무관 문 某 대령에게 경찰 신고를 부탁했다. 한편 다음날 새벽 국정원 직원이라는 사람이 남대문서를 방문해 ‘보안유지’를 요청했다.

    여기까지의 과정만 보면 다른 사건사고들처럼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좀도둑’으로 파악돼 ‘의전 소홀’로 초점이 맞춰질 수도 있었다. 그 내막이 언론에 알려진 것은 바로 ‘여권 고위 관계자’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여권 고위 관계자’라는 소식통들이 언론에 민감한 정보를 제공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최근 ‘아덴만의 여명작전’ 당시 이를 <부산일보> 기자에게 알려준 자도 ‘여권 고위 관계자’였다. 이번에도 ‘동일인’은 아니지만 다시 ‘여권 고위 관계자’가 등장했다. 이 같은 기밀유출은 ‘여권 고위 관계자’ 뿐만 아니라 정치권 전반에서 이뤄진다는 게 문제다.

    한편 특사단 숙소침입 사건이 알려지자 언론들은 제각각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 ‘소스(Source)’ 또한 대부분 여의도 정치권이다. 이들은 ‘군과 국정원 간의 충성경쟁설’ ‘실세간의 권력투쟁설’ 등 잡다한 ‘설(說)’을 흘린다. 이들이 떠들어 대는 궁극적인 이유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언론에 ‘먹이’를 주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침입’ 아니라 ‘발각’과 ‘보도’

    민간 군사연구가나 정보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의 핵심은 ‘대체 어떻게 했기에 난이도도 높지 않은, 통상작전이 실패하고 그마저 언론에 노출되는가’하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실력으로는 국제 첩보계에서 활동조차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국제 첩보계는 피아식별조차 어려운 곳이다. 이스라엘이 북한 첩보원을 도울 때도 있고, 미국이 이집트의 반정부 단체를 지원할 때도 있다. 프랑스와 같이 대만과 중국을 상대로 이중 작전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

    경제계를 무대로 한 첩보전쟁은 더욱 심하다. 중국은 20년 넘게 잠복하는 ‘슬리퍼 셀(Sleeper Cell)을 심어 美핵무기 기술을 빼내다 붙잡힌 적도 있다. 일본은 70년대부터 통산성 산하 JETRO를 통해 저인망식으로 경제정보를 수집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80년대 중반 美FBI는 자국 내 외국 정보기관의 산업스파이 활동을 보고하면서 위협세력으로 소련, 중국과 함께 우방국인 이스라엘과 한국을 꼽은 적도 있었다.

    이런 치열한 첩보전쟁이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는 것은 첩보를 수집하는 나라든 막는 나라든 이를 공식화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공식화될 경우 양국 간의 외교관계가 무너지는 건 물론 자칫 분쟁까지 날 수도 있다. 반대로 비공식적으로 해결할 경우에는 상대방으로부터 다양한 ‘반대급부’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이번 인도네시아 특사단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것이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私益 위해 國益 버리는 정치인들이 되려 큰소리

    이번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된 국정원 산업보안단 관계자들은 문책받는 게 마땅하다. 작전 실패는 둘째 치고 일이 언론에 노출되었다는 점만 봐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어느 누구도 정치인들의 ‘입’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는 점은 문제다.

    국정원의 해외정보수집과 산업정보수집 기능의 부족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정권이 수사와 정보수집에 능한 요원들을 끌어 모아 ‘산업보안단’을 구성한 것도 이런 지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때 생긴 문제도 조직을 ‘원칙’이 아닌 권력의 ‘관심사’에 따라 운영하다 생겼다. YS정부와 DJ정부 시절 국정원(또는 안기부) 내에 있었던 일들도 마찬가지다. 당시 조직을 엉망으로 만든 것도 정치인들이었다. 그들은 ‘국익’보다는 ‘사익’ 또는 자신들의 ‘주군(主君)’을 위한답시고 정보기관에게 본연의 임무가 아닌 각종 ‘공작’을 강요하며 조직을 엉망으로 만들어 놨다.

    게다가 ‘낙하산 인사’의 요구에 맞춰 리포트를 작성하는 이들이 20년 이상 현장에서 활동하던 요원보다 목소리가 더 커진 것도 이 ‘정치인’들이 정보기관을 점령하면서부터다. 전문요원 양성, 해외공작에 필요한 거점 확보, 지원인력 확보, 현지 ‘소스’ 포섭 등에 거액이 들어가는데도 해외공작예산은 줄이는 대신 ‘국내 정치정보 분야’만 비대하게 키웠다. 정보기관을 이렇게 만든 정치인들이 지금 국정원에게 큰 소리를 친다는 게 우습다.

    이번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의 경우 ‘아마추어’ 냄새가 너무 짙어 국정원 베테랑 요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만약 이 사건이 국정원 요원의 소행이라면, 지금 국정원을 비난하기에 앞서 지난 정권의 ‘여권 고위층’들부터 ‘석고대죄’해야 한다. 이런 ‘아마추어’가 ‘국익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도록 만든 게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