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촌 장관과 조희문 위원장  
     
     조 위원장은 좌파세력으로부터 무수한 총칼을 맞으면서도 결국 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 운영 주체를 개혁해냈다. 그리고 유 장관의 칼을 맞았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발행인)
      
     몇 년 전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에서 각 일간지 신문사를 방문했을 당시 한 대표적 보수 일간지의 대표이사는 필자에게 “자네는 얼마든지 중도를 할 수 있는데 왜 극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회원사들은 “아니 변희재가 극우면 우리는 뭡니까”라며 농담 삼아 응수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중도가 바람을 타고 있다. 여기도 중도, 저기도 중도다. 그런데 중도를 주장하는 정치인이든 학자든 아무리 봐도 중도를 제대로 공부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최소한 진짜 중도라고 자부하는 필자 기준에서는 말이다.
     
     서양 철학자 중 중도라 분류할 수 있는 학자는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와 존 스튜어트 밀이다. 물론 버크는 보수파로도 분류되지만, 버크의 비판 행위를 보면 제대로 된 중도주의자의 면모가 드러난다. 버크는 기존의 프랑스 혁명 당시 낡은 봉건체제도 비판했지만, 원칙과 도덕을 완전히 버린 혁명세력도 비판했다. 버크의 비판은 이념의 방향성 보다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식과 태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존 스튜어트 밀부터 김지하까지, 치열한 비판이 바로 진짜 중도
     
     존 스튜어트 밀의 경우도 영국의 전근대성을 가장 치열하게 비판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유에 해악을 끼칠 수밖에 없는 공산세력도 비판했다. 그 안에서 가장 인간에게도 도움이 되는 제도를 연구했고, 나중에는 직접 국회에 진출해 여성인권 등 개혁입법도 추진했다. 놀라운 것은 존 스튜어트 밀의 선거 공약이 “지역구를 위해서 일하지 않겠다”였다는 점이다. 대표적 자유주의 경제학자 이근식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공약을 내세운 존 스튜어트 밀보다도 이런 사람을 당선시킨 영국 국민의 정치의식이 더 위대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시간만 나면 모조리 지역구로 달려가는 18대 초선 국회의원들이 새겨봐야 할 사례다.
     
     국내에서는 김지하 시인과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대표적인 중도주의자들이다. 이들의 특성은 치열한 내부 비판이다. 운동권의 인명 경시 문화를 비판하며 생매장을 당했던 김지하 시인이나,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의 킹메이커 역할을 했으면서도 정권이 잘못 가면 가차 없이 비판에 나섰던 강준만 교수의 태도가 바로 중도인 것이다. (편집자 주: 강준만은 패당주의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본다.)
     
     김지하 시인은 “중도는 가운데도 아니고,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다” “중도는 때로는 극좌의 모습으로도 극우의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해석한 바 있다. 우파세력 내 중도의 탈을 쓰고 있는 기회주의적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반드시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다.
     
     KBS에서 김미화를 고소하고 독립신문이 김미화의 SBS 허위공문 유포를 고소했을 때, 필자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김미화에 대한 대응이 잘못됐다” “김미화를 키워주고 있다”는 조언을 받았다. KBS는 결국 굴욕적인 수준으로 김미화에 머리를 숙였지만, 최소한 KBS 측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KBS의 경영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김미화와 화해하라는 강압을 받았을지 뻔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진중권이나 김미화와 일체 타협하지 않는 이유는 이념의 문제와는 전혀 다르다. 그들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내부 비판을 해야 하는 중도주의자 입장에서는 일체의 거짓말을 용납할 수 없다. 거짓말과 허위사실 유포를 통한 선동은 철저한 패거리주의자들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김미화가 아무리 거짓말을 해대도 공영방송 MC 자리에서 절대로 쫓겨나지 않는 것도 바로 MBC노조의 패거리주의 때문이다. 자기 패거리의 밥그릇에 도움이 된다 하면 심지어 살인을 해도 넘어가는 것이 패거리주의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중도주의자가 싸워야할 대상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패거리주의로 비롯된 거짓과 사기와 기만술인 것이다.
     
     그런데 김미화와 타협을 하라?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바로 김미화와의 타협을 주장하는 사람들일수록 자신들이 마치 중도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현실이다. 대충 거짓선동 세력들의 밥그릇을 챙겨주며 히히덕거리고 다니면 그게 중도라고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 건도 마찬가지다. 조 위원장의 자체 이념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좌파 정권 10년 간 완전히 편향된 영진위를 개혁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조 위원장은 좌파세력으로부터 무수한 총칼을 맞으면서도 결국 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 운영 주체를 개혁해냈다. 일방적으로 좌파만 지원받던 독립영화 지원심사에서도 과감하게 그대로 놔두면 지원대상이 될 수 없는 북한인권 영화를 지원하도록 노력했다. 영진위의 방향을 정상적으로 바꾸려던 작업이었고, 결국 이 때문에 해임됐다.
     
     이념세력 제쳐놓겠다는 유인촌 장관의 위험한 발상
     
     유인촌 문화부장관은 “영화계의 이념논쟁은 쓸데없는 것이며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제쳐놓고 영화산업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영진위가 할 일을 적극적으로 논의해 주길 바란다”고 발언했다. 유 장관이 처한 현실, 그리고 그의 선의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실천적 관점에서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쓸데없는 이념 논쟁을 벌인 쪽은 감사원 횡령 혐의 등으로 운영권이 박탈당한 뒤 거짓 선동에 앞장선 친노 영화단체들이다. 유 장관의 생각대로라면 이들 세력을 완전히 제외시켜야 한다.
     
     그런데 왜 문광부는 바로 이들 세력의 대표적 단체인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조희문 위원장 해임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는가. 그리고 왜 이들 세력의 이권에 맞도록 독립영화전용관을 직영으로 넘겨주려 하는가. 그리고 이들 세력의 횡포에 맞서 싸우려는 정당한 세력을 왜 이념세력으로 묶어버리는가. 즉 유 장관의 발상대로라면 이미 기득권을 확보한 친노좌파 세력은 문화부의 지원을 통해 유유히 그릇된 방식으로 밥그릇을 찾게 되고, 워낙 세가 미약한 우파세력은 전멸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지만, 필자는 단 한 번도 필자 스스로 우파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정확한 이념은 존 스튜어트 밀의 사회적 자유주의 정도로 분류될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 자체가 좌파와 우파 모두로부터 독립돼있긴 하지만 ‘좌’ ‘우’ 둘 만으로 분류하면 좌파에 가가깝다. 즉 친노좌파 세력의 거짓행태에 대한 필자의 비판은 실은 내부 비판인 셈이다.
     
     필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파사회에 함께 일하고, 그들을 돕는 이유는 현 정부의 이상한 중도 정책이 공정하기 않기 때문이다. 조갑제닷컴에 올라오는 칼럼들을 한번 보라. 조갑제닷컴 논객들의 이념이 필자와 다르다 해도, 필자로서는 그들이 근거로 내세우는 사실이나 주장의 틀린 점을 찾아낼 수 없다. 이들을 극우세력으로 몰아붙이려면 이들이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국가주의 선동을 하고 불법적 폭력을 저질러야 하는데, 이들이 그런 적이 있던가. 이들이 극우로 몰려있는 것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대는 친노세력의 선동 탓이다. 그럼 중도주의자라 자칭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와 싸워야 하는가.
     
     중도주의자는 극우로 몰리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
     
     중도주의자는 정정당당해야 한다. 설사 올바른 주장을 하다가 극우파로 몰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이 진정으로 필요한 주장이라면 목숨을 내걸고 해야 한다. 존 스튜어트 밀, 에드먼드 버크, 김지하, 강준만 모두 그렇게 실천해왔다. 지금 언론에 중도를 떠드는 정치인이나 학자치고 이런 실천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말이다.
     
     중도는 가장 어려운 길이다. 부당한 일이 벌어지면 그 누구와도 싸워야 하고, 좌우 양 진영 모두의 동의를 받기 위해서라면, 미래에 필요한 새로운 이슈를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 이 때문에 실제로 대한민국에 사이비 중도주의자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필자 스스로 중도라 자칭한 적도 없다.
     
     김미화 앞에서 머리 숙이는 게 중도라 주장하는 미친 사람들, 정당한 방식으로 개혁한 독립영화전용관을 다시 거짓세력에 돌려주는 걸 탈이념이라 이야기하는 반쯤 돌은 사람들 때문에 자꾸 진짜 중도의 길로 떠밀려 가고 있을 뿐이다.(변희재 발행인이 말하는 것을 사회윤리학에서는 중도주의가 아니라 보편주의(universalism)이라고 부른다. 보편주의는 분파주의(패당주의/particularism)와 대치되는 개념이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발행인: http://bi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