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주년 맞은 KBS '가요무대' 19년 진행 김동건 아나운서
  • "제 이름이 셋입니다. 하나는 김동건이고, 또 하나는 아나운서, 그리고 세 번째가 '가요무대'입니다."
    올해로 25주년을 맞은 KBS 1TV '가요무대'의 산증인인 김동건(71) 아나운서는 이렇게 말하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활동 중인 최고령 아나운서이자, 한국아나운서클럽 회장으로 한국 아나운서의 대명사인 그는 '가요무대' 25년 역사 중 19년을 함께 하면서 대중에게 '가요무대'와 떼려야 땔 수 없을 정도로 각인된 인물이다.

       실제로 '가요무대'가 최근 ''가요무대' 하면 떠오르는 것'에 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고향' '어머니'에 이어 '김동건'이 순위에 올랐다. 1985년 11월 '가요무대' 3회 방송부터 마이크를 잡았던 그는 2003년 6월16일까지 18년간 832회를 진행하다 7년 만인 지난 5월17일 다시 '가요무대'로 돌아왔다.

       "시청자들이 이렇게 생각해주시는데 제가 어떻게 함부로 하겠어요. 이 프로그램이 25년간 이어지도록 사랑해주신 시청자께 고맙고 해외 700만 동포도 너무 고맙습니다."

    11일 '가요무대'의 녹화장에서 만난 그는 사실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했다. 25년을 줄곧 진행했으면 모를까, 중간에 7년을 쉬었고 복귀한 지 5개월밖에 안됐다는 이유에서였다. 7년간 진행해온 후배 전인석 아나운서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가요무대'를 19년간 지켜온 그의 후배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식을 줄 모르는 그의 인기비결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렵게 말문을 연 그는 1시간여 성심을 다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 다음은 일문일답.

       --이 프로그램이 25년간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나.

       ▲시작할 때만 해도 당시 시청자였던 연세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면 어쩌나 했는데 그건 기우였다. 나이 많은 사람은 자꾸 생겨났고 그 시절 사랑받던 노래는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 '목포의 눈물' '눈물젖은 두만강' 같은 곡들은 80-90년이 지나도록 사랑받는다.

       --그래도 노래의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

       ▲25년이 흘렀지만 트로트 장르를 다루는 프로그램은 몇개 없었고 트로트를 부르는 젊은 가수가 별로 없으니 신곡도 별로 없었다. 오죽하면 '가요무대' 차원에서 새롭고 발랄한 신인을 발굴해야하지 않겠냐는 말도 나온다. 그래서 레퍼토리의 변화는 별로 크지 않았다. 우리가 그간 튼 곡 수가 2만3천곡이다. 그런데 중복해서 튼 곡이 많다. 노래라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곡은 매주 들어도 좋은 법이다. 또 '가요무대' 이전에 만들어진 곡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소화하기도 힘들다. 다만 예전에는 한이 깃든 노래들을 주로 불렀다면 요즘에는 즐거운 노래가 많다. 대중가요라는 것이 그 시대의 거울인데 '나그네 설움'이 나왔던 일제시대와 지금의 정서가 같을 수는 없지 않겠나.
    --그사이 객석의 반응은 어떻게 바뀌었나.

       ▲예전보다 훨씬 요란하다.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박수뿐만 아니라 소리도 지른다.

       --꾸준히 오는 관객도 있나.

       ▲예전에는 있었다. 초창기부터 10년 이상 할머니 서너 분이 매회 오셨다. 누구도 못 말렸다. 그때는 입장권을 나눠주던 시절이라 새벽 6시부터 와서 줄 서서 들어오셨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인터넷으로 사연을 보내면 그중에서 채택된 분들께 표를 드리기 때문에 꾸준히 오고 싶어도 못 오신다. 경쟁률이 10대 1에 이른다.

       --그간 관객들에게 선물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늘 오시던 할머니 한분이 있는데 항상 껌을 하나씩 주셨다. 오랫동안 손에 쥐어 흐물흐물해진 껌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껌을 안 씹는다. 껌이라는 게 단물만 빨고 버리는 것 같아 싫고 그것을 딱딱 소리내며 씹고 있는 것도 싫다. 하지만 선물을 안 받으면 실망하실테니 받으면 '왜 안 씹냐'고 하셨다. 그래서 '방송 끝난 후 씹을게요'라며 넘겼다. 그 선물은 받았지만 다른 선물은 받으면 안된다. 방청객들에게 왜 선물을 받나. 와주시는 것만도 고마운데.

       --'가요무대'를 하며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인가.

       ▲의학자들이 오래 살 수 있는 비결로 꼽은 10가지 중 노래부르기가 상위에 들어가 있더라. 노래가 얼마나 건강에 좋은지 보여주는 것 아니냐. 이렇게 훌륭한 프로그램을 오래도록 진행할 수 있다는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

    --아나운서 인생 48년째다.

       ▲참 오래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나운서 꿈을 꾸고 대학교 1학년 때 시험을 봤는데 그때 어머니가 춥고 배고픈 직업이라고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때 내가 3년만 해보고 그때 가서 아니다 싶으면 관두겠다고 시작한 게 어느새 50년을 바라보고 있다.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아나운서가 인기 직업이다. 방송국 공채를 하면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다.

       ▲대통령도 길어야 5년밖에 못하는데 내가 50년 가까이 아나운서를 할 수 있는 이유가 뭔지 아나. 높은 자리가 아니라서 그렇다. 권력, 돈과 거리가 먼 직업이기 때문이다. 만약 권력, 돈과 관계가 있는 직업이라면 누가 50년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후배들에게 늘 말한다. 얼굴을 팔아 유명해지기는 하지만 너무 잘난척하지 말라고. 아나운서의 인기가 높아진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다워야 한다. 그럼 어떤 것이 아나운서다운 것이냐, 아나운서다운 것이 아나운서다운 것이다. 난 여기까지만 후배들에게 말한다. 나머지는 자기들의 몫이고, 그것도 못알아들을 정도면 아나운서 하지 말아야한다.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들이 인기를 끈다. 아나운서의 필수 덕목은 무엇인가.

       ▲아나운서는 우리말을 지켜야한다. 불어가 왜 아름다운지 아나. 연극 단역배우도 사투리를 못쓰기 때문이다. 영국은 BBC의 언어, 일본은 NHK의 언어가 표준말로 인정받듯, 한국은 KBS 아나운서들의 말이 표준어가 되길 바라며 난 지금도 일을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나운서가 품위가 있어야 한다. 그게 굉장히 힘들고 그 역할이 정말 막중하다.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도 욕을 빼고는 대화를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참 개탄스럽다. 그 나라의 수준은 말이 정한다. 우리나라처럼 욕이 많은 나라도 없다. 10년 목표로 어린아이부터 무섭게 바른말 교육을 시켜야한다. 이런 때일수록 아나운서들이 무게있게 우리 말을 지켜야한다. 저속한 것은 재미있는 게 아니라 저속한 것일 뿐이다.

       --아나운서로서 장수의 비결이 뭔가.

       ▲'저 사람 왜 아직도 나와'라는 소리 나오면 얼른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찾아주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몸은 건강한 편이다. 술은 안 마시고 담배도 끊었다. 술 마시는 자리가 제일 힘들다. 운동은 골프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