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칼진 목소리

    얼마 전에 경희대학교 여학생이 학교 미화원에게 불손한 태도로 막말과 욕설을 했다는 기사가 게재되었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이 여학생을 ‘여대생 패륜녀’로 크게 보도하고 인터넷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분개하고 이 여학생의 패륜성을 질타했습니다. 미화원의 딸이 인터넷에 올린 글에 의하면 미화원 여성이 휴게실을 청소하고 있는데 몸단장을 하고 있던 여대생이 “(앙칼진 목소리로) 아줌마, 이거 치워요! 이거 왜 안 치워!”하고 말을 하자 미화원 아주머니는 “(멍하게 쳐다보다) 학생, 왜 그렇게 말을 해?”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이 여학생은 “아줌마가 하는 일이 뭐예요? 이런 거 치우는 일이잖아요?” 하고 말했고 미화원은 “우유가 많이 남은 것 같아서... 주인 있는 우유인줄 알고 안 치웠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미화원의 딸이 인터넷에 올린 내용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돌팔매질?"

    이 글이 올라가자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주류 언론에서는 ‘여대생 패륜녀’로 보도했습니다. 주류 방송이나 언론에서는 딸이 인터넷에 올렸던 내용보다 이 여대생의 언어가 더욱 무례하고 거칠게 보도되었습니다. 어느 TV 에서는 여대생이 “이거나 치우고 꺼지세요! “재수 없다!” 라도 보도했고, 환경 미화원은 “아 시끄러워, 난 너한테 사과 받고 나가야 돼. 네가 나한테 욕을 해?” 라고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 내용을 보면 이 여대생은 분명히 버릇과 소양이 없고 인성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젊은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이 여대생에게 분노감이 치밀기 보다는 이 여대생에게 성난 분노의 돌을 던지는 네티즌 들의 들끓는 몰매에 쓴 웃음이 나왔습니다. “뭐 이정도 막말을 가지고 이렇게 흥분해야 하는 걸까?” “이정도 폭언을 가지고 패륜녀라 할 수 있을까?” “이 보도의 객관성이 어느 정도 정확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지나가고 가장 크게 자리 잡은 생각은 “누가 누구에게 돌팔매질을 해?” “저네들은 더한 막말을 하면서 뭘 그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주류 언론의 낙인 찍기

    딸이 인터넷에 올린 내용은 사실일 것이고 딸의 입장에서는 그의 말대로 그 글을 올리면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을 것입니다. 이 여대생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언론과 여론이 몰매를 주는 것처럼 ‘패륜녀’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 내용으로 보면 패륜녀는 아닙니다. 이 정도의 발언을 가지고 한 여대생을 ‘패륜녀’로 만든 것에 한국인들의 격한 감정과 센세이셔널한 언론의 일방성이 있습니다. 이 여대생은 정확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전에 이미 여론과 언론에 의해 '패륜아'로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민주적이고 선진적인 국격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절차입니다. 절차가 잘못 되었으면 그 내용이 사실이라도 벌을 줄 수 없게 되는 것이 선진국의 재판 과정입니다. 미국에서는 경찰이 범인 용의자를 체포한 다음 피의자에게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사전에 말해주지 않으면 용의자의 자백을 법정에서 채택할 수 없다는 ‘미란다 원칙’(Miranda Rule)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변호하는 권리를 인지시키고 절차를 중요시 하는 문화입니다. 그래야 억울한 사람이 줄어들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취재없는 부풀리기

    딸이 쓴 글을 보면 이 여대생의 말이 거칠고 강압적이지만 인간사에서 있을 수 있는 표현입니다. 화가 나고 못 마땅하면 “아줌마, 이거 치워요! 이거 왜 안 치워!” 하고 앙칼지고 거칠게 말할 수 있고, 미화원이 왜 말을 그렇게 말하느냐고 반문하면 “아줌마가 하는 일이 뭐예요? 이런 거 치우는 일잖아요?”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 거친 말은 결코 패륜적이 아닙니다. 이미 언쟁으로 들어가면 말이 더욱 거칠어지고, 이것보다 더한 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론과 언론은 이 여대생을 더욱 나쁜 여성으로 만들기 위해 표현을 더욱 격하고 극악하게 각색을 했습니다. 가장 분하고 억울한 것은 미화원의 딸일 텐데, 딸의 표현보다 여론과 언론의 표현이 더욱 격합니다. 한 다리 건너고, 다른 입으로 옮겨가면서 여대생은 더욱 나쁜 사람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이 여대생을 더욱 패륜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인용을 하지 않고 말을 과장하고 부풀리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몰매를 잘 주고 떼를 지어 흥분하는 여론과 언론의 비이성적인 감정의 격입니다. 균형 감각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나쁘다고 지탄받는 사람은 더욱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고, 훌륭하다고 칭찬받는 사람은 성인처럼 더욱 훌륭하게 치켜 올립니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평가를 받는 격이 사라집니다.

    여대생 인격살인

    결과적으로 이 여대생이 잘못한 것으로 밝혀지고, 이 여대생이 사과를 했다고 해서 여론이나 언론이 이 여대생을 패륜녀로 몰아간 것을 정당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 과정이 인격 살인이었습니다. 어머니 같은 미화원에서 막말을 한 여대생이 무슨 인격이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 또한 인격이 부족합니다. 설사 패륜아라고 해도 그에게는 보호받아야 할 인격과 존엄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된 상황이 되면 여대생은 아무 할 말도 없게 됩니다. 여론의 몰매가 억울하더라도 매를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조사가 끝나서 정확한 사실 규명을 하기 까지 이 여대생은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이 규명된 뒤에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자초지종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지도 않고 입에서 전해지는 구전을 사실처럼 단정하고 냄비 물 끓이듯이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황색 언론의 숫법입니다. 황색 언론과 황색 여론은 격이 없고,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 내고 가슴에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패륜 욕하는 패륜아들

    이 여대생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에 쓴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고 더 큰 것에 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냐? 하는 위선에 대한 반문이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욕하는 게 아니냐? 하는 뻔뻔스러움에 대한 냉소입니다. 한국에서 이 정도의 막말을 했다고 해서 ‘패륜아’가 된다고 하면 오늘 한국 젊은이들의 태반이 패륜아가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이 여대생을 패륜녀라고 흥분하면서 난타를 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여대생 보다 더한 막말과 폭언을 매일같이 인터넷에서 퍼붓고 있을 것입니다. 이 여대생이 우유 통을 치우지 않았다고 미화원 아주머니에게 무례하게 말한 것은 패륜이고, 인터넷에서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고 상상하기 어려운 폭언과 살인적인 말을 하는 것은 패륜이 아닙니까? 여대생은 얼굴 앞에서 말을 했기 때문에 패륜이고, 얼굴이 안 보이는 뒤에서 공개적으로 폭언하는 것은 패륜이 아닙니까?

    인터넷 폭도들

    어머니 같은 분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면서 이 여대생을 퇴학시키고, 얼굴 이름 공개시켜 생매장 하라고 흥분하는 사람들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당신들은 여대생이 말한 내용보다 더욱 극악하고 포악한 언어로 당신들의 아버지, 할아버지 같은 사람들에게 인륜을 저버린 말을 쏟아내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인터넷에서 그렇게 때문에 괜찮다고요? 보이지 않는 곳이라고 해서 아버지 할아버지 같은 사람에게 “대갈통을 빠숴버리겠다” “늙은이가 노망들었냐! 코 쳐 박고 뒈져라!” 이렇게 반인륜적인 폭언을 하는 당신들에게는 아버지 할아버지도 없는지요? 그러면서 여대생이 미화원 아주머니에게 당신들이 퍼붓는 폭언과는 상대도 안 되는 거친 말을 했다고 해서 그렇게 흥분할 수 있습니까? 인터넷에서 광포한 인격 살인자, 인륜을 저버린 패륜아가 된 당신들의 신원을 공개하는 법을 만들라고 하면 당신들은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찾으면서 입에 거품을 물겠지요?

    당신들은 사과 안하나?

    경희대 여대생은 사과를 해야 하고 그 여학생 보다 더한 막말을 하는 당신들은 사과를 하지 않습니까? 작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했을 때 노란 리본인지 검정 완장인지를 찬 젊은이들이 아버지보다 나이가 더 많은 할아버지 같은 분에게 막말, 폭언을 하는 것을 인터넷 동영상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그 어른에게 사과를 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미국 소고기가 광우병에 걸린다고 길길이 뛸 때 그것을 비판했더니 무법적인 인터넷 폭도들이 무자비하게 폭언을 쏟아내더군요. 내 신념과 내 주장을 강요하면서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에게 쌍욕과 폭언을 하는 것은 이미 그 신념과 주장이 허구이고 정당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인간의 정의와 신념의 바탕에 인간성과 인륜과 바른 심성이 없으면 그 정의와 신념은 죽은 것입니다. 그런 신념과 정의에는 인격이 없습니다. 신념과 정의에 인격이 없으면 그것은 공허한 언어의 유희입니다. 경희대 여대생보다 이런 사람들이 더 패륜적입니다.

    똥 묻은 개, 겨묻은 개

    똥 묻은 개가 겨 묻는 개를 노도같이 짖어대는 우스꽝스런 개들의 정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정중하고 예의 있는 반론을 제기해야 합니다. 이것이 선진 문화이고 교양인의 인격입니다. 여기에는 보수 진보가 따로 없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개의 무리처럼 똥과 겨를 못 가리면서 상대방의 의견에 패악한 욕설을 퍼부으면 자신들이 전파하려는 정의와 신념이 오히려 더 많은 거부감을 일으키고 지지를 잃습니다. 경상도 전라도를 극단적으로 욕하는 천한 언어나, ‘좌빨’ ‘수구 꼴통’ 같은 저급한 언어를 청소하지 않고는 한국의 인터넷 문화가 품위 있게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격이 이보다는 높아져야 합니다. 자기 의견을 말할 때 상대방 앞에서 말하는 것 같은 예의와 성실성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