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촬영이 끝난 후 한 아이가 내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먼저 다가가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 말에 용기를 내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작디작은 그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 아무것도 아닌 그 일이, 그 순간 나와 그 아이에게는 작은 기적이었다. 마주잡은 두 손으로 모두 느껴졌다. 얼마나 아픈지‥얼마나 힘든지‥자유롭고 싶다고‥장애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그 모든 것들이 두 손의 온기를 타고 나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부르튼 두 발등 위로 우리의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벗겨지고 찢어진 두 발이 내 손에게 말했다. 도와달라고‥그 눈빛은 원망이 아닌, 도움의 요청이었다."

  • 지난 4월 채동하가 MBC ‘W’ 제작진과 함께 네팔의 밀알학교 추가건축현장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 ⓒ MBC 방송 캡처
    ▲ 지난 4월 채동하가 MBC ‘W’ 제작진과 함께 네팔의 밀알학교 추가건축현장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 ⓒ MBC 방송 캡처

    1년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SG워너비의 채동하에서 ‘가수 채동하’가 되기까지. 무엇이 그를 망설이게 했을까. 말도 많았다. “연기할 생각으로 탈퇴했다” “팀 멤버들과 사이가 안 좋았다” “인기가 오르니 건방져졌다‥” 숱한 루머와 낭설이 난무했지만 채동하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무작정 떠난 해외봉사‥그 곳에서 만난 검은 천사들

    “그때가 처음이었죠. 해외봉사란 걸 하게 된 게‥, 무작정 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기회가 저한테 찾아온 건 마치 운명 같다고 생각돼요.”

    지난해 1월 ‘팀 탈퇴’를 선언한 채동하는 무작정 필리핀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 3개국을 돌며 현지인들에게 무료급식과 의료봉사활동을 펴는 다일공동체의 사랑 나눔 행사에 동참하게 된 것.

    “그때 만 해도 해외봉사에 대한 뚜렷한 계획도 없었고 연예인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안 좋은 시선도 가졌던 게 사실이에요. 심지어 ‘해외봉사? 우리나라에도 불쌍한 애들 천진데‥,’ 라는 생각까지 했었죠. 그런데 막상 제가 그곳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정말 처참했어요. 그 앞에선 어떤 명분이나 가식도 있을 수 없었어요. 아이들 모두가 볏짚으로 만든 집 안에서 줄줄 새는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가하면 한 눈에 보기에도 비위생적인 환경에 몸이 불편한 아이들 천지였어요.”

  • “하지만 이상하게도 애들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의문이 들었죠. 저 아이들은 뭐가 좋아서 저리 웃는 건지‥, 순간 깨달았어요. 그들은 아침에 눈 떠서 그저 친구들과 노는 게 행복한 거로구나. 발달된 바깥 세상은 알지도 못한 채‥, 빵 한 조각에 웃음 짓고 울고. 이 아이들은 이처럼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고 있는데 난 뭔가? 내가 잘못 생각한 게 많구나. 나는 다 가졌는데, 이들은 이런 것들에도 감사하고 있는데, 당시 난 왜 그렇게 힘들어 했을까?”

    보름동안 3개국을 돌며 정말로 많은 생각을 했다는 채동하는 아이들과 만나면서부터 한국에서 잔뜩 짊어지고 온 걱정거리가 일순간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내가 가진 문제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자 바로 안정기에 접어들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이 일부러 나를 그리고 보내신 거 같아요. 신과 딱 맞닥뜨린 느낌이랄까요. 모든 상황들이 다 이해가 됐어요. 그때는 누구 때문에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 입장에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해가 됐죠.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정리가 됐어요.”

    채동하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해외봉사활동에 동참했다. 올해 초 캄보디아 어린이의 생명을 지키는 기금 마련을 위해 열린 ‘Beyond the Dream(비욘드 더 드림)’ 자선콘서트에 참석하는가하면 지난 4월엔  MBC ‘W’ 제작진과 함께 네팔의 밀알학교 추가건축현장을 찾아 장애인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연예인 자선봉사단체 스타도네이션 ‘별똥별’의 회원이기도 한 채동하는 자선콘서트와 고아원 방문, 애장품 경매 수익금 기부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펼치며 소외된 이웃에 대한 온정의 손길을 펴는데 주저함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어릴 때 흙으로 만든 집에서 살았어요. 당시 유일한 놀이터가 우물이 있던 공터였죠. 그래서 주위의 어려운 분들을 보면 마음이 찡해요. 뭔가 통한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제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봉사활동에 동참한 이유는 사실 따로 있어요. 제 정체성을 발견했다고나 할까요? 특히 탈퇴를 결심하고 처음으로 떠난 해외봉사에서 정말 느낀 점이 많았어요. 내 자신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 그 아이들이 제게 힘을 줬어요. 덕분에 오늘 이렇게 컴백을 하게 됐구요.”

    탈퇴할 당시 모든 것을 버리고 싶었다는 채동하. 당시 소문만 무성했던 ‘진짜’ 탈퇴 이유에 대해 채동하는 말문을 열었다.

    "인기그룹에서 탈퇴‥고민됐지만 후회하진 않아"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무작정 쉬고 싶었어요. 계속해서 쫓기듯 살다가 내 자신이 그냥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어요. 마음만은 정말 ‘은퇴’였습니다. 나중에 번복하면 또 문제가 되기 때문에 감히 입 밖에 내진 못했지만‥. 새로운 것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었어요.”

  • “진짜 솔로 데뷔가 목표였다면 탈퇴를 하고 바로 앨범을 냈겠죠. 아니면 올 해 초에 냈던가‥. 따라서 탈퇴 원인이 모호할 수밖에 없었죠. 은퇴하겠다고 말하기엔 너무 거창하고 딱히 설명할 것도 없었어요. 때마침 다른 멤버들보다 1년 먼저 계약이 끝나는 상황이었죠. 동생들에게 같이 쉬자고 말하고도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어요. 생계 문제도 있었고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팀 전체에 폐를 끼칠 순 없었죠. 하지만 내가 이렇게 힘든데, 진심으로 노래를 불러야 되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다행히 다시 재기의 의지를 갖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모든 게 다 캄보디아와 네팔 등지에서 만난 아이들 덕분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뭐가 문제였는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다 남의 탓으로 돌렸죠. 돌이켜 보니 내 문제였더라구요. 그 때 조금만 마음을 다르게 먹었다면, 덜 힘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채동하가 탈퇴한 이유를 놓고 당시 가요계에선 ‘솔로 욕심’ 때문이라는 주장과 함께 ‘팀 내 불화설’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작년 1월 말 기사가 나가서 그때 다들 알았을 거예요. 제가 탈퇴한다는 사실을‥. 그전까지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정말 고마운 건 당시 동생들이 ‘형 서운해요’라는 말도 않고 그냥 제 결정 자체를 이해해 준 점입니다. 아마도 제가 말은 안했지만 그만 둘지도 모른다는 느낌은 계속 받았을 거예요. 멤버들하곤 지금도 연락을 자주 하면서 아주 친하게 지내요. 불화 때문에 제가 팀을 나왔다고 하는 건 정말 인정할 수 없어요.”

    “인기절정을 달리던 그룹에서 스스로 나온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후회하진 않습니다. 탈퇴 결정을 내리기 전에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이 단 1%라도 후회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탈퇴하지 말자는 거였죠. 오랜 기간 동안 혹시라도 나중에 미련이 남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결론은 하나였죠. 지금 생각해봐도 제 스스로 참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채동하는 팀을 나온 뒤 뮤지컬 ‘안녕, 프란체스카’에 출연하고 드라마 ‘씨티 홀’ ‘달콤한 나의 도시’ 등의 OST에 참여하며 활동 폭을 넓혀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싹트기 시작한 솔로 앨범에 대한 꿈은 올해 초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탈퇴 얘기가 나돌던 작년 1월부터 너무 힘들었습니다. 제가 말하지도 않은 부분이 너무 많이 기사화됐어요. 그 당시는 괜히 와전될까 두려워 말을 아꼈지만 당시 제 상황에 대한 설명을 제 팬들에게 만큼은 했어야 하는 게 옳았죠. 그래서 준비한 게 에세이 앨범입니다. 단 몇 줄의 기사로 그동안의 심경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어요?"

    실제로 포장부터 고급스런 한 권의 에세이집을 연상케 하는 채동하의 솔로 컴백 앨범은 제목부터가 ‘채동하 에세이(CHAEDONGHA ESSAY)’다. CD와 더불어 예쁜 ‘별책부록’이 딸린 느낌이랄까. 한장한장 정성스레 들어간 사진 컷들은 어찌 보면 채동하의 화보집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10년간 써내려간 고백, 기다려준 팬들 위해 공개"

    하지만 수려한 포장과는 달리 채동하의 에세이 곳곳엔 이른 나이에 데뷔, 인기의 부침을 고루 겪었던 그만의 고민과 번뇌의 흔적들이 느껴진다.

    채동하의 에세이엔 지난 2002년 솔로로 데뷔할 무렵부터 SG워너비로 활동하던 모습, 그리고 팀을 탈퇴해 ‘홀로서기’에 나서기까지 채동하가 느끼고 만난 모든 것들을 담담한 필치로 풀어냈다.

    이중엔 지난 7월 전남 통영의 한 모텔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한 자신의 첫 매니저를 추모하는 글부터 어린 시절 심장병(심실중격결손증)에 걸려 수술을 받았던 사실, 2004년 SG워너비의 데뷔 앨범 성공으로 가요차트 1위를 휩쓸던 당시에도 돈이 없어 신문배달을 했던 기억, 600원으로 빵과 버스비를 놓고 고민하던 일 등 그간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채동하의 개인적 고백들이 담겨있다.

    “어려서부터 일을 일찍 시작했어요. 진짜 맨 땅에 헤딩이었죠. 그냥 부딪혔어요. 돈도 없고 빽도 없던 시절, 믿었던 사람한테 사기를 당하고‥. 언제는 앨범을 내 주겠다고 하고선 달아난 사람도 있어요. 말도 안 되는 댄스그룹에 들어갔다가 나온 적도 있고‥, 당시엔 성공해야겠다는 집념이 강해서 스스로 벽이 많았던 것 같아요.”

  • 그러던 그가 눈을 떴다. “이젠 사는 게 다 기적처럼 느껴진다”는 채동하.

    “원래 에세이 제목이 ‘기적’이에요. 타이틀이 너무 과한 느낌이 들어 뺐지만‥,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고 되돌아보면 모든 상황이 저에겐 기적처럼 다가온 순간들이었습니다. 한번은 술에 잔뜩 취해 택시를 탄 적이 있는데 기사 분께서 저를 알아보시곤 ‘노래하는 양반이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충고를 해주셨죠. 그날 이후 술을 끊었습니다. 살면서 주위 분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 것 같아요. 예전 사장님이나 동료들도 그렇고. 저를 오랫동안 기다려준 팬들 역시 마찬가집니다. 이번 앨범엔 쓸데없는 투정 대신 저를 지켜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작사·작곡한 곡 앨범 실려

    처음부터 끝까지 애정이 가지 않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이번 컴백 앨범에 대한 채동하의 느낌은 각별하다. 특히 여섯 살 때 심장병에 걸려 수술을 받던 당시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채동하가 중학교 1학년 시절 작사·작곡한 ‘마음도 사랑도 눈물도’란 곡은 원래 다른 가수에게 주려고 만들었던 노래라고.

    이번 앨범에서도 타이틀곡인 ‘어떻게 잊겠습니까’와 치열한 경합을 벌였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곡이란 평가를 받았다는 채동하는 이외에도 “15년전 오늘..” “너만 보잖아”를 작사·작곡하고 “잘가 바보야”의 가사를 직접 쓰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참여도를 높였다.

    SG워너비 시절 이미 정상을 맛봤던 가수 채동하는 ‘솔로로 나선 이후 새롭게 설정한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빙그레 웃기만 했다. “아직 자신은 만들어져 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그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밝힌 채동하는 “최고를 추구하기 보다 제가 즐기고 제가 만족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오랜 방황 끝에 돌아온 채동하, 그가 들려 줄 삶의 '작은 기적'들이 기다려진다.

    기적

  • 이젠 시간의 흐름이 낯설지가 않다.

    화려했던 나의 20대‥, 그 안에서 난 많은 것을 얻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숨 가쁘게 살아왔던 순간들‥, 그리고 가끔씩 일어난 내 삶의 작은 기적들.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지나간 추억에 감사할 수 있는 것도 나를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도 그리고 내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됐다는 것도 나에겐 너무나 큰 기적 같은 일들이다.

    가끔 눈을 감으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게 너무 고마운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매일 매일 그리운 사람들. 내 노래로 모든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일. 지금 이 순간, 모두가 행복해지는 일. 그런, 작은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길 기대해 봅니다.

    - 채동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