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가난한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지 못해서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이 멈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16개 시도교육청 교육감을 불러 가진 간담회에서다. 2시간 넘게 진행된 간담회 도중 이 대통령 수차례 이같이 말하며 "우리 청소년이 입시에 시달리지 않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나의 소망"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또 "현재와 같은 대학 입시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초·중·고등학교 교육은 변할 수 없다"며 "학생들이 사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교육감들이 점수 위주 교육 관행을 개선해달라"고 지시했다.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비를 줄이자는 '사교육과의 전쟁'을 연일 강조, 강도높은 교육 개혁을 주문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어린 시절 어렵던 가정형편 속에서 진학할 수 있었던 과정과 대학 입시, 그리고 졸업까지의 경험을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오늘날 대통령이 되도록 해준 삶의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먼저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노점상을 하던 자신의 손을 이끌고 야간 고등학교를 가게해 준 담임 선생님이 '첫번째 은인'이다. 이 대통령은 저서 '신화는 없다'에서 가정 형편상 진학을 포기할 상태에 놓였던 자신을 고등학교 진학으로 이끈 선생님과 얽힌 사연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내가 포항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우리 집 형편은 더욱 어려웠다. 집안 형편을 빤히 아는 나는 고등학교 진학은 아예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제쳐 놓고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진학 상담이 있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행상을 그만두고 중앙통 한 모퉁이에서 국화빵을 구워 팔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되는 때였다. 어머니와 함께 국화빵 준비를 하고 내가 학교에 가면 어머니는 국화빵을 구워 팔았다. 학교에 올 시간이 없었다.

    집안 사정을 들은 선생님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너무 아깝구나. 무슨 수가 없을까? 그래, 포항에 동지상고라는 야간 고등학교가 하나 있는데 거기라도 가라. 네가 지금 어려서 모르겟지만 생을 살아가는 데는 중졸보다는 고등학교 졸업장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담임 선생님의 의견을 어머니께 전했지만, 어머니께서는 단호했다. "너는 장사해서 형을 도와야 한다. 장사해서도 잘 살 수 있는 거야." 담임선생님과 어머니의 공방전은 오래갔다. "전체 수석으로 입학하는 학생에겐 등록금이 면제된다. 너는 할 수 있다." 선생님의 마지막 제의를 어머니는 받아들였다. 돈이 들지 않는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신화는 없다, '고등학교 입학 공방'편에서>

    이 대통령은 "꼭 (고등학교에) 가고 싶으면 국비로 공부시키는 체신고등학교에 가볼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장사를 도울 사람이 없지 않느냐"며 진학을 말리는 어머니의 모습에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너무 강하게 갈 수 없다고 하시자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의 수차례 설득 끝에 이 대통령은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등록금이 면제되는 동안만 다닌다는 약속 하에 들어간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3년 내내 주야간 통틀어 1등을 했기 때문이었다.

    두번째 은인은 '무작정' 대입 준비에 나선 이 대통령에게 길을 열어줬던 청계천 헌책방 주인 아저씨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한 이 대통령은 '중학교 선생님이 중졸 졸업장보다는 고졸 졸업장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등학교 졸업장보다는 대학 중퇴가 더 낫겠지. 그러면 시험이라도 한번 쳐보자. 시험에 합격만 하면 학교를 다니지 않더라도 대학 중퇴가 된다'는 생각에 대입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나는 대학 졸업이 목적이 아니라 시험에 학격하는 것만이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청계천 헌책방에 가면 참고서를 싸게 살 수 있다" 이웃 사람에게서 이 말을 들은 후 나는 돈벌이에 나섰다. 이태원 시장에 나가 번 일당을 모아 만든 1만 환의 거금(?)을 들고 청계천으로 나섰다. '대학 입시 참고서 전문'이란 간판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헌책방 주인은 40대 남자였다. "어느 대학이든 상관없어요. 아무 대학이나 갈 수 있는 책을 주십시오" 주인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책이 빼곡한 서가에서 책을 골랐다. 여남은 권의 책을 쌓아 놓고 주인은 주판알을 튀겼다. "삼만 환이야. 아주 싸게 쳐준 거다" "지금 가진 돈이 만 환뿐인데..."

    주인은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욕설을 퍼부으며 불같이 화를 냈다. 너무 심하게 욕을 해대는 바람에 나는 참지 못해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가 학교에 가려고 하나, 그냥 시험이나 보려는 건데" 그 말을 들은 주인은 더욱 기가 막혔던지 더욱 채근했다. "인마, 학교에 다니지도 않을 거면서 왜 시험을 쳐?" 나는 계속 실토했다. 내 얘기를 가만히 듣고 난 책방 주인은 처음에 꺼냈던 책들을 서가에 꽂고는 책을 다시 고르기 시작했다. "이 책으로 공부하면 대학에 갈 수 있을 거다. 있는 돈만 주고가져가. 나머지는 나중에 와서 갚아." 돌변한 주인의 행동에 내가 머뭇거리자 그는 내 등을 떠밀었다. "내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가, 이 촌놈아." 나는 믿어지지가 않아 책을 가슴에 안고 뒷걸음질치다가 냅다 뛰었다. 그가 마음이 바뀌어도 쫓아오지 못할 지점까지 나는 멈추지 않았다.<'청계천 헌책방의 진학 상담 선생님'편 가운데>

    이 대통령은 각종 강연에서 "마음 변하기 전에 얼른 책 들고 나가라"며 성질을 내던 헌책방 아저씨가 한없이 고마왔다고 돌이켰다. 당시 이 대통령은 대입에 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동키호테'식으로 덤벼들었다고 한다. 한 여대 강연에서 이 대통령은 "고려대 입시 원서도 한 삼수생을 따라가서 내게 됐다"면서 "아마 그 친구가 여대에 갔으면 나도 따라 여대에 원서를 낼 정도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세번째 은인은 학비가 없던 이 대통령이 무사히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만들어준 재래시장 상인들이다. 꿈에 그리던 대학 입학에 성공한 이 대통령은 "이제 됐다"고 생각했지만, 상인들은 "어렵게 입학한 학교를 다녀야 한다"며 새벽 시장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소개해줬다고 한다. 또 이 대통령이 이날 언급하진 않았지만 여러 자리에서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자신을 위해 함께 방을 쓰던 근로자들은 많은 부분을 양보해줬다고 소개했었다. 누군가 "잠 좀 자게 불꺼"라고 소리치면 다른 사람들이 "공부한다고 그러니 그냥 둬라"며 자주 말려줬으며, 그들의 배려 덕택이 이 대통령은 공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학 시험을 쳐보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나는 꿈을 이룬 것이었다. 드디어 '대학 중퇴자'가 된 것이었다. 이태원 시장 사람들도 기뻐하면서 등록금은 마련됐냐고 물어 왔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등록금이 필요 없습니다. 합격만 하면 대학 중퇴니까 됐습니다" "무슨 소리야. 최소한 한 학기는 다녀야 중퇴지. 합격하고 등록을 안 하면 아무 소용 없는 거야" 알아보니 과연 그랬다. 시험에 합격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에 봉착한 것이었다.

    어디서 등록금을 구한단 말인가. 대학 중퇴자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었다.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길이 뚤렸다. 내 사정을 알게 된 이태원 시장 사람들이 고맙게도 일자리를 하나 주선해 주었다. 새벽 통행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시장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일이었다. 1학기 등록금만 벌자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나는 쓰레기를 치우며 2학년이 됐고 3학년 때에는 학생회장에 출마하기에 이르렀다. <'청계천 헌책방의 진학 상담 선생님'편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