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해현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 뉴데일리
    ▲ 박해현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 뉴데일리

    소설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이 요즘 탐독하는 책은 유학의 고전인 '근사록(近思錄)'이다. '넓게 배우되 뜻을 독실하게 하여,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일에서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라는 '논어'의 말씀 중 '근사(近思)'에서 제목을 따온 책이다.

    김훈이 이 책에서 좋아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집안은 어렵지만 천하는 쉽다. 집안은 가깝지만 천하는 멀기 때문이다'(家難而天下易 家親而天下疎也). 투박하게 말하자면, 천하 경영보다 집안 단속이 더 어렵다는 얘기다. 묘하게도 김훈이 집필실에서 그 구절을 손가락으로 짚어 기자에게 읽어준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의 돈을 '집'(아내)이 받았다고 시인한 지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하지만 '집은 가깝기 때문에 어렵고, 천하는 멀기 때문에 쉽다'는 말은 작가 김훈의 내면에서 그보다 더 깊은 실존적 울림을 일으킨 듯했다. "사실을 역사화하거나 이념화하는 것을 나는 혐오한다. 일상의 구체성이 없는 것은 모두 탁상공론이다"라고 김훈은 말해왔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설 '칼의 노래'를 대선 후보 시절과 탄핵 정국 때 탐독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래서 혹자는 그의 간결한 유서가 결연하게 일자진(一字陣)을 쳐서 적을 맞았던 소설 속의 이순신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칼의 노래'가 베스트셀러로 각광받았을 때 한 문학평론가는 '칼의 노래'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이순신과 동일시하는 착각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역사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에 더 가깝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경남 남해에 가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을 모신 사당 '이락사(李落祠)'가 있다. '이순신이 떨어진 바다'를 바라보는 그 사당의 이름에는 충무(忠武)나 충절(忠節)이란 그 어떤 이념도 담겨 있지 않다. 김훈은 그 사당 이름과 같은 문장을 지향한다고 했다. 이념화와 역사화의 논리가 없는 그 자체로 명석한 문체의 세계는 김훈의 유토피아인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진 날 김훈은 대낮부터 술에 취해 찾아온 한 젊은 문학평론가와 함께 전직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을 안타까워하면서 통음을 했다. "아무도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말은 '이락사'처럼 간결명료했다. 그날 일산 호수공원에서는 꽃잔치가 한창이었다. "사람들이 뉴스를 듣고도 꽃을 보러 몰려 나와서 좋아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더라. 누군가 죽어도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라고 김훈은 말했다.

    그러나 먼 곳으로 떠난 고인을 붙잡고 아직도 놓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한 정치인의 비극을 영웅신화로 재생산하고 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이 비루한 삶의 대척점에 있는 청결한 죽음의 미학으로까지 승화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장차 정치적 에너지의 젖줄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테지만 그것조차 착각이었음이 드러날 때의 허망함을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일본 소설가 오가와 요코(小川洋子)의 단편 '완벽한 병실'에서 여주인공은 지저분한 생활의 냄새가 나지 않는 청결한 병실에서 불치병에 걸린 남동생을 간호하면서 자신이 마치 천사나 요정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대로 모두 무기질처럼 청결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아무것도 번성하지 않고 아무것도 부패하지 않고, 이대로 내내 동생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은 그의 삶 자체를 완벽하게 표백해서 그의 비극을 이념화·역사화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완벽한 병실'로 만들려는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병실이라도 거기서 생활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병실이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이념화나 역사화를 넘어 신화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 세력들이 아무리 '집안'을 빌미 삼아 '천하'를 어지럽히려 해도 안 되는 일은 안 되게 해야 한다.<조선일보 6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