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윤석호 감독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당시 한국은 IMF라는 사상 최대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그가 연출한 김희선․이승연 주연 드라마 ‘웨딩드레스’에 대해 ‘시대에 맞지 않게 너무 사치스럽다’는 비판이 인 것. ‘웨딩드레스’는 물질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 간의 긴장관계를 그린 드라마였다. 그러니 드라마의 앞부분에는 물질과 사치에 빠진 여인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시 한국 국민은 그 정도 포용력을 보여주기에 너무 여유가 없었다. 그는 본의 아니게 ‘사치 드라마’를 찍는 감독으로 몰리고 말았다.

     그러나 ‘웨딩드레스’ 비판은 결과적으로 그에게 자신만의 작품을 찾게 하는 계기가 됐다. 본래 그가 하고 싶었던, 물질적 현실을 뒤로 한 티 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1998년 ‘순수’라는 드라마를 성공시키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늘의 윤석호를 있게 한 4계절 연작시리즈 ‘가을동화’, ‘겨울연가’ 등의 발판이 만들어졌다.

  • ▲ ⓒ'겨울연가' 홈페이지.
    ▲ ⓒ'겨울연가' 홈페이지.

    1997년 IMF 경제위기는 한국인의 문화코드를 크게 바꿔놓았다. 늘 국가경제 성장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해 왔던 한국인들은 ‘어째서 우리가 이렇게 경제적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라며 삶을 근본적으로 회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 동안 맹목적으로 따라갔던 것과 다른 가치를 찾게 된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대한민국은 첫사랑 찾기 열풍에 휩싸였다. KBS 사람찾기 프로그램 ‘TV는 사랑을 싣고’가 새롭게 주목받았다.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로 시작하는 가수 김광석의 곡 ‘서른 즈음에’는 이 시기 국민가요가 돼 있었다. 이 같은 열풍에 불을 당긴 것은 역시 인터넷이었다. 학교 동창찾기 사이트로 전 세계 홈페이지 접속순위 5위까지 올라갔던 ‘아이러브스쿨’의 등장이 그것이다.

    ‘아이러브스쿨’이 절정의 인기를 누릴 당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람들은 ‘아이러브스쿨’을 통해 자신들의 첫사랑을 만났다. 온갖 언론매체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다뤘고, 이는 하나의 신드롬으로 퍼져나갔다. 인터넷 상에서는 멀쩡하게 잘 지내던 연인들 또는 부부들이 서로의 첫사랑을 찾아 헤어졌다는 이야기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도 지나지 않아 그 열풍은 온데간데없이 사그러 들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페이지뷰가 올라가던 ‘아이러브스쿨’도 기세가 한참 꺾여 사실상 영향력이 사라졌다. 도대체 그 수많은 첫사랑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첫사랑과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현실의 벽을 절감하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너무 어렸기에 첫사랑에 실패했으니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만나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결코 충족되지 못했다. 오히려 더 멀어진 현실을 깨달으며, 미우나 고우나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첫사랑은 이상일 뿐이며, 삶은 곧 현실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포기했다고 이상 전체를 모두 저버릴 필요는 없었다. 첫사랑에 대한 모든 판타지는 한 편의 드라마로서 완벽하게 복원됐기 때문이다. 2002년, 윤석호 감독의 ‘겨울연가’가 ‘아이러브스쿨’ 이후 꺼진 대한민국의 첫사랑을 다시 불러 들였다. ‘아이러브스쿨’ 때와 달리 ‘겨울연가’에 대한 반응은 비교적 차분했다. 이미 ‘아이러브스쿨’로 한 번씩 찾아봤을 첫사랑, 현실과 다름을 절감한 첫사랑, 한국 국민들은 드라마를 통해 혼자만의 첫사랑을 마음으로 확인했다. 한국에서의 ‘겨울연가’ 신드롬은 문화적으로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겨울연가’ 신드롬, 한국과 일본의 같은 점․다른 점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사회현상적 인기를 누리고 있을 무렵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분석이 분분했다. 일단 ‘겨울연가’가 한국에서도 충분히 사랑을 받기는 했지만 전작 ‘가을동화’에 비해 시청률이나 화제성 면에서 떨어진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대체 왜 일본인들이 ‘겨울연가’에 이토록 빠져드는지 처음부터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평론가들은 일본의 과거 로망드라마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향수로만 돌리기에 ‘겨울연가’ 신드롬은 너무 오랫동안 그리고 강하게 지속되고 있다. 또한 ‘가을동화’ 인기에 가려지긴 했어도 ‘겨울연가’ 역시 한국에서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의 영향력은 발휘했다는 점도 지나치게 간과했다. 드라마 대박의 척도인 ‘패션 아이템 유행’ 면에서 ‘겨울연가’는 ‘배용준 목도리’가 크게 유행하는 등 파급력을 과시한 바 있다. 결국 한국과 일본은 같은 신드롬을 겪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한국과 일본이 같은 시기 ‘근원적 사랑의 가치’에 눈을 돌리는 경향을 보였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츠쿠바대학 사회학과 황순희 교수의 ‘‘겨울연가’는 日 사회의 거울’이라는 글은 충분히 검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는 한일월드컵 공동개최로 일본 내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점을 전제로 다양한 분석을 시도한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세계화’를 논하는 것보다 개인의 목표를 달성하고 일상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는 ‘작은이야기’, ‘작은행복’이 중시돼 왔다. 전후 경제대국으로의 국가의 발전을 위해 개인의 행복을 희생하거나, 국가의 발전이 개인의 행복이라고 하는 ‘큰 행복’, ‘큰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가치관에 중요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겨울 연가’는 이러한 80년대 이후의 가치관에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자식에게 물질을 주기보다는 자식과 함께 한 추억을 만들어주자는 광고가 아주 설득력이 있다. 추억이 자신의 것이든 드라마의 주인공들의 것이든 그 주인공들이 즐겼던 음악이었든 추억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소비의 대상인 것이다. 즉,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시간과 행위가 소비의 상품이 된 것이다.”

    황순희 교수가 지적한 일본의 개인적 가치 중시 풍토는, 시기적으로만 다를 뿐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상과 매우 유사하다. 다르게 말하자면 ‘겨울연가’가 한국에서 인기를 얻게 된 배경이나 일본에서 사랑받게 된 배경이나 이유는 같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에서 ‘겨울연가’ 이후 첫사랑 찾기 붐이 일었다는 보도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윤석호 감독은 늘 자신이 한국 드라마를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본에서 보기에는 윤석호 감독의 드라마가 바로 한국의 드라마라 여기기 십상이지만, 사실 윤 감독의 드라마는 한국에서도 매우 특별하다. 그래서 한국 언론은 늘 ‘윤석호표 드라마’라는 말머리를 붙여준다. 바로 황순희 교수가 분석한 ‘겨울연가’의 특징은 한국 드라마의 특징이 아니라 윤석호 드라마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오야마 가쓰미 일본방송인회 대표 역시 비슷한 진단을 내린다. 그는 "한국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부족한 점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일본 내의 한류, 특히 ‘겨울연가’는 40세 이상 여성들 사이에서 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현재 일본에는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가 다수를 차지한다. 40대 이상을 위한 드라마가 별로 없다. ‘겨울연가’는 40대 이상 여성들이 소중히 여기는 순수한 사랑을 그려 인기를 얻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의 시청률 분석에서도 ‘겨울연가’는 30~40대 주부층에서 인기를 얻었다. 상대적으로 20대 남성 시청자는 드물었다. 물론 윤석호 감독의 드라마가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겨울연가’는 윤석호 드라마 중에서도 특이한 경우이다. ‘겨울연가’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가을동화’만 해도 10대와 20대가 주 시청층이었다. ‘겨울연가’는 ‘가을동화’로부터도 멀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연이 아니다. 윤석호 감독은 ‘겨울연가’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했었고, 결국 이를 과감히 시행했다. 윤석호 감독은 ‘겨울연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간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던 현실을 완전히 뿌리쳐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겨울연가’ 현실을 제거하며 얻은 공감

    국내에서 ‘겨울연가’가 방영되던 시점, 시간이 흘러갈수록 언론의 평가는 점점 더 인색해졌다. 문학평론가 김탁환은 ‘겨울연가’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준상’과 ‘민형’을 무리하게 결합시키는 이야기구조를 비판했다. 김탁환의 시각은 ‘겨울연가’를 마음껏 즐기면서도 왠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에 아쉬운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평론가들은 기억상실이라는 방법으로 ‘준상’과 ‘민형’을 하나로 복원시키는 시도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른바 막장드라마 코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장드라마 코드는 현실성 측면에서 크게 문제가 된다. 현실의 인간은 첫사랑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현실의 인간은 첫사랑의 실패를 겪고, 그 다음 사랑으로 나아간다. 한국인들이 ‘아이러브스쿨’을 통해 첫사랑을 만난 뒤 다시 현실로 돌아갔듯이 말이다.
     윤석호 감독은 ‘겨울연가’ 이전에도 바로 이 현실성 문제 탓에 늘 비판을 받아왔다. ‘가을동화’가 ‘겨울연가’에 비해 평가가 좋았던 것도 바로 그 기준 탓이다. 평자들이 보기에 ‘가을동화’는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설정이었지만, ‘겨울연가’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겨울연가’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묻는 방식을 달리 해야 한다. 현실에서 첫사랑이 실패한다고 해서 반드시 드라마에서도 실패해야한다는 법이 있나? 현실에서 ‘준상’과 ‘민형’이 다른 인물이라 할지라도 드라마 상에서 같은 인물이면 안 되느냐는 말이다.

    윤석호 감독은 이미 1995년 색깔 연작 드라마 ‘칼라’의 ‘화이트’편에서 ‘겨울연가’와 유사한 설정을 시도한 바 있다. ‘화이트’에서는 주인공이 첫사랑의 재연에 실패한다. 모닥불과 함께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화이트’가 ‘겨울연가’보다 더 뛰어난 작품인가. ‘화이트’의 시청자들은 남자 주인공이 첫사랑을 찾기를 간절히 바랬다. 윤 감독은 이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 윤 감독이 더 뛰어난 연출가였단 말인가.

  • ▲ ⓒ '겨울연가' 홈페이지.
    ▲ ⓒ '겨울연가' 홈페이지.

    사실 윤 감독은 ‘가을동화’ 이후 보다 더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한 듯하다. 그 고민은 왜 한국에서 ‘가을동화’가 ‘겨울연가’보다 더 인기가 있었는지에 대한 답에서 묻어나온다.

    “‘가을동화’에서는 부잣집 남자와 가난한 집 여자가 사랑하는 계급적 배경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요소가 피부에 와 닿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못 사는 장터 주모한테 교수집 딸이 가야 하는 설정이 시청자들에게 연민 같은 것을 주게 됩니다. ‘겨울연가’는 그냥 첫사랑 이야기의 진행입니다. 빈부격차나 이런 것들이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빈부 문제가 크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일본은 그대로 멜로 자체를 받아들이는 느낌인 것 같습니다. ‘가을동화’는 보고 있으면 가슴이 참 아픕니다. 그래서 아직 빈부격차 문제가 있는 동남아에서도 ‘가을동화’가 더 뜬 것 같습니다.”

    시청자들은 ‘겨울연가’를 보면서 늘 현실과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물론 조금이나마 환상이 현실을 압도해야한다. 환상이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의 팽팽한 긴장감, 바로 그것이 ‘겨울연가’를 끌고나가는 힘이 아닐까? 막장으로 가려면 아예 막장이 현실보다 더 강력해야한다는 것이다. 윤석호 감독은 이를 조금 다르게 설명하기도 했다.

    “감정이라기보다는 신명이라는 말을 쓰고 싶어요. ‘겨울연가’를 볼 때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진지해서 몇 번을 봐도 감정이입이 됩니다. 최지우가 눈물 흘리는 부분이 나오면 감정이 풍부해집니다.  최지우는 최면을 걸어서 하는 연기가 많습니다. 머리로 연기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연기합니다.”

    배우들의 연기 자체가 바로 현실로부터 환상으로의 이탈이 아니냐는 것이다. 최지우도 배용준도 ‘겨울연가’를 촬영하는 동안에는 유진과 준상으로 완벽하게 분한다. 이는 카메라가 돌아갈 때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 자체를 드라마 속 캐릭터에 완전히 투영시킨다. 만약 그들이 드라마 상 캐릭터에 몰입하지 못하면, 시청자들은 이를 간파하며 환상이 깨지게 된다. 윤석호 감독 뿐 아니라 그의 드라마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이 이렇게 현실과의 투쟁에 함께 하는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가 방영되면 이러한 투쟁에 시청자들도 동참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바로 이러한 문제 때문에 서사극이 탄압받기도 했었다. 서사극은 관객들의 이성을 잃게 해 그들의 의식을 마비시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문제가 됐던 서사극이 비극이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윤석호표 드라마가 처한 현실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그러나 당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라는 개념으로 이를 반박했다. 주인공들이 운명의 장난으로 고통을 받을 때 관객들의 정서는 깨끗이 정화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극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다. 윤석호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도 이렇게 설명했다.

    “저에게는 유미주의 성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유미주의 성향은 인간을 어떻게 위해하지는 않게 하려는 방향을 갖고 있습니다. 선하게 사는 것에 대한 끊임없이 성찰을 해 와서 순수하고 깨끗한 삶의 태도를 보여주려 합니다. 판타지가 꼭 나쁘지는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으로 보자면 판타지는 나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잘 만들어진 판타지여야 한다. 윤석호 감독은 끊임없이 현실을 벗어나 이상적인 미를 추구하려 노력했다. 그 결정체가 바로 ‘겨울연가’였다. 그러나 그가 ‘겨울연가’를 통해 현실성을 벗어던지기 위해 자신의 작품사를 통해 수많은 실험을 하고, 때론 좌절하며, 어떤 아픔을 겪었는지는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그가 한국 드라마사에서 가장 현실성에 충실한 드라마를 만든 적도 있다는 점을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정말 몰랐죠. 그댈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생각조차 못했었죠.”

     ‘겨울연가’의 주제곡인 류의 ‘마이 메모리(My Memory)’ 가사다. 그대를 생각조차 못한 이유는 현실이고, 다시 만나는 것은 환상이다. 현실을 제거하며 환상으로 날아가려는 그의 꿈, 최소한 제거해야할 현실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알고 있어야 가능한 일 아닐까. 환상을 추구하려면 현실을 몰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야 한다는 점. ‘겨울연가’는 막장드라마 시대에 드라마의 환상과 현실 간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고찰해 봐야할 콘텐츠다.

     

  • ▲ ⓒ '겨울연가' 홈페이지.  
    ▲ ⓒ '겨울연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