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3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2일 "산하기관장들 중 (새 정권과 딴판인 자기들만의) 분명한 철학과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성향이 다른 새 정권에서도 계속 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권에서 '코드 인사'로 임명된 문화 관련 기관장들에게 그만 물러나라는 권유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는 11개 소속 기관과 34개 산하 기관이 있다. 노무현 정권은 이 자리를 정권과 좌파적 이념을 공유(共有)한 사람들로 메웠다. 그래서 이들이 선임될 때마다 이념적 편향성과 자격 논란이 일었다. 2003년 김철호 전 민족음악인협회 이사장이 국립국악원장에 임명되자 전국 국악과 교수들이 반대 성명을 냈다. 그런데도 김 원장은 또 연임됐다. 2009년 9월까지다. 좌파 예술인 집결체인 민예총 이사장 출신 김정헌씨가 작년 9월 문화예술계 돈줄인 문화예술위 위원장을 차지하자 그때도 "정권과 얼마나 가까우냐를 1순위로 삼은 인선"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2005년 국립극장장 자리는 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누나인 신선희씨에게 돌아갔다.

    2005년 문화부에서 보훈처로 이관된 독립기념관 관장은 민한당과 평민당 당보를 만들다 김대중 정부에서 일약 대한매일(서울신문) 주필로 특채됐던 김삼웅씨가 맡고 있다. 그는 "2차 대전 후 민족반역세력이 주류가 된 나라는 한국과 남부 베트남뿐"이라고 주장해온 사람이다. 그는 2004년 광복회원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독립운동가나 그 유족이 아닌 사람으로 처음 관장이 됐다. 지난해 10월 임기가 끝났는데도 임기를 1년 연장해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대한민국을 민족반역세력이 세웠다는 사람이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행사장에서 독립기념관장으로 축사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질 판이다.

    전(前) 정권이 임명한 문화 관련 기관장들은 길게는 3년 가까이 임기가 남아 있다. 노무현 정권이 임기가 끝나 가는데도 제 사람 심기를 계속했었다는 뜻이다. 이들 좌파 성향 인사들은 이명박 정부 문화정책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사표를 낸 기관장은 안정숙 영화진흥위원장 한 사람뿐이다.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과 신선희 국립극장장은 올해 초 유인촌 당시 인수위 자문위원을 만나 "임기를 마치게 도와 달라"고 했다고 한다.

    문화예술인은 소신과 색깔이 분명해야 한다. 정권과 이념이 맞아서 기관장을 맡았다면, 이념이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 선선히 자리에서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최소한 임명권자에게 재신임을 묻는 것이 도리다. 좌파 이념을 무슨 복음이나 되는 양 퍼뜨리던 좌파 문화예술인이란 사람들이 이념이 달라도 좋으니 밥자리만 달라고 매달리는 모습은 보기에도 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