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장 재임시절부터 퇴임 이후 경선과 본선을 거치며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지근에서 보좌해온 'MB맨' 상당수가 오는 4월 9일 실시되는 제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도전장을 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회에 진입할 경우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보조를 맞춰갈 'MB 파워그룹'으로 활약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창달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뉴라이트 인터넷 신문 '뉴데일리'는 국회 입성을 위해 출사표를 던진 'MB맨'들과의 인터뷰를 시리즈로 연재하고, 이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와 목표를 알아봅니다.<편집자 주>


    지난 대선때 이명박 캠프내에서 권택기 박영준 임재현씨 등과 함께 ‘MB의 무서운 아이들’로 불리던 김용태 대통령 인수위원회 전문위원이 서울 양천을에 출사표를 던져 귀추가 주목된다.

    김 예비후보의 출마는 어느정도 예상됐다. 1968년생으로 MB 캠프내에서도 젊은 층에 속했던 그는 참신하고 혁신적 기획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관심을 받았다. 그래서 일각에선 그가 한나라당의 '탈 여의도 정치'를 실현할 '젊은 피'로 4.9 총선에 투입될 것이란 말들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인수위 임무 종료후 그는 양천을에서 출마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 시대에 너도나도 'MB맨'이라고 내세우지만 김 후보만큼 확실한 'MB맨'은 많지 않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소개로 2004년부터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후 지근거리에서 뒷바라지를 하며 이 대통령으로 부터 잔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던 그는 대선 비화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측근 중의 측근이다. 

    뉴데일리는 26일 시시콜콜한 대선 뒷이야기를 뒤로 하고 김 후보에게 출마의 변을 듣기 위해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온 몸을 바쳐 이명박 정부 뒷받침하겠다"
    "이명박 정부에 무한한 책임 느껴"

    김 후보는 "대통령 만들기가 끝났으니 이제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라는 목표에 도전한다"고 출마의 변을 내놨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려면 안정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에서 나타났듯이 정치적 뒷받침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수 없다. 온 몸을 바쳐 이 정부를 뒷받침하고자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나는 이 대통령 만들기에 헌신한 사람"이라며 "서울시장 시절부터 각별한 인연을 맺고 측근 참모로서 각종 선거전략을 세웠고 대통령직인수위 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으로 새 정부 국정전략 설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나는 내가 참여해 탄생한 이명박 정부에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40세인 그는 젋다. 한나라당의 다른 공천신청자에 비하면 어리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정치 인생은 결코 짧지 않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20대에 정치권에 입문, 1993년 장기표 이재오 김문수씨와 민중당 일을 시작한 뒤 이씨와 김씨 등 민중당 출신이 대거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에 입당하면서 여당에 몸담게 됐다.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와 당을 오가며 정치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한 그는 199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접시를 닦으며 정치학과 뉴미디어를 공부했다. 이후 방통융합 기술회사인 알트캐스트와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를 거쳐 MB캠프에 합류, 이 대통령의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김 후보의 정치인으로서의 강점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있게 '능력과 열정 그리고 인적 네트워크'라고 말한다. 김 후보는 "정치인이 성공하기 위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본인의 능력과 열정이다. 두 번째는, 능력과 열정을 실현시킬 정치적 힘과 네트워크"라며 "나는 감히 내가 두 가지를 다 갖췄다고 자부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키면서 많은 정치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내 모든 능력과 열정을 바쳐 그리고 내게 주어진 온갖 조건을 다 동원해 지역구와 국가에 헌신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정말 해야할 일이 많은 양천구 그래서 의욕이 들끓는다"

    양천구는 지난 20여년간 소선거구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단 한번도 당선되지 못한 지역이다. 국회의원 선거에 처음으로 도전하는 김 후보로선 상당히 부담스러울텐데 그는 선뜻 이곳에서 출사표를 던졌다. 

    이에 대해 김 후보는 "정말 해야될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젊은 패기를 보여줬다. 그는 "학창시절 양천구에 있는 형님 댁에서 학교를 다녔고 신혼 살림을 하며 아이를 낳아 키워서 이 지역에 남달리 애착이 있다"며 "양천을은 양천구 중에서도 신월 1~7동, 신정 3·4·5동이다. 이 쪽은 거리가 낙후되고 교통이 불편하고 경인고속도로와 남부순환로가 종횡으로 지역을 갈라놓고 항공기 소음이 주민건강을 위협하고 변변한 문화시설 하나 없다. 정말 해야 할 일이 많은 지역이다. 할 일이 많다는 것이 오히려 '해 보자'는 의욕을 들끓게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런 곳에서 승리한다면 다른 곳 열 군데 승리와 맞먹는다고 본다"며 "나는 새 정부를 탄생시킨 공로를 내세워 당선되기 쉬운 곳을 고집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어려운 곳에서 당선되는 것이 내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이 대통령처럼 '실천'을 강조하는 정치인이다. 그는 "모든 일은 책상머리가 아니라 현장에서 점검을 통해 양천구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이 지역에는 출퇴근 봉급생활자가 많이 산다. 지하철 2호선 지선과 5호선이 있지만 아직도 대중교통이 매우 불편한 지역이 많다. 도심과 연결되는 경전철을 건설하는 사업을 하루라도 앞당겨 관철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끝으로 김 후보는 최근 여당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견제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과 관련해선 "국민은 이 정부의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이라면서도 "새 정부나 한나라당이 겸손한 자세로 국민을 안심시켜 드려야 한다. 나도 각별히 겸허한 자세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김용태(金容兌)는 어떤사람?> 

    ○ 1968년(40세) 대전 출생
    ○ 대전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객원연구원

    ○ 1992년 장기표, 이재오, 김문수 등과 함께 민중당 활동
    ○ 1993년 노동인권회관(소장 김문수) 기획위원
    ○ 1999년 (사)신문명정책연구원(원장 장기표) 연구위원

    ○ (주) 알티캐스트 이사 (태스크포스팀장) : 디지털방송 기술회사 : 정책조정 직무 수행
    ○ (재) 여의도연구소 기획위원 : 2004년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 자문역
    ○ 중앙일보 전략기획실 기획위원 : 신규사업 기획 

    MB캠프에서의 활동
    ○ 2004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소개로 인연
    ○ 정치적 행보 제언 (중단기 행보 전략 수립 - 여론조사 기반 선거전략 )
    ○ 경선/대선 기획서 집필
    ○ 대선 이후 국정운영 청사진 공동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