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0일자 오피니언면에 김영봉 중앙대 교수가 쓴 시론 '노 대통령의 국토에 대못 박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마르크스-레닌 이론의 힘은 당(黨)으로 하여금 어떤 상황에서도 진로를 찾고, 현존하는 모든 사상(事象)의 내적 관계를 이해하고, 이의 추진과정을 예견할 수 있게 한다. 당은 이것이 현재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가는 물론, 과거 어떻게 그리고 미래에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운명에 처해 있는가를 인지(認知)한다.”

    구(舊)소련의 공산당역사책에서는 이렇게 당의 전지전능함을 선언하고 일당독재를 합리화했다. 참여정부의 자신감도 거의 이에 견줄 만하다. 이 정부는 지난 4년 반 동안 과거역사를 심판하고 현재언론을 문죄하고 미래국토의 운명을 못질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독단(dogma)의 힘은 그들만이 민주적이고 정의롭고 깨끗한 집단이라서 부패한 수구기회주의세력을 어떻게 재단해도 괜찮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소련공산당의 힘은 소련의 붕괴와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도 그의 절대성(絶對性)을 포기할 수 없다. 반년 임기를 남기고 ‘2단계 균형발전정책’을 선포하며 그는 이것이 “모든 가치의 위에 있는 최상의 정책”이라고 단언했다. 이런 무오류(無誤謬)의 정책이므로 ‘서귀포 혁신도시’ 기공식에서는 “국가의 정의로운 목표로 뿌리내려 어떤 정부도 흔들지 못하게 제 임기 안에 말뚝을 박고 대못을 박아두려는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이 최상의 정책은 경쟁이 싫고 나누고 가르는 것만 할 줄 아는 우물 안 개구리집단의 생각뿐일 수 있다. 도시이론가들은 오늘날 자원, 기술 및 정보의 국제이동성과 집중성이 급격히 커지므로 대도시를 광역화하고 집적(集積)시킴이 세계적 추세며 국가경쟁력 향상의 열쇠라고 설명한다. 도쿄 상하이 홍콩 등 서울의 경쟁도시들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쇄신한다. 이런 때 우리는 거국(擧國)의 비용을 들여 지방에 도시나 짓고 공공기관을 나누어주고 있으니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2002년 이래 행정도시 건설 등 도시개발에 지출한 토지보상비는 87조원에 이른다. 이 보상비는 대부분 부동산 시장으로 역류했을 것이며 그 결과 노 정부 4년간 전국의 땅값은 1365조원이 올랐다고 한다. 땅값이 오른 만큼 기업이 공장을 짓고 사람 채용하기가 어려워졌고 집 없는 서민의 고통도 증대했다. 그럼에도 연내 8~9개의 혁신도시를 더 착공하겠다고 하니 그 건설비와 보상비는 전부 국민이 떠맡을 세금이다. 그렇다고 이런 신도시들이 노 정부의 뜻대로 서울에서 사람과 자본을 뺏어올 것인가? 서울대 최막중 교수는,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듯, 그저 구(舊)도시에서 이주민을 끌어와 구도시를 쇠퇴시킬 뿐이라고 한다. 결국 구도시를 황폐화시켜 신도시와 투기자를 살찌우는 것이 이 정부가 세우는 ‘정의’인가.

    보다 근본적으로, 민주국가 대통령이 물러나며 이렇게 국가장래에 못질할 권리를 가져도 되는가. 참여정부의 국정지지율은 역대 최하위이고 지금 여당의 대통령후보 경선투표율은 19.8%다. 한나라당 경선투표율이 78.5%였음을 보면 국민이 이 정권사람들을 얼마나 불신하는지 알 수 있다. 만약 의원내각제 같으면 이런 정권이나 정책은 벌써 폐기됐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혁신도시후보지들에 1등 착공자 300억 원, 2등 착공자 100억 원 하는 식의 상금을 국민세금으로 주어가며 무조건 삽만 뜨도록 경쟁시키고 있다. 이렇게 국민의 미래부터 묶어놓자는 처사는 독재정권이나 할 일 아닌가.

    결국 정의도 민주도 아니다. 지금 김해 봉하마을에는 9000여 평의 세칭 ‘노무현 타운’이 건설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어떤 전직대통령도 이처럼 큰 집을 짓고 주변사람을 거느리고 퇴임 후까지 호기를 부리며 살겠다는 세속적 욕심을 보인 적이 없다. 노 대통령의 관리들은 권력을 남용하고 행실을 그르치고 위선을 행함에 있어서 다른 정권보다 하나도 나을 것이 없다. 참여정부만 깨끗할 일이 하나도 없다. 그들의 정책만이 절대적일 이유는 더욱 없다. 오히려 그들이 위선적이기 때문에 균형개발정책에는 어떤 정치적 저의가 숨어 있는지 더욱 의심해야 하는 것이다.